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위의 쓰레기

의도하지 않은 오류를 대하기

by p id


사회 문제

담 위에 버려진 일회용 컵

동네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어느 집 담 위에 일회용 컵이 버려져 있었다. 우리는 도심 곳곳에서 익명의 누군가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 없는 행동을 자주 목도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의도와 오류

사물에는 기능하고자 하는 바, 즉 만든 이의 의도가 담겨 있는데 사용자가 의도에서 벗어나 사용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킨다면 디자인에 오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담에는 쓰레기를 버리고 가라는 의도가 녹아있지 않다. 담을 만든 이의 의도는 비인가자의 출입을 막는 것이다.


상호작용과 제약의 부재

인간의 행동은 개인의 특성이 사물, 주변 환경 등의 상황과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유도되는데, 상황에 적절한 제약이 없을 경우에 오류가 발생한다.


도덕적 자아가 약한 사람은 남들이 버리니까, 또는 원래 지저분한 공간이니까 그래도 된다고 합리화해서 버리기도 한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동조'라고 한다. 또 자기 과시성향이 강한 사람은 법이나 사회 규범에 반항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함으로써 그렇게 행동하기도 하는데, 이는 자기 강화(self-enhancement), 리액턴스(reactance) 효과 등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사용자는 레기를 버리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 즉 제약이 없는 사물, 공간과 같은 상황을 만나면, 하려던 행위를 수행한다.


제약

이러한 오류는 상황에 물리적, 사회적 장치와 같은 제약을 둬서 해결할 수 있다.


물리적 제약

물리적 제약 두기는 구조상 특정 행위가 어렵도록 설계해서 오류를 방지하는 간단한 방법이다.


담의 경우 윗부분이 평평하지 않고 경사진 면으로 만들어진다면 위에 물건을 두는 행위를 차단할 수 있다. 가장 윗 단의 벽돌만 기울여 쌓거나 경사진 모양으로 콘크리트를 타설하기만 해도 그 위에 물건을 둘 수 없는 단순한 물리적 제약이 만들어진다.


또는 손 닿는 범위를 넘도록 담을 높게 쌓거나, 화단처럼 담벼락으로 접근을 막는 요소를 배치할 수도 있다.

담벼락 앞의 화단

자연 감시

때로 담 허물기도 좋은 선택이 된다. 사람은 개방된 장소보다 단절된 공간에 있다고 '느낄 때' 쓰레기를 투기하거나 흡연, 노상방뇨 등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더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담벼락처럼 시야를 차단하는 무언가의 앞에서 사람들의 눈에 덜 띈다고 생각하고 그런 행동을 더 많이 한다. 비인가자의 통행을 막기 위해 쌓은 담이 오히려 다른 문제를 낳기도 하는 것이다.


범죄 예방 환경 설계(CPTED)라는 분야에서는 여러 사람의 시선에 노출되는 자연 감시효과가 있는 장소가 범죄에 덜 노출된다고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면 처벌받을 가능성을 높다고 느낄 수 있으므로 자신의 행위가 가진 리스크를 더 크게 인식하게 된다.


상황에 초점 맞추기

단순하게 제약을 두는 이런 방식은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처럼 메시지를 직접 전달할 때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은 때로 구체화된 언어보다 긴밀히 설계된 사회 장치를 따라 더 쉽게 유도된다.

쓰레기가 버려진 쓰레기 투기 금지 구역.

사회화된 일반인은 내면에 사회 규범이 자리잡지 못한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상대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고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만 사람을 변화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에 항상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다.


사람이 아니라 사물, 상황과 환경에 초점을 맞추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인간의 행동이 상황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열리지 않는 뚜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