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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눌산 Aug 28. 2015

지리산을 찾는 여행자들의 쉼터

지리산 베이스캠프 대표 정영혁


첩첩산중 오롯이 난 길 끝에 아담한 집 한 채. 텃밭에는 온갖 채소가 자란다. 마당 한 켠에는 닭장이 있고, 집 주인은 틈틈이 산을 오른다. 약초와 산나물을 한 아름 뜯어와 쓱쓱 비벼서 식사를 한다. 요즘 티브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산이 좋아 산에 산다는 사람들 얘기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부러울 수도 있고, 그저 남 얘기거니 하면서 재미 삼아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팍팍한 도시생활에 지친 대한민국 남자라면, 나도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 산이 좋아 좋은 직장 다 버리고 지리산에 들어 온 한 남자가 있다. 신한은행 지점장 출신의 전라남도 구례 지리산 온천 부사장 겸 지리산 베이스캠프 대표 정영혁(54) 씨가 그 주인공이다.





지리산지리산지리산…….



전문 등산인들은 “산행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려면 지리산 종주를 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1천5백 m가 넘는 봉우리만도 16개에 20여 개 이상의 봉우리를 한 번의 산행으로 넘어야 하는 지리산 종주산행은, 다른 산에 비해 남다른 매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산꼭대기에서의 하룻밤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그런 이유로 지리산의 매력에 한번 빠진 이라면 평생 지리산 언저리를 맴도는 ‘지리산 마니아’가 되는 것이다.


정영혁 대표는 자칭 지리산 마니아다. 평생을 지리산에서의 삶을 꿈꾸며 살아왔다. 지리산에서의 정착 또한 늦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의 지리산과의 인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작된다. 노량진에 살던 중학교 때부터 휴일이면 지하철을 타고 천마산을 올랐던 그는 고1 때 한라산 등반을 했고, 고2 때 지리산 종주를 한다. 무작정 산이 좋아 산을 찾던 정 대표는 대학교 1학년 때 태백산맥 종주를 하고, 군대 가기 전에는 50박 51일 동안 국토종주까지 하게 된다. 국토의 최남단 가파도에서 시작해 제주도를 일주하고 완도 항으로 나와 부산까지, 다시 동해안을 따라 걷는 도보여행이었다. 그때 든 총비용이 4만 원으로 무전여행인 셈이다. 전문 산악인 못지않은 그의 등반 이력은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까지 이어진다. 스트레스가 가장 심하다는 은행원 시절, 2주간의 강제휴가 제도가 있었다. 다들 상사 눈치 보느라 공식적인 휴가도 제대로 못 쓰는 시절이었지만, 정 대표는 과감히 히말라야로 떠났다. 2012년에는 아들과 함께 안나푸르나를 다시 찾았고, 킬리만자로까지 올랐다.





“은행 지점장 시절 스트레스가 최고였었죠. 그때마다 집에는 언제든지 사표를 낼 것이라는 얘기를 했어요. 물론 설마 했겠죠. 결국은 남들보다 4년 일찍 사표를 냈는데, 명퇴도 아니다 보니 남들은 수억 날렸다고들 해요. 4년 아니라 단 4일도 기다리기 힘든 걸 어떡합니까(하하)”


언젠가는 지리산에 살고 싶었다는 정 대표는 자신의 꿈을 이룬 셈이다. 더구나 한창 일 할 나이에 사표를 던졌다. 무엇보다 영어교사인 아내와 프로 바둑기사인 아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한은행 기업센터장으로 광주에서 2년을 근무했어요. 거리가 있다 보니 서울에 있을 때는 자주 찾지 못했던 지리산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죠. 지리산에 사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교류도 하게 되었고, 자신감을 얻어 지리산행을 앞당기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여행자들의 쉼터지리산 베이스캠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가 동대문지점장으로 6개월 근무하고 퇴직한 정 대표는 지금의 지리산 온천 부사장으로 부임한다. 완전한 자유인은 아니지만, 그토록 원했던 지리산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재취업을 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 하지만 지리산 생활 2년 차로 접어들면서 그는 서서히 그가 꿈 구워왔던 지리산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지금의 지리산 베이스캠프의 오픈이다. 지리산을 사랑하는, 지리산을 찾는 모든 이들의 쉼터를 꿈꾸는 지리산 베이스캠프는, 한마디로 여행자들의 안식처다.


“히말라야의 롯지나 유럽의 펍(Pub)을 모토로 삼았어요. 여행은 먹고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거든요.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은,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지리산 베이스캠프는 순식간에 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갔다. 태백산맥을 최초로 단독 종주한 여성 산악인 남난희 씨를 비롯해 산악인 손영조, 박정헌, 지리산 사진작가 이창수, 남북한의 백두대간 사진을 촬영한 로저 셰퍼드 등이 베이스캠프의 오픈을 축하해줬다. 지리산 가수로 알려진 고명숙 씨는 이곳에서 음악회를 열었고, 정기적인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정 대표는 지리산 베이스캠프뿐만이 아니라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한다. 지리산 온천 관광특구 시스템을 활용한 것인데, 온천 특구 내에 있는 호텔과 네트워킹을 통해 빈방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한 곳에서 예약을 받고 여행인원과 취향에 맞게 방을 배정한다. 도미토리 기준 1인 2만 원부터 선택이 가능하다.


“일반인 80%와 산악인 20% 정도를 보고 있는데, 베이스캠프를 통해 여행자를 하나로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이라 할 수 있어요. 저는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공간만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곳을 통해 만나는 여행자들은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죠.”


불과 6개월 남짓한 베이스캠프와 게스트하우스가 수월한 정착을 하게 된 것은 SNS 덕분이라고 한다. 틈만 나면 지리산 사진 자료를 공유하며 사람들과 소통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온천 뒷산인 솔봉 산책을 합니다. 3.3km 정도로 아침산책 코스로는 최고죠. 멀리 지리산 자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하루하루가 다릅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풍경도 좋지만, ‘이곳’에 내가 있다는 그 자체로 행복을 느끼죠. 이제 지리산 생활 2년 차 밖에 안 되지만 나로서는 최상의 선택을 했기에 후회는 없어요. 우리 나이가 그렇잖아요. 하나만 포기하면 되는데…….”


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호한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더불어 과감한 기득권 포기가 따라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가족의 응원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 대표는 참 행복한 ‘대한민국 중년 남자’다.






지리산베이스캠프   facebook.com/younghyuk.jung.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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