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포장 용기로는 매장 내에서 취식이 불가능합니다."
직원이 우리가 주문한 음료를 포장 용기에 담아내어주며 말했다. 처음부터 카페에서 먹고 갈 생각으로 주문했던 터라 당황했다. 먹고 갈 테니 용기를 옮겨줄 수 있냐고 요청하고 자리로 돌아오는 내 모습을 지켜본 동료가 우리가 포장으로 주문했던지 의아해했다. 키오스크에서 함께 메뉴를 고르며 주문했기 때문에 주문을 잘못 넣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었다.
주문했던 과정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결제하기 전에 카드 투입구를 못 찾아서 잠시 헤맸고, 그전에 나는 유자생강차를 골랐고, 이전에 동료는 초코 라떼를 골랐고.. 그전에는 주문하다 말고 떠난 앞사람이 선택해 둔 아메리카노를 취소했지. 생각해 보니 우리는 어디서 먹을지 선택한 기억이 없다. 그렇다면 포장/매장 선택지는 어디로 갔을까?
"아, 앞사람이 포장을 선택해 뒀는데 우리가 그걸 모르고 그냥 주문했나 보네요."
동료가 납득했다. 다시 나온 음료를 가져오며 일을 두 번 하게 만들어 직원에게 미안한 마음과 그냥 버려졌을 음료 컵을 생각하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포장 선택지를 마지막에 제시하지 못할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자주 이용하는 매장들의 키오스크를 떠올려보며 대부분 마지막에 포장할지 골랐음을 떠올렸다. 선택지를 처음에 제시했던 다른 매장에서도 포장을 선택했다가 마음이 바뀌어서 매장에서 먹고 가기를 선택하려고 골라두었던 메뉴를 전부 취소하고 처음으로 되돌아갔던 기억도 났다. 여러모로 실수를 줄이고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서 포장 선택지를 마지막에 배치하는 편이 좋아 보였다.
순서는 맥락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이다. 우리가 어떤 주장을 할 때 대화의 처음에 제시하느냐 마지막에 제시하느냐에 따라 뉘앙스나 맥락이 완전히 바뀌기도 하듯이, 순서는 우리의 관점에 관여한다. 어디서 먹을지가 중요한 화두고, 이에 따라 뒤에 등장할 내용의 흐름이 바뀌어야 한다면 앞단에 제시하는 편이 유리할 수도 있겠다. 물론 UI를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항이 논의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종종 가는 햄버거 가게의 키오스크는 주문 과정의 첫 순서에 포장할지를 묻고 마지막에 한 번 더 묻는다. 주문할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안 그래도 절차가 많아 복잡한데 굳이 한 번 더 물어야 하나 싶다. 이런 경우는 흔하다. 인터페이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일상생활에서 불편한 점을 많이 발견한다. 이럴 때마다 '개발 시간이 너무 적었나', '디자인에 충분한 비용이 투입되지 않았나', '지난 십수 년 동안 디자인 시장이 방향을 잘못 잡아온 데서 비롯한 문제 중 하나인가' 등 여러 생각을 해본다. 갈수록 온갖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 시기에 단순한 부분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기울이는 디자이너가 더 많아지길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