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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Apr 25. 2020

장범준의 <실버 판테온>이 나에게 던진 질문

장범준의 자유로운 음악 세계, 공자의 시경, 그리고 요즘 나의 글쓰기

토요일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자청했다. 물에 잠겨 있는 설거지거리를 하나 둘 꺼내어 수세미로 문질렀고, 반복되는 동작이 지겨워질 때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실버를 넘어 골드를 지나 판테온으로 플레를 갈 거야. 오오오.’




<놀면 뭐하니>에서 장범준이 노래 하나를 공개했다. 제목은 <실버 판테온>. 뻔한 멜로디를 가사가 살렸다. 신선한 소재와 진솔한 정서 덕분에 노래가 유쾌하면서도 의미심장해졌다. 내가 롤을 하지 않기 때문에 ‘라인을 밀고 밀리는 탑으로 로밍을 갔어 더블킬을 먹은 탑에서 솔킬을 당하네 미드로 가보자 스노볼을 굴려보자 라인을 밀고서 용타임 바텀에 궁으로 로밍을 갈 거야’ 같은 가사의 참맛을 알 수는 없어 아쉽기는 했다. 그럼에도 플레티넘 등급을 원하는 장범준의 간절한 소망은 노래 곳곳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꼭 롤이 아니더라도 게임 좀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소망에 공감하지 않을까?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은 욕망과 신의 컨트롤, 희귀하면서 성능 좋은 장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레벨이나 등급에 대한 갈망이야말로 게임을 계속 붙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 않은가. <실버 판테온>을 부른 장범준이 유재석과 게임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며 게임에 빠져있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책임져야 할 가정과 현재의 업에 전념하느라 최근에는 자연스레 게임과 멀어져 갔고 이젠 게임했던 기억조차 흐릿해졌는데……, 이 노래 하나로 오랜만에 추억 돋았다.

게임 이야기를 하던 그는 참으로 순박해 보였다.


자칭 게이머였던 시절, 단연 미쳤던 게임은 역시 디아블로 2였다. 성역(인간 세계)을 집어삼키려는 디아블로(악마)를 물리치는 것이 주된 스토리인데 이렇게만 얘기하니 참 단순해 보인다. 찾아가서 퍽, 찍, 쾅하는 게 전부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게임사는 유저들의 몰입을 높이기 위해 메인 스토리와 관련된 인물, 장소, 사건 등을 매우 세세하고 개연성 있게 설정했다. 나 같은 설정 애호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니 빠져들 수밖에 없다. 특유의 음울하면서 세기말적인 분위기와 OST는 악마들의 침공으로 위기에 몰려있는 인간 세계를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이 긴장감 속에서 각 챕터 속의 아수라장을 하나씩 헤치고 최종 보스 앞에 도달하여 마침내 그를 거꾸러뜨렸을 때의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또한 스킬 트리를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캐릭터의 콘셉트가 달라지기 때문에 캐릭터를 육성하는 것 또한 색다른 재미다.

아, 그리운 디아블로 2다!


장범준이 플레티넘을 소망한 것처럼 나도 헬 난이도에 가서 더 많은 경험치와 더 좋은 아이템, 그리고 더 높은 레벨을 얻기를 소망했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는 디아블로 2가 출시되자마자 동네 PC방으로 매일 등교했다. 학교 가는 척하며 아침부터 PC방에 들어가 저녁 먹기 전까지 게임한 후, 집에 들어갈 때에는 장거리 통학에 피곤한 것처럼 연기했다. 삼 개월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그렇게 보냈으니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미친 짓 맞다. 학기 말에 받아 들게 될 암울한 성적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그저 모니터에서 성역의 입구가 환하게 열리는 것만 오매불망 기다렸었다. 접속하면 곧장 중년의 팰러딘이 해머를 들고 내 컨트롤에 따라 메피스토를 넘어 디아블로를 향해 돌진했고, 그 악마들이 쓰러지면서 떨구는 노란색, 황금색, 초록색 아이템을 살펴볼 때는 기대감으로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어쩌다 지금 끼고 있는 장비보다 훨씬 더 좋은 게 나오면 아주, 아주 짜릿했다. <실버 판테온>을 그 당시에 접했더라면 아마 이렇게 흥얼거리며 게임했을지도 모르겠다.


