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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눌산 Sep 01. 2015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해발 700m 오지마을에 산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마음 하나면 족하다.




해발 700m에 ‘사람의 마을’이 있다. 전라북도 무주 삼도봉 아래 중고개는 대부분 산지가 차지하고 있는 무주 땅에서도 보기 드문 오지마을이다. 해발 1614m 덕유산과 눈높이를 마주할 만한 곳이 무주 땅에 이 곳 말고 또 있을까? 답은 당연히 ‘없다’이다. 무주 사람들조차도 찾아오기 힘든 이 외딴 오지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옮겨온 이가 있다. 무주 영어마을 강사인 김미경 씨가 그 주인공.





한겨울에는 자동차도 갈 수 없는 오지 중의 오지



“자동차는 올라오지 못할 걸요. 등산 삼아 걸어올라 오세요.”


취재를 위해 전화를 했더니 집으로 올라오는 길이 만만치 않은 경사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오란다. 추위가 한풀 꺾여 대부분 눈이 다 녹았지만, 이곳 대불리 일대는 여전히 눈밭이다.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밤사이 얼어붙은 고갯길은 걷기도 힘들다. 하지만 이런 오지에도 ‘사람의 마을’이 있다. 군데군데 농토가 보이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산촌이 형성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고개란 지명도 사람이 다니던 고갯길을 의미하니, 아주 오래되었을 이 마을의 역사를 짐작만 할 뿐이다.


20분쯤 걸어 올랐을까. 사람의 살고 있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 오래된 흙집 한 채와 그 집을 주위로 드문드문 사람의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기도 이파리를 모두 떨군 호두나무가 빼곡한 중고개 끄트머리 집에 올라서자 김미경 씨가 올라오느라 고생했다며 따뜻한 차부터 내온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기억나요. 밤이라 아무것도 보이진 않았지만,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알싸한 밤공기가 제겐 신선한 충격이었거든요.”





전망대에 올라앉은 것처럼 발아래 펼쳐지는 세상이 그림 같다. 멀리 덕유산과 백운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산 아래 마을인 대불리 일대가 보이고, 골짜기 사이사이에는 실타래처럼 계곡이 가늘게 이어진다. 하늘과 맞닿은 중고개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가장 높은 곳이다. 뒤로는 삼도봉과 석기봉이 빙 둘러쳐져 있어 지대는 높지만 아늑해 보인다.


“어릴 적 꿈이 집을 지으면 방 9개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방마다 다르게 꾸며 놓고 친구들이 오면 하나씩 내어주려고요.(웃음)”


그러고 보니 그리 넓지 않은 집에 방이 5개나 된다. 명상하기 좋은, 아주 작은 방도 있고, 침대에 누워 하늘이 보이는 방도 있다. 또 좋은 친구와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싶은 전망 좋은 방도 있다. 


“한 눈에 반해 이곳에 집을 지은 지 벌써 만 3년이 넘었네요. 당시에는 서울에서 영어강사를 할 때인데, 친구의 지인이 바로 아랫집에 살고 계시는 분이거든요. 친구를 따라와 그 집에서 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전망을 보며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울생활이라는 게 다 그렇잖아요. 퇴근해서 썰렁한 아파트에 홀로 들어서는 기분요. 도시생활이 막바지에 달한 기분이라 무조건 떠나기로 마음먹었죠. 마침 설천에 태권도원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잘하면 그곳에 취직도 할 수 있겠구나 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죠. 그래서 특별히 뭐해서  먹고사나 하는 그런 원초적인 고민을 안 하게 되니까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어요.”





오로지 를 위한 시간들가장 큰 행복이다.



강원도 삼척 태생이지만 시골생활은 처음이다. 더구나 이런 산골짜기에 들어와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단지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서 결정한 무주행이었다. 


“서울에 살 때는 ‘나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살아가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 살게 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고,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여기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잖아요. 물질이 넘쳐 나는 게 도시지만, 사실은 도시생활 자체가 고민의 연속이거든요. 산더미처럼 쌓인 쇼핑몰에 가서도 무얼 살까 고민하고 다른 사람 눈치 보며 살아야 하는 도시보다는, 살아보니 여기가 저한테는 잘 맞는 것 같아요.”


처음 1년은 아무 생각 없이 놀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가져보는, 오직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불안하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도 들지 않았다. 자연 속에 들어 앉아있다는 자체로 행복이었다. 그래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 보고 모두 내려와 같이 살자고도 했다. 무주와 살면서 달라진 점도 많다. 서울 생활하면서는 남을 잘 믿지 못하게 되고 스스로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 정반대가 되었다. 


“무주 문화관광해설사 일을 할 때인데, 리조트에서 국제행사가 있었어요. 군수님이 통역을 도와달라고 하셨는데,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죠. 많이 떨리고 긴장했지만 당당하게 통역을 마치고 나니,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요. 매사가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바뀌고 나니 사람과의 관계도 원만해지더라고요.”




김미경 씨에게 봄은 가장 바쁘고 활기찬 계절이다. 산나물을 뜯어다 효소와 장아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산골에서는 긴 겨울을 날려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저장음식이 꼭 필요하다. 또 이따금 찾아오는 도시의 친구들에게 나눠준다. 자연이 준 선물을 좋은 사람들과 나누어먹는 일이야 말로 가장 보람되고 행복한 일이다. 

1년을 놀고 무주에서 처음 시작한 일이 무주 문화관광해설사였다. 그리고 반디랜드 수련원에서 계약직으로 10개월 일한 뒤 읍내에 영어마을이 생기면서 직장을 그곳으로 옮겼다. 평소에는 출퇴근을 하지만 요즘처럼 길이 미끄러운 겨울에는 영어마을 기숙사에서 주중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산꼭대기나 다름없는 이곳에 집을 짓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평지처럼 중장비의 힘을 빌리기도 어려운 여건이다 보니 대부분 사람의 손에 의지했다고 한다. 


“집을 지으면서 노동의 참맛을 느꼈다고 할까요. 몸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든 노동을 하다 보니까 ‘최고의 수행은 노동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겠더라고요. 식수는 계곡에서 끌어와 쓰는데, 여름이면 이물질이 들어가 가끔 막히기도 해요. 열악하지만, 오히려 자연이 베푼 혜택을 거저 받고 있는 셈이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죠. 몸만 잠시 수고하면 모든 게 편안하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산골생활의 꿈을 꾸며 산다. 하지만 김미경 씨처럼 한순간에 결단을 내리고 짐을 싸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면, 결론은 원점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찬사를 보내고 싶다. 김미경 씨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작은 생각의 차이 하나가 세상을 달리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차가 다닐 수 없는 겨울이 가장 힘들죠. 아랫동네까지 내려가는 데만 해도 걸어서 3~40분이 걸리는 불편한 생활이지만, 운동 삼아 걷다 보면 자연의 모든 변화가 한눈에 들어와요. 그런 게 행복이더라고요."


불편함 속의 행복이라……. 물론, 살아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마음 하나면 족하다. 자연은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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