산촌생활의 필수품 벽난로
인디언들은 나무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인디언의 나무에 대한 애정은 각별해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개척자들이 그들의 터전을 황량한 벌판으로 만들 때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나무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시각 역시 각별했다. 자연을 생활의 도구나 수단이 아닌 동반자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실천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일 뿐.
우리의 선조들 삶 역시 자연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이 남 달랐다. 나무를 함부로 베지 않았고, 필요에 의해서 벨 경우에는 나무에 대한 예를 갖추었다. 나무를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도 했으니까. 마을마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이었고, 큰 어른이었다. 자연을 터전 삼아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이나 인디언들이 할 수 있는,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오래된 얘기지만, 한아름은 되는 소나무를 벤 적이 있다. 나무 탁자 다리로 쓰기 위해서. 그 나무를 베고 난 후 며칠간 악몽에 시달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때 생각으로는 벌을 받아서라는 생각이 들어 나무를 벤 그곳으로 다시 갔다. 그런데 베고 난 나무의 밑동에서 흘러 나온 수액이 꼭 사람의 피로 보이는 게 아닌가. 순간, 어린 주인공 '작은 나무'가 체로키 인디언인 조부모와 함께 산 속에서 지내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디언들의 삶을 그린 포리스트 카터의 소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 나오는 '나무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 맞아, 나무의 영혼이 노한 거야...." 나는 곧바로 막걸리 한 병을 사다 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반성과 사죄의 의미로. 그 후 악몽은 꾸진 않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마음이 편치 않다.
학교나 지자체 의뢰를 받아 강의를 다닌다. 그럴 때마다 나는 꼭 하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자연을 보호합시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자연을 보호할 명분이나 자격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어불성설이지요. 숲은 홍수를 막아주고. 나무는 수분을 배출해 봄 가뭄에 물을 공급해 줍니다. 우리 인간들에게 말입니다. 자연은 스스로의 자생력으로, 오히려 우리 인간을 보호해준답니다. 자연은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방치하는 것입니다. 자연을 방치합시다...!!
가을로 접어 들면서 여행자들이 모이는 사랑방에 벽난로를 설치했다. 아파트에 비해 단열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단독주택 난방은 가장 대중적인 게 기름보일러지만, 난방비 감당이 안된다. 벽난로는 실내 온도를 높여주는 효가가 있고, 윗풍을 막아 준다. 펜션에는 기름보일러에 비해 비교적 난방비가 저렴하다는 전기보일러가 설치돼 있었지만, 벽난로는 난방비 절감 효과가 있고, 따뜻한 겨울을 나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아침 저녁으로 벽난로를 피워야 할 만큼 기온이 뚝 떨어졌다. 장작 몇 개 집어 넣었더니 집안에 금방 온기가 흐른다. 긴 겨울 벽난로는 사랑방을 드나드는 여행자들의 친구가 될 것이다. 고구마를 구워 먹고, 얘기꽃을 피우겠지. 생각만으로도 흐뭇해진다. 하지만 그런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많은 나무가 필요하다. 산촌에서는 땔감이 양식만큼 중요하니까.
벽난로용 나무는 간벌 현장에서 가져온다. 간벌작업은 더 좋은 숲을 만드기 위한 '숲가꾸기 사업'의 일환이다. 나무에게 해가 되는 덩굴식물들을 잘라주고, 나무와 나무의 간격을 넓혀줌으로써 나무가 더 잘 자라게 하는 효과가 있다. 보통 10월부터 시작하는 간벌은, 허가 없이 나무를 베는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산촌 사람들 입장에서는 땔감을 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가까운 곳은 주변 어르신들이 지게나 경운기를 이용해 가져오고, 나는 숲 맨 끄트머리에서 가져온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이 좀 고생 더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땔감으로 가장 좋은 나무는 참나무다. 건조가 안 된 생나무도 잘 타기 때문. 하지만 잘 마른 장작이 연기도 덜 나고 화력이 좋다. 그래서 생나무와 마른 나무를 적당히 섞어 사용한다. 수분이 많은 생나무는 오래 탄다는 장점이 있지만, 목초액이 많이 나와 연통 청소를 자주 해줘야 한다.
강원도 홍천의 달둔마을에서 만난 어르신 얘기가 생각난다. 새끼곰을 잡아다 집에서 기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물론 전쟁 전 얘기다. 워낙 깊은 산중이라 겨울이면 곰사냥을 했단다. 새끼곰이 얼마나 장난기가 많은지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면, 호기심이 많은 녀석인지라 그대로 따라하는 습성이 있단다. 손인지 발인지 모르지만 툭툭 쳐서 나무를 아궁이에 집어 넣는 것이다. 그러곤 밖으로 나가 굴뚝에서 연기 나는 모습을 보고 좋아한단다. 나무를 넣고, 다시 나가서 연기 나는 굴뚝을 쳐다보고. 또 갓난아기를 ‘자장~자장~’하면서 재우는 모습을 보고는 그대로 따라했다나. 상상은 잘 안되지만, 그 어르신 말씀이 워낙 진지해서 나는 지금도 그 말을 믿고 있다.
연 이틀 내린 비로 뒷집 어르신 댁 감나무 이파리가 모두 떨어져 버렸다. 은행나무 이파리는 더 노랗게 물들었고, 산색은 더 진해졌다. 펜션 뒤란의 5백 년 된 당산나무 아래로는 붉은 융단이 깔렸다. 가을 아침, 특히 비 개인 아침이면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보기는 좋은데, 안 좋은 점도 있다. 낙엽이 2층 베란다에 수북이 쌓인다. 치워주지 않으면 물받이 배수로를 막이 버리기 때문. 그래도 그냥 놔둔다.
가을이잖아...
2008년 5월. 뜬금없이, 서창마을 황토펜션 주인이 되었다.
지금은 펜션 주인이 아닌, 한 사람의 여행자로 여전히 서창마을에 살고 있다.
이 글은 그간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