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자유를 제하노라

모유수유, 약자 인생의 시작

by OZ

친정이 지방이다보니 엄마를 자주 보기가 힘들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외손주가 얼마나 아른거릴까. 그 생각에 매일 영상통화를 한다. 참 세상 좋아졌지. 그런데 한번은 잠깐 스친 내 얼굴, 내 표정이 눈에 밟혔는지 언젠가부터 내 안부를 먼저 묻는다. "밥이랑 먹었냐, 아이 잘 때 꼭 쉬어라" 등등. 사실 가까이 살면 도와줄텐데 육아와 일 병행하느라 고생한다는, 엄마 나름의 표현이다. 그걸 잘 알면서도 난 괜히 마뜩찮다. "내가 알아서 해." 짜증부터 튀어 오른다.


모유수유 13개월. 처음부터 반드시 모유수유를 하겠다며 고집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기피하지도 않았다. 물론 이따금씩 걱정은 했다. 안그래도 빈약한 가슴, 수유하면 축 쳐진다는데 괜찮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걸 선호하고 다소 팔랑귀 성향이 있는 나는 수유실장님의 말 한마디에 완모맘의 길에 들어섰다. 출산 후 엉거주춤하지만 우여곡절 첫 젖을 물리는 날 보고, 대번에 하는 말이 "완모해도 되겠어요."였다. 아이가 물기 좋은 크기에, 유선 흐름이 좋다나 어쩐다나. 푸핫. 민망하면서도 뭔가 옆에 있던 몇몇 산모들 사이에서 왠지 모를 우쭐함이 생겨 잠깐 웃었던 기억이 난다. 완모가 뭐라고...


그렇게 시작한 모유수유는 한순간에 날 노예가 만들었다. 인간밥차가 되면서 난 이동의 자유가 제한됐다. 아이의 활동 반경에서 벗어나면 안됐다. 울음 사이렌이 울리면 언제라도 바로 투입돼야 할 준비가 돼야 한다. 자다가 아이가 울면 툭툭 발로 남편을 깨워 분유를 타먹였다는 선배맘들의 이야기는 내게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선지 남편은 지금도 아주 잘 잔다. 내 귀에는 콕콕 잘도 꽂히는 아이의 칭얼거림이 남편의 주파수만 벗어나는 건지, 한번 잠들면 아이 울음 때문에 그리고 내 발길질? 때문에 깬 적이 거의 없다. 대신 모유수유로 아이와 난 친밀해졌다. 지금도 아이가 가슴과 배를 오가며 뒹굴뒹굴할 때면, 아이만큼이나 내 기분도 좋다. 이건 설명할 수 없는 좋은 에너지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윤기 하나 보이지 않던 안색이며, 한움큼씩 빠지는 머리칼이며, 눈두덩이가 고스란히 드러난 거울 속 내 모습은 순식간에 방금전까지 좋았던 기분을 삼켜버린다.그리고 애꿎은 엄마에게 큰 소리만 친다.


사실 모유수유 장단점 비교를 하며 찬반 토론을 해보자 한 게 아니다. 그저 살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또 내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문제들이 적잖게 일어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모유수유는 하나의 사례고, 전반적인 육아세계에가 그런 것 같다. 어느 시기까지, 그러니깐 적어도 의사소통이 되기 전까지 난 아이 앞에서 덩치만 클 뿐, 미미한 존재, 철저한 약자다. 무언가 요구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약해지는 거고, 뭔가 충전 없이 자꾸 방전만 되다보니 자존감과 성취감 모두 떨어지나보다. 일단 이유 모를 무기력함과 답답함, 그 원인을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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