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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Mar 14. 2024

아무튼 서태지1-
서태지는 왜 10집을 내지 않는가

102:서태지의 자연 사랑과 방랑벽: 프리스타일, 모아이, 숲속의 파이터

(이 글은 제가 언젠가는 모아서 내려고 생각하고 있는 브런치 북 '아무튼 서태지-서태지는 왜 10집을 내지 않는가'의 들어갈 음악글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제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쓰고 싶어서 쓰고 있고 언젠가는 서 말의 구슬이 꿰어지지 않을까 바래보는 것뿐. 그리고 10집을 내지 않는 이유를 주절거리고 있으면 그가 혹시 10집으로 제게 뒤통수 한 대를 쳐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안다고 떠들겠는가. 천재라고 불리던 서태지의 음악을. 나는 다른 사람과 같다. 그냥 귀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좀 더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다. 무엇보다 그의 가사에 더 호기심이 있어왔다.

이런 말 들으면 그는 억울할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은 가사에 커다란 신경을 쓰지 않으며 음音, 즉 소리를 만드는 것에 자신의 관심이 있다고 거듭 말해왔기 때문이다.


3집을 듣고 놀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발해를 꿈꾸며의 전주가 나오는 순간 

맑고 청명하며 깨끗한 사운드가 미천한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의 겸손한 스피커를 뚫고 나오던 그 순간.

그는 소리에 대한 갈증으로 3집을 미국에서 최고급 엔지니어들과 녹음했고 그 기술을 배워와서 자신의 앨범 녹음에 심혈을 기울여 직접 해왔다.


나는 그의 음악을 그의 가사로 나눈다. 하나의 음악을 들으면 떠오르는 그의 생각과 정서의 갈래들.(미안해 태지씨.)

이 노래는 그의 이러한 사색의 연장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고나 할까.

나는 이것을 그의 8집 앨범의 곡에 연관시켜서 보기를 좋아한다. 갑자기 웬 8집?이라는 의문도 있을 수 있다.


8집은 2009년 그가 2년에 걸쳐 3장의 싱글앨범을 발매하며 최장기간 활동한 앨범이며 리믹스를 합쳐 모두 12곡이 수록되어 있다. (서태지 음반의 리믹스는 그의 소리 집착을 잘 보여주는데 자신의 원곡을 자신이 새로 배운, 새롭게 관심 있어하는 스타일로 수없이 바꿔보는 실험의 결과이다. 예를 들어 1집(1992)의 수더분하고 단순한 '환상 속의 그대'는 내가 알기로는 공개된 것만 해도 약 6개의 리믹스가 있다.)


말했다, 나는 가사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가사는 같고 음악 구성만 달라지는 리믹스를 제외해 보면 8집에는 모두 8개의 곡이 있으며  그의 음반에 흔히 들어가는 요태지 등의 인트로나 아웃트로 없이 다 타이틀곡이 될만한 존재감을 가졌다. 왜 이렇게 굵직한 곡들이 한 앨범에 다 들어가는지 그리고 왜 마지막 곡은 팬 송중의 최고봉인 '아침의 눈'인지 설왕설래가 아주 심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나는 8집으로 서태지 솔로활동이 하나의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아마 이 글타래들 '서태지는 왜 10집을 내지 않는가'를 쓰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8집 활동은 서태지가 가진 걸 다 쏟아붓는 느낌이 활동 막바지로 갈수록 들었다. 배필인 이은성씨를 이때 만나기도 했고. 

대한민국을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이혼 사건이 바로 8집 앨범 활동 후 2011년에 있었고 이은성 씨와의 결혼, 담이의 탄생이 있고 나서 6년 만인 2014년에 9집이 나왔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앨범이 9집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튼, 서태지의 음악 인생을 다 요약해 놓은 듯한 8집에는 8개의 곡이 있다. 먼저 모아이.


모아이 - 여행, 방랑벽, 떠돌이 풍운아 기질

연관된 노래-Take 6(5집), 프리스타일(4집), 숲속의 파이터(9집)

은둔형 외톨이일 것 같은 태지를 생각할 때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알씨를 하던 그때부터 은퇴 뒤 미국 산간벽지 순례까지...태지의 자연 사랑과 떠돌이 기질은 소중한 그의 일부분이다.