‘노멀을 넘어 나이트메어를 지나, 팰러딘으로 헬을 갈 거야.’ 흐흐흐.  


바로 이 화면부터 디아블로 2 접속 시작이다.




<실버 판테온>을 흥얼거리면서 이내 설거지를 마쳤다. 노동 후 잠깐의 여유를 즐기며 커피 한 잔을 마시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게임마저 창작의 소재로 삼는 장범준, 소소한 일상까지도 가리지 않고 노래로 승화시키는 그의 순수한 음악적 세계가 새삼 감탄스러웠다. 아마 장범준보다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많겠지만, 그만큼 자유롭게 음악 하는 가수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음악을 둘러싼 주류 흐름이나 상업적 이익, 대중적 기준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순수하게 사소한 일상을 노래로 만들어 즐기는 그는, 진정 멋있는 베짱이 같았다.


여기서 장범준이 노래를 대하는 태도를 깊게 생각해 볼만하다. 내가 장범준이라면, <실버 판테온>과 같은 노래를 만들어봤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아줄까, 이 노래에 투자한 시간에 비해 얼마나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노래를 만들 시간에 대중적으로 인기 있을 만한 다른 노래를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이따위 생각들로 아마 <실버 판테온>을 만들기 주저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범준은 만들었다. 장범준은 노래를 어떻게 팔아먹을 수 있을까 궁리하기보다는, 팔리든 팔리지 않든 간에 상관없이 그저 노래를 만들어 놀뿐이었다. 그는 대중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활인이자 음악인으로서 이미 자신의 음악을 자유롭게 즐기고 있었다.


장범준은 세속적 관점에서 누가 봐도 성공했다. 대치동에 건물도 샀고 봄철만 되면 저작권료로 연평균 10억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연금이 들어오고 있으니, 물질적으로는 더 이상 부족할 게 없어 보인다. 어떤 사람은 여유가 좀 생기니 한가하게 게임이라는 유치한 소재를 갖고 우스꽝스러운 노래나 만드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내가 장범준은 아니니 속 깊은 사정까지야 알 리 만무하지만, 적어도 내가 들은 <실버 판테온>은 풍족한 자의 사치로 만들어진 노래라고 평가절하하기에는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더 높은 등급을 향한 절절한 소망이 어찌 그만의 사치스러운 감정이겠는가. 배부른 자가 시간이 남아서 만든 노래에 순박한 소망이 그토록 간절하게 담길 수 있겠는가. 돈 많은 자의 교만이나 권태, 변덕보다는 음악인으로서의 자유로움과 생동감, 진솔함을 발견했기에, <실버 판테온>은 다방면으로 생각이 뻗어 나게 할 만큼 나에게 여운이 깊었다.




시 삼백 일언이폐지 왈 사무사(詩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

공자는 <시경>을 읽고 ‘<시경>에 있는 삼백 편의 시에 한 마디로 사악함이 없다’고 평했다. 다시 말하자면 공자가 시 삼백 편을 모두 읽어보니, 모든 작품 속에 조금도 이해타산을 따지는 내용이나 사특함이 없는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 극찬한 것이다. <시경>이 옛 고전이라 수록된 작품들이 대체로 고리타분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섣부른 판단이다. <시경>은 당시 춘추전국시대까지의 고대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 불린, 진솔한 감정을 담은 다양한 생활 시를 모은 것인데, 한 마디로 고대의 대중가요집이라고 하겠다. 유교적인 충, 효 등의 전형적인 사상과 귀족들이 즐기는 모범적이고 정제된 형태의 시만이 아닌, 평범한 민중들이 다양한 상황과 인간관계 속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표현한 시들을 수록한 것이다. 이렇듯 동양 철학의 아버지와 같은 공자가 보편적이면서도 평범하고 순박한 정서를 함빡 느낄 수 있는 대중가요를 최고로 평가한 것은 <실버 판테온>을 다른 각도로 평가하는 데 참고할 만한 하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실버 판테온>도 <시경> 속 작품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상 속에서 게임을 즐기는 모든 사람의 소망을 대변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으니, 그것 또한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인간 정서를 담은 것이 아닌가. 그러니 누군가가 나에게 오늘날 노래들로 21세기 <시경>을 새로 만들어 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실버 판테온>을 수록할 것이다.

