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위축시킨 양적긴축이 대체 뭘까
요즘처럼 주식하기 힘든 때가 없죠. 장기투자하라던 삼성전자며 카카오며.. 심지어 때아닌 멸공 논란에 추락하는 유통회사 주식이며.. 온갖 잡음들까지 더해지는 시기입니다. 지난해 주식 투자를 시작한 주변 지인들은 마이너스, 파란색으로 물든 계좌 속 주식을 그냥 처분해버리는 경우도 있을 만큼 공포감도 상당합니다.
지금 시장을 흔드는 근원적인 불안감은 마구 밀려들던 유동성이 말라가고, 추세를 되돌릴 힘이 점점 약재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돈을 무한정 찍어낼 것 같던 연준의 마음이 돌아선 뒤 연쇄적으로 주식시장이 기울고 있기 때문이죠.
투자자들의 바람과 달리 지금 미 연준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시장을 달래가며 눈앞에 닥친 인플레이션을 억눌러야 하는 어렵고 까다로운 숙제를 떠안고 있기 때문이죠.
이번주 기억할 장면 : '비둘기인듯 매인듯' 연임 앞둔 파월 "양적긴축은 연말께나"
미국 현지시간 11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추천으로 4년 연임을 하기 위한 하원 인사청문회에 출석했습니다. 마침 지난 연말 이후 가파르게 진행 중인 연준의 긴축 속도를 가늠할 자리라 모두가 촉각을 세웠던 하루였죠.
파월 의장은 공화당 리처드 셸비 의원이 초인플레이션 시기 연준을 이끌 던 폴 볼커처럼 책임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묻자 통화정책의 정상화되어야 하는 시점이라며 짤막하게 정책 방향을 언급했습니다.
"If things develop as expected. we'll be normalizing policy, meanning we're going to end our asset purchase in March, meanning we'll be raising rates over the course of the year"
파월 의장의 발언중 핵심 2문장은 이렇습니다. "만일 상황이 예상대로 전개된다면. 우리는 정책을 정상화할 것입니다. 즉 오는 3월에 자산매입을 마무리할 것이며, 올해 안에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At some point perhaps later this year we will start to allow the balance sheet to run off, and that's just the road to normalizing policy.”
파월 의장은 이어 "올해 말쯤에는 대차대조표 조정을 시작하도록 할 것"이라며 "그것이 정책을 정상화하는 길"이라고 밝혔습니다.
파월이 시장을 달래는 비둘기다운 발언을 내놨지만 긴축 시점이 다소 늦춰질 수 있다는 점 외에 낙관할만한 포인트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포에 질렸던 시장은 이 말 한마디로 숨고르기에 들어갔죠.
이번 주 기억할 숫자 : 7%
우리 시간으로 어제(12일) 밤 10시 30분 공개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7.0% 상승해 1982년 6월 이후 최고치 상승률을 보였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연 6%를 넘는 물가 상승 속도가 더 가팔라진 셈이죠.
이에 반해 미국의 경제활동을 평가한 베이지북에서 미 연준은 11월 초에서 12월 말까지 완만한(modest)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속도 면에서 다소 더디게 진행되는 셈인데, 성장률을 바탕으로 금리를 서둘러 올려야 하는 연준의 행동을 더 부채질할 가능성도 있어보입니다.
시장이 두려워 하는 '양적긴축'이 뭘까
연준은 당초 작년 12월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와 달리 이를 막을 수단 즉 긴축에 대한 행동에 나설 힌트는 숨겨왔습니다. 시장은 파월이 '일시적' 인플레라는 말을 떼어내야 한다고 할 때도 반신반의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달초 공개된 FOMC 의사록에서 '대차대조표 규모 조정'이라는 단어로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해를 넘기면서 연준 인사들의 발언 수위가 차츰 높아지고 있습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비롯해 연준 매파 인사들은 올해 총 4번의 금리인상을 언급하고 있고,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연은 총재 조차도 금리 인상 후에 양적 긴축을 말할 만큼 유동성 조이기가 임박했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내고 있죠.
연준이 이렇게 서둘러 긴축을 말하는 건 과거 역사를 통해 이유를 짚어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역사를 거슬러 짚어보면 1980년대 'The Great Inflation'이라 불리는 최악이 시기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인 제너럴 포드는 WIN(Whip Inflation Now)라는 인플레 억제책까지 내놨지만 연준이 연 20%에 달하는 살인적 금리인상을 하고서야 물가가 하락하고 뒤늦은 경기 침체가 찾아왔습니다.
