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우리의 변곡점>
2018년 1월, 여덟살 되던 그때 내 아들은 ADHD임이 증명되었다.
어쩌면 난 그 몇 해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 듯 어렵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진료실을 나왔다.
그렇게 6년을 넘기고 있는 올해 3월 사춘기까지 닥쳤다. (내 갱년기는 언제오나…)
자해와 파괴, 집요함과 짜증, 피해의식 등등을 꽉채워 담은 아이템상자를 준비한채로 말이다.
아직은 시작도 안된 걸 꺼라는 지인들의 말에 겁을 먹은 채 오늘도 회피하며 그를 보냈다.
가장무서운건 아직 중1이라는점.
나는 이 잔인한 시간들을 눈물로만 지세우지 않으려 회상과 반성 그리고 약간 기대들을 버물여 글을 써보려한다.
지독해 보였을지 모른다.
까칠하고 예민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작은 돌발 상황 하나도 용납 못하는,
어딜가나 따라붙어 참견하고, 멀리에서도 지켜보다 큰 소리로 주의를 주며 계속 이름을 불러대는 그런 엄마였다.
그렇게라도 내가 아이의 모든것을 눈치채고 있지 않으면 사고는 순식간이다.
내가 예측하는 모든일들은 늘 그렇게 일어났고, 그래서 나는 더더 밀착수비를 하곤했다.
사실 건강하게 태어나 순탄하게 잘 자라주어서 아들한테 항상 감사했다.
밤잠도 잘자고, 단유도 쉽게 됬으며, 대소변도 잘가리고, 음식은 편식 없이 잘 먹을 뿐더러 말도 빨라 어른들의 칭찬과 이쁨을 한 몸에 받으며 성장하였다.
네 돌 전에는 한글을 읽고, 다섯 돌에는 쓰기도 잘 되는, 낯가림도 없고 독립심도 강하며 어디에든 적극적이며 발표도 잘 하는 그런 아이였다. 배움에 두려움이 없고 도전에 흥미로와 했었다.
이 어찌 안 이쁠 수 있겠는가.
또한, 이 어찌 의심을 했겠는가.
하지만, 그에 반해 또래관계에서 상호작용이 쉽지 않았다
항상 일방적이었고 기다릴줄 모르고 자기중심적이며 배려가 없으니 상호작용이 될리가 없었다.
기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잘한 사건사고들이 끊이질 않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던거 같다.
이 아이가 조금은 다른면이 있다는걸 느끼고 신경쓰기 시작한 것이…
처음에는 나와는 다른 기질의 아이라서 그런줄 알았고, 아님 성별의 차이로 생각도 해보았다.
A형과 AB형의 차이일까?, 지금이라면 ISFJ랑 INTP의 다름일까?
하지만 계속 보이는 돌발행동과 남다름이 엄마의 눈에는 계속 밟히기 시작했다.
엄마만이 알 수 있는 그 미세한 다름이 있었지만 그저 단순하게 여기려 애쓰고 조금 ‘짖굳은 남자’ 아이라서 그럴거라 계속 내 마음 속의 작은 의심들을 내쳐냈다.
내가 너무 박하게 아이를 키운다는 소리를 많이 듣던터라 약간은 그말에 힘을 실어보았던것도 있다.
그렇게 모른척도 하고, 미루기도 하고 하던 일곱살의 어느날
유치원 담임선생님께서 조심스럽게 꺼내신 초등학교 입학전 검사권유가 나와 아들 인생의 변곡점이 되었다.
다들 애매하게 생각했던 부분이었고, 나또한 확실하지 않음에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아들은 큰거부감 없이 검사를 받았고, 평소와 같은 컨디션으로 테스트에 임했으니 그가 가진 주의력결핍과 충동성등등이 낱낱이 밝혀진것이다.
처음에는 결과가 나에게 전혀 충격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확한 답을 내려준 것 같아서 속시원함이 더 컸다.
내가 그동안 왜 전전긍긍하며 저 아이를 대했으며, 사회성은 왜 그럴수 밖에 없었는지…
사회성으로도 주의력결핍이 발현될 수 있구나 하는 점 또한 의외였다.
그의 문제점이 단순한게 아니었다.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