네온사인 덫을 뒤로 등진 건

내가 벗어두고 온 날의 저항 같았어

떠나오는 내내 숱한 변명의 노를 저어

내 속된 마음을 해체시켜 본다


때론 달콤한 내 거짓으로도

때론 아이 같은 응석에 두 손을 벌려도

이제 ALL I NEED 모아이들에게

나의 욕심을 말해볼까 이젠


(후렴)

내 가슴 속에 남은 건

이 낯선 시간들

내 눈에 눈물도 이 바다 속으로

이 낯선 길 위로 조각난 풍경들

이런 내 맘을 담아서 네게 주고 싶은걸

IN THE EASTER ISLAND

이제 세상은 이 어둠을 내게 허락했고

비로소 작은 별빛이 희미한 나를 비출 때

차가운 바다 속에 내 몸을 담그니

내 가슴을 흔드는 잔잔한 물결뿐

해맑게 웃을때 나른한걸까

세상에 찌든 내 시크함을 조롱한걸까

나는 멍하니 이 산들바람 속에

성난 파도를 바라보고 있어


(후렴 반복)


내가 돌아갔을 땐 너는 맨발로 날 기다리겠지

무릎을 세우고 초조하게 있지는 마

이달이 질 무렵 돌아가니까...

https://youtu.be/yU0r2pLDleY?si=aCbHhpuahT6_TsAm


모아이는 그의 자연에 대한 사랑을 네이처파운드로 구현해 놓은, 멜로디가 가장 아름다운 곡 중의 하나다. 이 곡의 드럼비트는 인간이 연주하기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잘게 쪼개 놓았는데 그런 인간의 수준이 아닌 드럼 연주에도 불구하고 곡 자체는 롹킹하다기보다는 발라드의 청초한 느낌이 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들어 보시길 권한다. 초반의 물방울이 또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바로 서태지가 그동안 갈고닦은 모든 음'학'적 역량을 집중한 역작이라고 평한 평자도 있었다. (가사에 집중하겠다고 하고서 자꾸 곡 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내가 서태지에 대해 들어놓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모아이에 이르러서야 서태지는 자신이 4집을 만들고 떠났을 때의 이야기를 잔잔하며 평온한 어조로 얘기해 주는 듯하다. 자신이 인파를 떠나 자연 속에서 어떤 안정감을 찾았는지.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일어나는 아침이 어땠는지. 그러면서도 달이 떠오를 때 어떻게 먼 곳의 팬들을 그리워했는지 멀리멀리 떨어진 이스터 섬의 모아이들이 먼바다를 하염없이 천년만년 바라보는 것에 빗대어 노래한다.

그는 정말 자연을 사랑하는 음악가이다. 내향적인 사람들이 그렇듯이 숲 속에서 바다에서 휴식을 찾는다. 어쩌면 자연이란 사람들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예민한 그의 귀는 자신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소리를 천천히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찾아가곤 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아이는 서태지가 바쁜 음반 활동 뒤 항상 돌아가는 대자연에 대한 것을 모두 담고 있다.


이런 노래는 8집 전에는 5집의 테이크 식스가 대표적이었다. 5집(1998) 테이크 앨범은 서태지가 은퇴하고 머리카락 한 올도 보여주지 않는 상태에서 음악만 오롯이 보내어온, 단 하나의 활동도 없었던 전설적인 앨범이다. 노래들이 제목도 없이 Take 1에서 Take 6까지 있고 마야 Maya, 라디오 Radio, 로드 Lord라는 짧은 곡이 처음과 중간에 브리지 식으로 들어가 있다.


