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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r Pang Jul 14. 2021

((인터뷰((PaAp People 04. ㅂㄱㅎ

당신을 알기 전에 묻고 싶은 것

2020년 4월 10일 

강남역에서 만나다. 

파아프의 경영을 총괄하는 ㅂㄱㅎ의 인터뷰는 강남역 한복판 프랜차이즈 카페에서였다. 당시 나는 약속 시간에 한참 늦어, 인터뷰이인 ㄱㅎ을 기다리게 했다. 너도 나도 바쁜 사이. 말끔한 타이 정장에 왁스로 가지런히 정리한 머리의 ㄱㅎ은 파아프 안에서는 대표이사고, 경영총괄 자이고, 맏형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영업의 신으로 불리는 회사원이다. ㄱㅎ의 힘 있는, 마치 세찬 물줄기 같은 인생사가 좋았다. 그 건강한 물줄기를 따라가는 동안 지각에 대한 미안함과 초조함이, 오후 5시의 피로가 다 씻겨 나갔다. 


젊은시절의.. 아니.. 지금이랑 똑같다! 

Part 1. 초성을 통해 떠오른 것들: ㄱㅎ


‘기합’

초성을 받았을 때, 어떤 가치관을 보여줄 수 있는 단어를 떠올리거나 아니면 재치 있는 발상을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내 성격상 너무 가볍게 생각하기보다는 무게감을 두고 생각하게 된다. 가치관과 연결되는 단어로 ‘기합’이 떠올랐는데,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기본적으로 파이팅이 넘치지 않으면 안 된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이고 파이팅이 넘쳐야 하는 일들이다. 


‘기호’

또 일과 연결해버렸다. 회사 후배들에게도 강조하지만, 영업 직무는 상대방에게 내 재화든, 아이디어든 설득하여 구매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기호를 아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타인의 욕구를 끌어낼 수 있는 센스를 갖춰야 하니까, 기호 파악이 빨라야 한다.


‘건형’

모든 것은 사람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사람에 관해 떠올리다 보니 건형이가 생각난다. 건형은 현재 파아프 안에서 영업을 주된 업무로 하고 있다. 원래 회사생활이나 영업일을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장기적으로는 현장 영업의 전담자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본인이 원하고, 또 적성이 맞다면 그쪽으로 해보는 게 어떻겠냐 제안했고 구체적인 업무를 알려주고 있다. 엔지니어처럼, 영업도 어떤 것보다 잘 가르쳐야 한다. 앞으로도 나랑 많은 부분이 겹쳐나갈 친구다. 

계속 일 이야기를 했다.

전에는 겨울이면 보드 타러 나가고, 하고 싶은 걸 배우는 것도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은 취미가 별로 없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최근 10년을 돌아볼 때, 직업/봉사 등 동시에 세 가지 이상의 일을 하고 있었다.

뭐든 시작하면 결론까지 승부를 봐야 하는 성격인 것은 맞다.


Part 2. 단어를 보고 떠올린 것: 젤, 소년, 분노


‘젤’

헤어스타일을 말하는 거겠지? 

영업 업무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어쨌든 깔끔해야 한다. 제약 영업은 주로 병원 원장이라는 의사 그룹을 상대하니까. 예전 선배들 이야기 들어보면 구두가 더러우면 바로 퇴근을 시켰다고 한다. 양복, 넥타이, 구두는 항상 깔끔하게. 나머지는 많이 자유로워졌다. 

매일 젤을 바르는 건 머리가 완전히 직모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머리 가마가 4개이기도 해서다.

미용사들도 처음 봤다고 할 정도로 기이하게 쌍을 이루고 있다. 머리는 습관적으로 왁스를 바른다. (젤이 아닌 왁스) 영업은 더하기 빼기, 서로 치고받는 일이다.  처음에 호감이 없거나 너무 호감이 가면 이미 패를 뺏긴 것이다. 초기 제약영업 사원때는 행거칩도 색깔 별로 100개 이상 있었다. 양아치와 센스남은 한 끗 차이다.


‘소년’

누구나 인생의 변곡점이 있다. 승부욕이 강했다. 완벽주의와 책임감도 있는 편이었다.

중고등학교시절 학급 환경미화 콘테스트를 한다고 하면 12시까지 집에 가지 않을 정도였다. 학창 시절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누나가 훨씬 잘했다. 아이큐 160에,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모두 장학금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나는 부모님이 보기에 누나보단 못했다. 나는 타이틀이 걸려야 열심히 하는 타입이다. ‘전교 10등 하면~’이란 조건이 생기면, 전교 100등 하다가도 10등을 했다. 타이틀이 걸리면 하루에 잠 두 시간 자면서 공부하는 타입이었다.

