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능성 중독 상태였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만큼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성장했다. 현실은 미미한데 내면에 돋보기라도 달렸는지 과장된 칭찬을 해주며 숨도 돌리지 않고 다음 관문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20대 초반은 내가 생각해도 치열하게 살았다.
학업은 물론 남들이 다가는 해외 여행도 놓치기 싫었고 그에 필요한 돈도 놓치기 싫었다. 둘째로 태어나 성인이 된 이후로는 뭐든지 스스로 하고 싶었다. 가족 안에서 늘 챙김 받아야하는 막내딸 프레임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가짜 어른 행세하느라 사춘기가 늦게 찾아왔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안에서 점점 마음의 문을 닫아갔다. 내 가능성은 나만 알아볼 거라 오해했고, 그렇게 안에만 담아뒀던 말들이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밖에 내뱉지 못하고 고여가는 말들은 썩어갔고 속은 문드러졌다.
표정만 봐도 나를 아는 엄마가 모르는 척 건네는 물음에 신경쓰지 말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기를 반복했다. 이런 딸에게 엄마는 어색한 웃음을 머금고 등을 돌린 채 셀 수 없는 서운함을 속으로 얼마나 많이 삼켰을 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좋은 날이라도 문득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 서글퍼진다.
이 가능성이 작년에 무기력증이 되어 돌아왔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게 바로 이것인가.
멋도 모르고 날려버린 부메랑이 돌고 돌아 나에게 왔고 쓰라린 생채기를 만들었다.
내 자신이 싫어지니 누구와도 만나기 싫었다.
가능성만 쫓다보니 실상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 지 알 수가 없었다. 행동 없이 꿈만 꾸는 가능성이 마음을 병들게 했다. 정말 사소한 것들 앞에서 무너졌고 일상 속 가벼운 해프닝에 고개를 숙이며 스스로를 파멸했다. 가끔은 잠이 들고 깨지 않기를 원하기도 했다. 꿈 속에서라도 행복하길 바랐고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가능성 중독에 빠져 쉴 새 없이 갈증이 났다.
물을 연신 마셔도 목이 말랐고 나는 메말라가고 있었다. 망상에 허덕이며 다른 사람의 꿈을 훔쳐 내 꿈으로 위장해 나의 가능성으로 포장했던 날들에 잡아먹힌 2020년을 잊을 수 없다.
누구나 암흑기는 온다. 그것도 아주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온다. 하지만 시련은 이겨낼 수 있을 만큼만 생긴다더니 정말이었다. 결국 견뎌냈고 지금 여기 있다.
그렇다면 나는 몇 도로, 몇 바퀴를 돌았는가.
전환기를 맞고도 360도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가는 건 아닌 지 스스로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것이 현재의 우선순위이다.
이제는 안다.
가능성은 일의 시작이며 전제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가능성은 목표가 아니다. 가능성을 발판삼아 자신을 믿고 앞으로 돌격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늘 버릇처럼 가능성을 믿어라는 이야기를 달고 살았다.
가능성을 믿되, 가능성만 믿지말라는 말을 덧붙여본다.
양날의 검같은 그 놈의 ‘가능성’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해야지
쥐고만 있다고 이기는 건 아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