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문예무크지 <오즈> 1호에도 실려 있습니다)
셜록 홈즈는 누군가의 생활이 궁금하면 예금 통장을 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이라면 예금 통장 대신 휴대폰이 적당할 것이다. 휴대폰의 전화번호 목록은 인맥을, 사진은 관심사를 나타낸다. 지도 앱은 휴대폰 주인이 어디에 갔는지 기록하고 돈을 쓴 내역은 은행과 신용카드 앱에 고스란히 담긴다. 이메일에는 업무 내역이 기록되고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 계정은 휴대폰 주인의 내밀한 심경까지 비춰낸다. 내비게이션과 쇼핑 기록을 정리하면 휴대폰 주인의 일상을 초 단위까지 복원하기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휴대폰에는 그 주인의 일상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담겨 있는 것이다.
휴대폰만이 아니라 공공장소와 쇼핑몰 등 몇백 미터마다 설치된 CCTV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적들을 실시간으로 기록한다. 이미 중국 정부는 셀 수 없이 많은 CCTV를 설치하여 사람들의 얼굴을 인식하고 행동을 점수화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공공질서를 어길 때마다 점수가 깎이면 은행 대출이 막히거나 철도 여행권 구입 순서가 밀리기도 한다.
사생활 보호와 인권 문제는 차치하고 과연 이런 세상에서 추리소설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마음만 먹으면 흩어진 데이터를 모아 피해자의 행적을 복원하고 범인을 찾아내는 일은 아주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추리보다 앞뒤 사실관계를 맞추는 단순 노동에 가까워 보인다. 다만 데이터를 정리하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게 뻔하다. 추리소설 주인공은 밤거리를 뛰어다니면서 범인의 뒷덜미를 잡아채는 대신 밤새도록 맹한 표정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할 것이다. 재미는 그렇다 치고 주인공이 얼마나 바보 같아 보일까.
그렇기에 많은 추리작가들은 컴퓨터 해킹 등 복잡한 기술적인 문제들은 전문가 조연을 끌어들여 따로 해결하는 구성을 택한다. 설령 실리콘 밸리에서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해도 목 늘어난 티셔츠에 뿔테 안경을 쓰고 창백한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난 컴퓨터광을 주인공으로 삼아서야 독자 반응이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 추리소설만이 아니라 추리적인 구성을 채택하는 영화와 드라마들도 해커나 컴퓨터 기술자를 조연으로 배치한다. 주인공은 이들의 조언에 따라 증거를 모으고 범인을 잡아낸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이러한 기술자들은 조연에 불과하지만 이미 현실의 범죄 수사에서 디지털 포렌식 등 컴퓨터 기술은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언제까지 추리 소설이 발로 뛰기만 하는 구성으로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던 해커가 탐정이 되어 세상에 뛰어든다면 추리소설은 어떻게 변할까. 홍콩의 추리작가 찬호께이의 소설 <망내인>은 해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사건은 평범한 여중생 샤오원이 인터넷 욕설과 집단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투신자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샤오원의 유일한 가족이자 언니인 아이는 충격을 받고 고민하다가 한 탐정을 소개받는다. 그 탐정은 아녜라는 해커의 주소를 알려주면서 ‘이 사람은 전통적인 방식의 탐정이 아니다’라고 덧붙인다. 그를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알려주는 셈이다. 이제부터 이 소설은 전통적인 추리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녜라는 해커는 막대한 돈을 받고 해결사 노릇을 하지만 그 내력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하지만 일단 사건을 잡았다 하면 확실하게 해결하고, 애프터서비스까지 인심 좋게 해 준다. 성질은 거칠고 무뚝뚝하지만 유능한 것은 확실하다. 아이는 저축한 통장을 탈탈 털어 아녜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누가 동생을 괴롭히고 자살에 이르게 하였는지.
아녜는 컴퓨터를 거의 모르고 스마트폰이나 겨우 쓰는 아이에게 해킹의 개념을 가르쳐준다. 해킹이란 네트워크에 잠입하는 컴퓨터 기술만이 아니라 정보를 캐내는 모든 방법을 일컫는다고. 컴퓨터 전공을 가진 작가답게 <망내인>에는 IP 분류, 휴대폰 복제, SNS 데이터 분석, 와이파이 해킹, 지하철 CCTV 해킹, 한정 영역 소음 발생 등 <본> 시리즈에 나올 법한 기술들이 화려하게 등장한다. 게다가 아녜는 변장을 하고 아이의 애인 행세를 하면서 샤오원의 학교 선생과 친구들을 홀랑 속여 넘긴다. 그 과정을 통해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내면이 얼마나 무방비 상태인지 여실히 묘사된다.