인생의 가치관은 대학교 때 만들어졌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않았고 한 학기에 과외만 7개를 했으니, 월 200만 원 이하로 벌어본 적이 없다. 그때부터 일이 일상이었다. 그러면서도 더 많이 대학생 고유의 놀고 즐기는 시간도 가지려고 했고 학생회 활동도 더 열심히 했다. 가톨릭대학교에서 정치외교와 법학을 전공했는데, 우리 학교는 학군단이 없었다. 장교가 되고 싶었는데, 길을 알아보니 육, ROTC, 학사장교로 가는 방법이 있었다. 학사장교의 복무기간은 40개월(임관후36개월)로 4년제 졸업대상자 중 선발을 하였는데 . 수능점수, 4년 학점, 체력장, 심층 면접 등 많은 테스트를 통하여 입대했다. 비무장지대에서 1년 반을 근무하였고 군에서도 육사 출신을 이겨보겠다고, 요령을 피우지 않고 정석대로 근무에 임했다. 높은 분들이 오면 PT도 직접 했다. 

장군들은 비서가 있다. 별 2개인 사람의 비서로는 20대 중반의 초급장교 중위로 회사로 치면 사원급, 별 3개의 비서는 대위로 대리급, 별 4개인 사람은 소령으로 과장급이 비서를 한다. 수행비서를 하면서 다양한 보고 문서를 직접 열람하고 간부급 회의룬 직접 참석하다 보니, 큰 조직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울 수 있었다. 당시 장군 비서 면접을 봤었는데, 사실 조건은 맞지 않았다. 그래도 하도 열심히 군생활을 하니까 사람들이 ‘너 장기 군무할 거야? 육사 출신 아닌데 그렇게 일을 잘한다며? 말뚝박을 거야?’ 등 묻기 시작했는데, 가족들과 떨어져서 사는 건 내 가치관이랑은 달랐다. 아쉽지만 떨어졌다 생각했다. 결과는 합격. 

육사 출신이 아닌 학사장교 초급장교로서는 최전방 부대의 장군비서가 된 건 내가 1호라고 했다. 그게 사회 나가서도 참 도움이 되더라. 장교에 대해 면접시 긍정적인 데다가, 학사장교가 장군 비서를 했다고 하면 열심히 했나보다는 신뢰가 급상승하는 했던것 같다


‘분노’

군 복무 당시 경제적으로 계속 힘들었던 가정환경에서 최대로 힘든 사건이 발생했다.

아버지가 생과사를 오가는 일이 발생했고 당시 아버지만 살아난다면, 하나님이 살려만 주신다면 세속적인 인간으로 살지 않고 대범하게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기적적으로 아버지가 호전되었고 지금도 건강하게 파아프를 위한 소규모 콩 농사를 짓고 계신다.

이 일을 계기로 삶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삶. 

어찌 보면 평범한 직장인이 돈을 벌어서 자기 수입으로 순수하게 누군가를 후원하는 일이 있을까? 

5년간 연극배우였던 후배를 1인기획사를 만들어서 순수하게 후원했고, 그걸 이해해준 아내와 결혼을 했다. 

나는 지금도 월세에 산다. 부동산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이 대한민구의 젊은 청년들을 지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내가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것 좀 하라고 해서 구입한 것은 차다.

내 유일한 꿈이라면 레이싱하는 것! 

그런데 40살이 되고 회사에서 느릿한 차를 줘서 그 빠른차도 팔고 없어졌다


Part 3. 단어를 이으며 생각난 것들: 속도 + 언젠가는, 말랑말랑 x 해선 안 된다


“정확한 속도감은 언젠가는 결과로 돌아온다”


운전할 때는 빠른 걸 좋아하지만, 일에 있어서의 속도감은 빠른 것만이 답은 아니다.

전형적인 한국기업들의 무리한 성장 방식인 것 같다. 

얼마를 벌어와, 얼마만 써!

빠른 성장을 최고의 목표를 두고 직원을 소모시키면 결국 기업의 직원들은 지치고 기업은 쇠퇴한다고 믿고 있다.

어떤 일을, 어떤 마음으로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정확한 결과를 기다려야 내실 있는 결과가 돌아온다. 

부족하더라도 옳게 가다 보면 언젠가는 뒤집기가 가능하다.

적어도 불행하게 살진 않게 된다. 

차를 타고 스피드를 낼 때도, 칼치기하는 놈들을 제일 싫어한다.

속도를 내는 건 앞이 뻥 뚫렸을 때만.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말랑말랑 해선 안 된다”



적어도 일을 할 때는.

일할 때 화내지 않기, 소리 지르지 않기, 권위적이지 않기.

이 세 가지를 준수함에도 누구도 나를 편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무섭고 신경이 쓰인다고 후배들이 말한다.

그게 나에 대한 평가다. 틈이 너무 없다고들 하는데, 일할 때는 그게 맞다고 본다.

실수는 감싸 안아주고 대신 책임져주면 될 뿐, 평소의 태도마저 말랑말랑할 필요까지 있나. 


인터뷰이

저는 박계형이고 그동안 쭉 기업 영업부에서 일했습니다. 마케팅을 도와 파아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파아프가 대한민국의 수많은 쓰레기 같은 회사가 되지 않길 바라며, 사람을 소모재로 쓰지 않는 회사로 만들겠다고 작정하고 덤비고 있습니다. 그런 파아프의 기준을 잘 이끄는 조력자가 되고자 합니다. 아! 저는 단소를 오래 배웠고, 클래식 라디오를 들으며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취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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