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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눌산 Sep 09. 2015

뒷집 어르신이 가져온 홍시 다섯 개

시골 사는 맛이란



"애기네 아빠~ 아직 맛이 덜 들은 거 같어. 그래도 맛이나 봐~“


뒷집 어르신이 빈 과자 박스에 홍시 다섯 개를 담아 건네주신다. 지나다니면서 어르신 댁 감나무를 쳐다보는 내 마음을 읽으신 모양이다. 사실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보면서 ‘저게 언제 홍시가 되나’했거든.




‘애기네 아빠’는 어르신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다.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이가 든 남자를 그렇게 부르는 모양인데, 막내를 ‘종말이’라 부르고, 진안에서 시집 온 아주머니를 ‘진안떡(댁)’하는 것처럼. 아무튼 나는 그 호칭이 싫지는 않다. 


빈 과자 박스 안에 담긴 홍시 다섯 개을 보고 있자니 어르신의 마음이 느껴진다. 여름내 애호박을 얻어 먹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지난 추석 때 꿀차 두 병을 갖다 드렸더니, 어르신은 이렇게 또 마음의 정을 나누는 것이다. 나야 농사를 짓지 않으니 뭐 드릴만한 게 없어 선물 들어 온 과일이나, 이렇게 사다 드리는 방법 밖에.


언제나 어르신은 "콩  한쪽을 나눠 먹어도 마음이 가야 하는 법이지.... “하시며, 짧은 몇 마디 던지는 게 전부지만, 그 속에는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참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여섯 가구가 전부인 마을에서 어르신은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오며 가며 들러 날씨 얘기, 뉴스에 나온 사건사고 얘기 등 시시콜콜한 얘기들이다. 가끔 TV 안 나온다고 전화가 오면 가서 봐 드린다. 스카이라이프는 집에 TV가 없는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사용법이 복잡해서 잘 모른다. 다행인 것은 리모컨을 대충 몇 번 누르면 나온다는 것. 어르신은 이런 나를 보고 기술자라고 하신다. 내손으로 어르신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때론 어르신과 우체국 나들이를 한다. 도시에 사는 자식들에게 농산물 택배를 보내기 위해서인데, 어르신은 차가 없기 때문이다. 마을까지는 버스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2km쯤 되는 우체국까지 걸어서, 또 무거운 짐을 들고 간다는 것은 무리다. 우체국에 가면 여직원이 뽑아 주는 자판기 커피 한잔 마시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골 사는 맛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보통 전원 생활하면, 매일같이 풍경에 취해 감탄하고 우아하게 커피잔을 들고 앉아 사색에 잠기는 상상을 하게 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꿈이다. 그런 꿈은 빨리 깰수록 좋다. 


나는 지금 어르신이 놓고 간 홍시 다섯 개를 바라보고 있다. 아까워서 먹을 수는 없고, 누군가와 다시 나눠먹을 생각을 해본다. 어르신이 내게 건네준 그 ‘마음’ 처럼말이다.





2008년 5월. 뜬금없이, 서창마을 황토펜션 주인이 되었다. 

지금은  펜션 주인이 아닌, 한 사람의 여행자로 여전히 서창마을에 살고 있다. 

이 글은 그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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