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굽이 벗겨진 의자

사용자의 습관

by p id


자주 가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문득 의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식당에서 본 보통의 스툴

구조가 잘 잡혀 튼튼한 보통의 스툴이다. 별생각 없이 지나칠만한 의자에서 내 시선이 머문 부분은 의자의 발굽이다.


까진 발굽

들여다보면 의자의 발굽이 반쯤 뜯겨나갔다. 재밌는 사실은 이 공간의 모든 의자 발굽이 의자의 바깥쪽 부분만 벗겨졌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을 보니 의자 다리에 발을 걸치고 앉아있다. 내 자세를 보니 나도 발을 바닥에 붙이지 않고 의자 다리에 걸치고 있다. 아마 여기 있는 의자들의 발굽은 전부 사람들의 발에 눌리고 스치며 점차 깎여나갔을 터였다.


바닥이나 의자 다리가 상하지 않게 씌우는 이 발굽은 '글라이드(glide)'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말 그대로 미끄러짐을 위한 부품이다. 마찰을 줄여 미끄러지도록 해서 손상을 방지한다.


글라이드는 가정, 사무실, 실내외 같은 다양한 사용 환경을 고려해 형태와 소재, 견딜 수 있는 하중 등을 결정한다.


보통 상업 공간에서 쓰는 의자는 사용하는 사람이 다양하고 많아 파손되기 쉬우므로, 글라이드에 어느 정도 경도가 있는 소재를 사용하고 탈락 방지를 위해 외부 충격에 큰 지장이 없도록 만든다.


바깥이 벗겨진 이 글라이드는 무른 소재와 더불어 위에서 주는 충격에 탈락되기 쉬운 형태를 취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인 상업공간 가구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아마 이 발굽을 씌운 사람은 쉽게 해지리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경제성이나 여타 이유를 들어 이대로 진행했을 수도 있고 그냥 당 사장님이 임시방편 삼아 대충 씌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인간의 행동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사용자의 습관과 행동방식이 우선으로 고려되 않았다. 인간이 사용하는 물건이 인간중심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오류가 발생한다.


잘못된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단지 상황과 필요에 따른 선택만 있을 뿐, 선택이 적절한지는 사용자의 피드백을 통해 가늠해 볼 수밖에 없다.


반쯤 떨어져 나가 버린 이 글라이드는 경제적 관점에서는 이익을 취하고 사용성의 관점에서는 손실을 본 글라이드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글라이드'라는 제 기능은 여전히 하는 것 같으니 그걸로 된 걸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