이중 테이크 6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

새들의 노래속에 깨어날 수 있어
새로움의 느낌속에서
허전한 마음들도 함께 살고 싶어
그리움을 가득 안고서

밤마다 하늘을 봐 소식을 전해들어
아쉬운 가슴에만 묻어두었던 사랑해왔던

...

https://youtu.be/QFaIXFMVdv8?si=BlPp_JmbaENFVRv3


여러 가지 압박과 창작활동의 스트레스로 다시는 음악을 못할 것 같았던 그는 4집 활동 후 은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몰아넣는다. 미국으로 떠나 간신히 겨우겨우 자연 속에서 찾은 자신의 평화를 살짝 팬들에게 보여주는 듯한 노래가 테이크 식스이다.

이런 대자연에 대한 묘사는 아이들 시절인 1-4집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다. 그는 서울의 스튜디오와 자기 집을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했고 뮤직비디오 촬영을 제외하면 멀리 떠나지도 못하는 생활을 해왔다. 

은퇴를 작정하고 쓴 4집 (1994) 프리스타일 가사는 이렇다


항상 난 지나치기만 했네

이젠 난 미련없이 끝내

됐어 찾아냈어 난

모두가 또 나를 원하는가

이제 난 바라는 건 없어

나는 Rock & Radio & D.A.T.

나의 기타 Big energy

나의 장갑 속의 너의 큰 반지

눈부신 햇살에 내 모든 것을 맡기고

오래된 그리움은 모두 벗어제끼고

나의 그 생각들엔 멋진 날개를 달아

이제는 난 지치지 않아

모든 걸 난 여태 이겨내왔어

밤새워 내린 하얀 눈과

아침을 열어주고 있는 태양

내 맘을 자극하는 바람

난 지금 시작해

https://youtu.be/oOEbTr1S06g?si=jdZ1Z5dmde1FYHg_


1-4집 활동 내내 '항상 난 지나치기만 했'던 그는 이젠 '바라는 건 없'고 '기타'로 상징되는 음악, '장갑 속의 큰 반지'로 상징되는 팬들의 사랑만 있으면 되기에 밤새워 내린 하얀 눈과 태양과 바람을 만끽하러 그는 프리스타일을 남긴 채 떠나 버린다.

그 후에 자연 속에 침잠해 버린 해버렸고 은퇴 후에야 모아이같은 가사들이 나오는 것이 팬의 입장에서는 안타깝기도 하고 안도가 되기도 한다. 그의 방랑벽 스타일은  9집(2014)에서는 '숲속의 파이터'로 동심까지 구현하고 만다. 


어째 오늘은 묘하게

나른해져 재미 없어

가끔씩 나오던

참신한 가사도 안 떠올라

내 방은 환기가 필요해

난 떠날거야

내 몸이 더 질식하기 전에

...

난 어째서 의심에 온 힘을 다 뺐을까

이 레몬을 한입 깨물고

온 세상을 다 만져볼 테니

https://youtu.be/I1rsYAgJhVM?si=Ob-d3ewdJsX4kmlj


이미 모아이로 그의 커다란 줄기인 자연사랑과 방랑벽의 정점을 통과했다고 나는 생각했는데 부록인 9집에서 그는 나의 이 논지에 완전히 힘을 실어주며 방점을 땅땅 찍는다. 그는 자신의 '몸이 질식하기 전에' '떠날 거야' 외치는 사람이다. '온 세상을 다 만져볼' 욕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지금도 지구 어딘가로 떠나 있다. (확실히 우주는 아닐 거라는 확신도 나는 없다.) 이젠 덩치가 커져서 아내와 딸과 함께 떠나 있다. 아마 모이이의 '산들바람', 프리스타일의 '내 맘을 자극하는 바람', 숲속의 파이터의 '환기'에서 계속 주지되듯이 바람 없이 살 수 없는 음악가가 서태지이다. 그가 우리에게 자신은 어떤 사람이라고 다 말해놓았는데 새삼스럽게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하겠는가? 그러니 10집이 나오지 않는 거다.


(이미 말했듯이 나는 서태지의 열혈팬이고 10집 따위는 나올 리 없어라고 말하면서도 '아무튼 서태지' 이기 때문에 그가 하는 건 다 좋아할 거라 10집 나온다면 뒤통수 맞았다면서 너무나 좋아할 거라는 거 또 여기다 밝히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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