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들어주는 사람, 잘 듣는 것에 대하여

청소년 장편 소설<천사가 죽던 날>을 쓰면서

by 나비

"잘 들어주는 사람, 당신을 응원합니다." 얼마 전 출간한 저승 판타지 소설, <천사가 죽던 날> 사인본 300권에 적은 문구다. 이 소설은 청소년 자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내 어머니는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쉴 새 없이 재잘대며 쏟아내던 이야기들을 어머니는 늘 흥미로운 눈빛과 따뜻한 마음으로 들어주셨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와 같은 따뜻한 경청자는 아니었다. 듣는 것에 서툰 사람이었다. 아이들의 속삭임, 남편의 말,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늘 마음은 딴 곳을 헤매고, 생각은 홀로 먼 길을 떠나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내 이야기를 쏟아냈던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겹쳐 택시를 탔던 날들, 택시 기사가 듣든 말든, 나는 봇물 터지듯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고통의 늪에 발이 묶여 허우적거리던 때였다. 그저 누구에게라도,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심정으로라도, 제발 이 힘듦을 알아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사람을 절망의 벼랑 끝으로 내몰아, 누구든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은 절박한 심정으로 몰아간다. 그 돌덩이 같은 슬픔과 절망을 가슴속에 켜켜이 쌓아두기만 한다면, 결국 우울이라는 깊은 병에 잠식당하거나, 어느 순간 분노로 폭발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거나,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천사들, 아이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여주지 않는 어른들, 나 자신과 세상의 냉담함을 되돌아보기 위해서였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늘 "엄마는 글을 써야 하니 바쁘다"라며 아이들의 작은 손을 매몰차게 밀어냈다. 그 어린 마음에 얼마나 큰 서운함과 외로움을 안겨주었을지, 이제 와 생각하니 깊은 후회가 밀려온다.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기에 아이들을 외롭게 만들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 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돌아보면, 세상의 수많은 갈등은 결국 제대로 경청하지 않아서, 마음과 마음 사이의 소통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고민거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어른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안타까운 선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의 숫자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천사가 죽던 날>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아이들, 납골당에 차갑게 식어버린 채 모여 있는 아이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절망의 심연으로 가라앉은 그 아이들도, 단 한 사람이라도 그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그 작은 귀 기울임과 관심이 그들의 소중한 목숨을 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잘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를 여는 행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며, 마음 깊이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숭고한 행위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들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한다는 사랑의 가장 강력한 표현일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세상에 나를 이해하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갈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낼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은 바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어주는 순간, 귀 기울이는 그 찰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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