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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굽이 벗겨진 의자
사용자의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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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9. 2024
자주 가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문득 의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식당에서 본 보통의 스툴
구조가 잘 잡혀 튼튼한 보통의 스툴이다. 별생각 없이 지나칠만한 의자에서 내 시선이 머문 부분은 의자의 발굽이다.
까진 발굽
들여다보면 의자의 발굽이 반쯤 뜯겨나갔다. 재밌는 사실은 이 공간의 모든 의자 발굽이 의자의 바깥쪽 부분만 벗겨졌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을 보니 의자 다리에 발을 걸치고 앉아있다. 내 자세를 보니 나도 발을 바닥에 붙이지 않고 의자 다리에 걸치고 있다. 아마 여기 있는 의자들의 발굽은 전부
사람들의 발에 눌리고 스치며 점차 깎여나갔을 터였다.
바닥이나 의자 다리가 상하지 않게 씌우는 이 발굽은 '글라이드(glide)'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말 그대로 미끄러짐을 위한 부품이다. 마찰을 줄여 미끄러지도록 해서 손상을 방지한다.
글라이드는 가정, 사무실, 실내외 같은 다양한 사용 환경을 고려해 형태와 소재, 견딜 수 있는 하중 등을 결정한다.
보통 상업 공간에서 쓰는 의자는 사용하는 사람이 다양하고 많아 파손되기 쉬우므로, 글라이드에 어느 정도 경도가 있는 소재를 사용하고 탈락 방지를 위해 외부 충격에 큰 지장이 없도록 만든다.
바깥이 벗겨진 이 글라이드는 무른 소재와 더불어 위에서 주는 충격에 탈락되기 쉬운 형태를 취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인 상업공간 가구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아마 이 발굽을 씌운 사람은 쉽게 해지리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경제성이나 여타 이유를 들어 이대로 진행했을 수도 있고 그냥
식
당 사장님이 임시방편 삼아 대충 씌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인간의 행동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사용자의 습관과 행동방식이 우선으로 고려되
지
않았다. 인간이 사용하는 물건이 인간중심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오류가 발생한다.
잘못된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단지 상황과 필요에 따른 선택만 있을 뿐, 선택이 적절한지는 사용자의 피드백을 통해 가늠해 볼 수밖에 없다.
반쯤 떨어져 나가 버린 이 글라이드는 경제적 관점에서는 이익을 취하고 사용성의 관점에서는 손실을 본 글라이드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글라이드'라는 제 기능은 여전히 하는 것 같으니 그걸로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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