연준은 이러한 과거 만큼은 피하고 싶은 겁니다. 코로나로 인해 단기간에 자산을 2배로 불려버린 원죄. 그래서 현재 8조 8천억 달러에 달하는 유동성으로 인해 발생한 물가 상승의 추세, 인플레이션 억제에 초점을 맞추고 긴축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물론 시장은 그동안 이 자금으로 달콤한 시기를 누렸습니다. 연준은 코로나19 위기가 터진 직후 금융위기 대응의 실패를 상기하며 금리인상만으로 시중에 유동성이 공급되기 어렵다고 보고 국채, 회사채 매입으로 시중에 직접 돈을 공급해왔습니다. 이게 작년 말까지 매달 1,200억 달러에 달했죠. 그 숫자가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 무려 8조 8천억 달러에 달하는 연준의 자산입니다.
이 과정을 조금 더 뜯어볼까요.
전통적으로 통화량을 조절하는 건 금리죠. 기준금리는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자금을 빌려줄 때 정하는 초단기 금리를 말합니다. 미국은 주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오랜기간 0%대 사실상 제로 금리(실질적으론 마이너스에 가까운) 금리 정책을 써왔습니다.
이렇게 초단기(하루 미만) 기준금리를 낮추면 10년물 국채, 30년물 국채 등 장기금리도 차례로 낮아지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돈이 도는 거죠.
하지만 코로나와 같은 대형 악재가 터지고, 이로 인해 시중의 유동성이 막혀버리면서 이런 수단이 잘 듣지 않게 됩니다. 금융위기 때와 마찬가지로요. 이렇게 되면 경기가 불투명하고 돈이 돌지 않으니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장기국채금리가 떨어지지 않는 거죠.
이걸 보다 못한 연준은 금리내리는 것으로 모자라 아예 직접 장기국채를 사들여 쌓아두기 시작한 겁니다. 달러는 사실 무한정 찍어낼 수 있다는 걸 이 과정에서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죠. 연준은 이걸 대차대조표라는 걸로 기록해두는데 이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금융위기 직후 4조 달러, 코로나 직후 8조 달러를 가뿐히 넘겼습니다. 원화로 9천조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시중에 현금이 풀리고 이게 곧 우리가 알고 있는 양적완화(QE)입니다. 비정상적 경제 상황에 맞춰 동원한 거대 유동성으로 경기는 살아났으니 이제 이걸 잠그는 겁니다. 매달 1200억 달러씩 사들이던 걸 서서히 줄여서 오는 3월이면 제로로 만들어서 추가적인 공급을 뚝 끊겠다는 겁니다.
연준도 할 말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돈이 마구 풀리고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또 다시 위기가 찾아오면 정말 쓸 수 있는 유동성 카드, 경기부양 카드가 모조리 소진된다는 거죠. 올릴 수 있을 때 즉 성장이 버텨주는 환경에서 금리 빨리 올리고 유동성 회수해서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러한 과정을 겪었던 시장도 이를 모를리 없습니다. 문제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다음 스텝이 남아있다는 거죠. 바로 금리인상보다 과격한 자금 회수 조치, 그동안 쌓여있는 국채를 풀어서 주식이며 신흥국으로 빠져나갔던 온갖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상황입니다. 바로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 QT)'입니다.
파월 의장의 청문회 전까진 시장 참가자들은 상당히 비관적이었습니다. 양적긴축이 3월 직후 상반기에 시행되거나 금리인상과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는 공포감 때문이죠. 다행히(?) 파월이 증언대에서 시장을 달래는데 성공했지만 완전히 불안을 해소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시장은 한 차례 고비를 넘긴 듯 보입니다. 예상 범위 안의 물가상승률과 덜 과격했던 파월의 발언에 안도하는 듯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내달 연준이사들이 모여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열게 되면서 또 어떤 시그널을 낼지, 가령 금리 인상을 더 빠르게 가져가고, 긴축 시기를 당긴다면 시장은 또 한 번 흔들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비관적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 월가 제왕, JP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CEO는 올해가 최고의 한 해가 될 수 있다고 낙관을 하고 있죠. 중국의 사례를 보듯 유동성을 회수하려다 부작용으로 일부 경제주체들이 버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니 도로 돈을 살짝 푸는 조치를 내놓을 수도 있다 분석도 나옵니다. 어찌보면 너무 하락해버린 시장에서 이렇게라도 온갖 기대섞인 썰이라도 붙잡아 보고 싶은 심정인지도 모릅니다.
성장보다 급한 인플레이션 불끄기, 이 와중에 앞으로 금융시장과 신흥국이 떠안게될 어마어마한 리스크들. 과연 미국 연준은 어떤 해법을 준비하고 있을까요? 한국 시장은 이 과정에서 잘 버텨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