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에 남겨진 단서와 오류
언젠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양치를 하려고 치약 뚜껑을 열려고 했다. 딴생각에 잠겨 하염없이 뚜껑을 돌리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안 열리지..?'
나는 당겨서 뽑아야 열리는 뚜껑을 한참 동안이나 돌리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왜 혼란을 겪었을까?
인간은 물건의 다양하고 세밀한 요소로부터 사용 방법의 단서를 얻는다. 의식적인 수준부터 무의식적인 수준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직관적으로, 때로는 경험에 기반해 단서를 해석한다.
그래서 물건을 만들 때 사용자를 중심에 두는 디자이너는 그 물건을 통해 일어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표면에 세로로 요철이 있으면 돌릴 수 있음을 암시하고, 가로로 요철이 있으면 당길 수 있을 것처럼 보이며, 경첩과 틈이 있으면 여닫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
요철은 특정 방향으로 마찰력을 제공하고 작동방식이 눈에 보이는 단순한 장치는 사용법을 이미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경험적으로 그 사실을 안다.
단서를 해석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도 한데, 같은 문화권에 있을 때처럼 공유하는 사고체계가 있을 경우 비슷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크다.
위 사진의 치약 뚜껑은 나를 좌절시켰던 뚜껑과 다르게 적절한 방식으로 행동을 유도한다. 유연한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져 뚜껑의 넓은 부분에 힘을 살짝 주기만 하면 뽑히면서 열린다. 이렇게 물성을 이용해 감각적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똑같이 생긴 어떤 뚜껑은 돌리고 다른 것은 당겨야 하듯 제각각이라고 해서 특정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일상 물건의 경우 행동에 대한 결과가 즉각 피드백되기 때문에 안 열리면 금세 다른 방법을 시도하면 되므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발생할 수 있는 오류에 관대해도 됨을 시사하지는 않는다. 치약처럼 단순한 용품이 아니라 기계 장치처럼 복잡함이 더해질수록 사용자는 좌절을 넘어 위험을 겪기도 한다.
디자이너는 단서를 남기는 사람이며 사용자는 해석한다. 디자이너가 잘못된 메시지를 남기면 사용자는 때로 미제 사건의 늪을 헤맨다. 그러므로 돌아갈 모양새라면 돌아가야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