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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알 Oct 19. 2020

뜨거운 자메이카에서 왈츠를

자메이카, 오초 리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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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요. 춤추는 건 어렵지 않아요. 내 손을 잡아요. 앞으로 한 발 뒤로 다시 한 발. 다시 앞으로 한 발 뒤로 한 발. 봐요, 우리는 벌써 춤을 추고 있어요. 이번엔 스핀을 해봐요, 잘했어요! 한 번 더 스핀을 하면 당신은 나에게 가장 가까이 와있고, 내 바로 밑에 입술이 있지만 오늘은 키스하지 않을 거예요.  




늦잠을 잤고, 친구들은 모두 아침 일찍 떠났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자메이카를 이렇게 보낼 순 없어서 비록 혼자라도 원피스를 골라 입으면서 애써 기분을 내고 싶었다. 반드시 현금을 쓸 것, 모르는 사람을 쫓아가지 말 것, 가급적 혼자 나가지 말 것..  자메이카를 대비한 여러 가지 지침이 회사에서 내려왔고 나는 기억나는 것들을 되뇌며 바짝 긴장을 했다. 어차피 기념품 몇 가지만 사서 돌아올 예정이었다. 


사실 당신의 첫인상은 물음표였다. 물론 훌륭한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는데 큰 도움을 받았지만, 내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 입 베어 먹으려고 했으니 나를 강하게 도발한 것이다. 당신도 두 스쿱, 나도 두 스쿱인데. 나는 단 번에 당신의 직업을 알아맞혔다. 적당한 근육과 몸의 밸런스, 넘치는 흥과 밝은 에너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누가 봐도 댄서 그 자체였다.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는데, 당신은 나와 같은 소속이 아닌 시카고에서 온 댄서, 손님이었다.


당신은 그날 이후 여러 번 내 테이블로 찾아와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얘기해 주었다. 또 어떤 날에는 마술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내 동료들이 우리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 같아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손님과 놀아나면 나는 당장 해고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도 눈치를 받았는지 서성이다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포커 테이블에서 칩을 사려고 했다. 나는 그가 돈을 잃기를 원치 않았다. 나는 그에게 다급히 곁눈질을 했다. 저리 가라고.


그는 너무 순수했다. 좋은 음악이 흘러나올 때마다 아이 같은 얼굴을 하며 나에게 춤을 추자고 졸랐다. 나는 지금 유니폼을 입었고, 당신과 춤을 출 수 없어요. 그럼 이따 밤늦게는 괜찮아요? 여긴 어디든 cctv가 있어서 힘들어요. 그는 포기한 듯 핸드폰에서 자신의 춤을 찾아 보여주었다. 처음 마주하는 낯 뜨거운 춤이었다. (그 당시 처음 바차타를 알게 되었다.) 정말 이게 당신이라고요? 그는 기대에 가득 부푼 얼굴로 내가 받은 느낌을 궁금해했다. 어떻기는, 나는 너무 질투가 날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고 그는 오히려 놀랍다는 듯 그저 춤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음악이 다시 바뀌었다.



오,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고 있어요! 우리 어서 춤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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