그렇다고 찬호께이가 기술 문명의 편의성에 점령당한 현대인 비판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찬호께이의 관심은 극단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에 짓눌린 홍콩 사회에 향해 있다. 추리소설로는 조금 불필요하다고 여겨질 만큼, 찬호께이는 아이가 동생을 잃고 외톨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히 서술한다. 아이의 부모는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가난뱅이로 아버지는 일하다 죽었지만 회사에게 보험금을 빼앗겼으며, 어머니는 두 딸을 키우며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암으로 어이없이 세상을 뜨고 만다. 가난과 죽음이 이어지는 아이의 가정사는 곧 홍콩의 사회사기도 하다. 설령 막대한 돈을 벌었어도 아이들을 가정부에 내맡기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는 홍콩 상류층 가정의 메마르고 차가운 실상도 눈에 잡힐 듯 그려낸다.
아이는 동생 샤오원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고등학교만 마치고 바로 취업을 했다. 홍콩처럼 경쟁이 극심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대졸 학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는 동생이 욕을 얻어먹고 간단히 자살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이는 집요하게 아녜를 쫓아다니며 사건을 캐려 하고, 아녜는 귀찮아하면서도 아이의 사건을 맡아 결국 끝장을 본다. 이러한 모습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독자들에게 공감을 사지 않을까 싶다. 홍콩도 한국도 국가와 자본에 눌려 공동체라는 것이 거의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개인들은 국가 권력에 자유를 내맡기고 돈을 모으기 위해 인격을 내다 버려야 한다. 국가와 자본의 눈먼 속성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있어야 하지만, 홍콩과 한국에는 그런 것이 너무 미약하다.
최신 컴퓨터 기술과 스타트업 기업 내부에 대한 묘사 등 세련되고 정교한 홍콩 자본주의가 그려지지만 <망내인>의 등장인물들은 이미 기존의 추리소설에서 익숙한 인물들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착하고 젊은 여성인 아이를 중심으로 경솔하고 이기적인 아이들, 자기 욕망만 앞세우는 위선적이고 어리석은 남자들이 대조된다. 해커 아녜는 이들을 모두 비웃듯 내려다본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들 인간 존재는 변하지 않는다. 예금 통장도 휴대폰도 결국 담긴 내용은 똑같은 것이다. 욕망과 타인을 짓밟는 이기심.
<망내인>은 해킹 기술 묘사도 흥미롭지만 홍콩인의 일상이 잘 드러나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아녜가 사는 곳은 홍콩섬 서부 케네디 타운으로, 홍콩에서는 변두리에 속한다. 아이의 직장이자 여행객 방문 명소로 꼽히는 홍콩 중앙 도서관은 밝은 노란색 건물로 코즈웨이 베이의 빅토리아 공원 맞은편에 있다. 작가가 일부러 배치한 듯 케네디 타운까지 트램으로 한 번에 일직선으로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건의 발단이 되는 샤오원의 성추행 사건은 홍콩 구룡반도 북쪽으로 가는 지하철 노선에서 발생하는데, 홍콩 북부는 지금도 개발 중인 신도시 지역이다. 작중 홍콩 정부가 가구원 수에 따라 주택을 배정해주는 제도도 눈길을 끈다. 그렇지만 부모와 동생을 잃고 정든 집까지 떠나야 하는 아이의 마음은 배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정작 아이의 아버지가 죽고 보험금을 받아야 할 때 정부는 제자리를 비우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 경제적 조건을 초월하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아녜는 빌딩 청소부의 입을 통해 “협객”으로 일컬어진다. 홀로 몸을 숨기고 조정과 대치하며 몰래 백성을 돕는 강호의 무림 고수 말이다. 다만 <망내인>의 배경은 강호가 아니라 현대 홍콩이기에 아녜가 가진 무공은 막대한 자금과 컴퓨터 기술력으로 대치된다. 아마 아이도, 아녜에게 절세 무공을 배워 몰래 백성을 돕는 홍콩의 협객이 될 것이다. 아쉽게도 평범한 개인들이 공동체를 만들 가능성은 제시되지 않는다. 찬호께이에게 홍콩은 아직도 악당과 협객이 암약하는, 첨단과 강호가 뒤섞인 곳이다.
글쓴이 : 비단잉여. 뭘 보고 읽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아 결국 평론을 쓰기 시작한 대중문화 탐식자. 종이비행기는 학위 논문으로 접어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카페인 중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