공자가 말한 '사무사'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더욱 특기할 만하다.




그러니 장범준, 그가 더욱 자유롭게 음악 했으면 한다. 그를 보면서 나도 내 굴레를 넘어 자유롭게 문학했으면 한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이제 약 100일이 되어 간다. 나의 글쓰기, 시작은 호기로웠지만 지금은 위태위태하다. 아마도 눈에 보이는 통계 지표, 사람들의 시선, 다른 작가들의 수준 높은 글과의 비교로 내 자유로운 창작의 세계가 위축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쓰고 싶은 글을 자유롭게 쓰겠다며 시작했건만 때로는 올라가지 않는 구독자와 조회 수를 바라보며 마음이 쓰라릴 때가 많다. 연약한 사람인지라 마음을 굳게 먹어도 객관적인 숫자를 보면 이내 그 마음이 흐물흐물해져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이대로 괜찮겠어? 사람들이 관심 보이는 소재나 주제를 다뤄야 하지 않아? 순수 창작물이 얼마나 가능할 것 같아? 테마 없이 그때그때 쓰는 에세이가 얼마나 인기가 있겠어? 정보를 중심으로 하는 에세이도 괜찮지 않아? 서평은, 문화예술 리뷰는? 글쓰기 실력 자체에 문제 있는 것은 아냐? 어떤 주제라도 찰떡 같이 소화할 수 있는 창작 능력이 있다면 알아서 많은 사람이 네 글을 찾아 읽지 않을까? 작가로서 글을 쓴다고 명함이나 내밀 수 있는 거야?


오만가지 의문이 넘실대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그저 가만히 해변에 앉아 끊임없이 밀려오는 생각의 너울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만 보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글 쓰는 게 버거울 때가 많아졌다. 써야 한다고 생각해도 막상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쓰지 않으면 무서운 너울, 혼란스럽게 하는 너울도 밀려오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점차 무료해지고 있다. 누런 모래밭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잠잠히 누워있는 게 오히려 고역이 될 수도 있음을, 글을 쓰지 않으니 알게 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상 결국 너울과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청명한 바닷속에서 유영하는 나의 글들을 만나야만 했다. 그러니 시퍼런 너울을 타고 더욱 깊은 바다까지 나아가야 한다. 운명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강렬한 태양 아래 수분이란 수분은 다 말라버린 채 화석처럼 퍼져 있는, 내 엉덩이 밑의 모래처럼 되고 마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너울이 밀려오지 않는 바닷가에서 혼자 멍하게 수평선을 바라보는 일은 이제 사양하고 싶었다.




<실버 판테온>을 흥얼거리며 다시 출렁이는 바닷속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끊이지 않는 너울이 나를 집어삼킬 듯이 달려들어도 한 번 발걸음을 뗀 이상 물러서지 않으리라. 수많은 의문에도 굴하지 않고 무명 시절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을 즐겼을 장범준을 떠올려 본다. 청새치와 상어와의 사투 후에 아무것도 얻지 못했음에도 다시 바다에 나간 노인처럼, 의문과 회의를 던지는 너울들에게 패배하지 않을 나를 믿어 본다. 그래서 결국 더욱더 깊은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글들을 마주하길, 그것들을 내 손끝으로 건져 올리는 순간 너울의 위협을 감수할 만큼의 환희를 만끽하길 또한 기대해 본다. 끝을 모르는 저 수평선 너머의 세계를 향해, 나의 글쓰기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    




1. <실버 판테온>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유튜브 영상과 가사를 첨부합니다. 저도 LoL(롤)은 하지 않아서 가사를 더 깊게 해설해 드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https://youtu.be/BfWqUjunXXU


<실버 판테온>, 장범준

난 몇 달째 실버 3,4에 있었어
근데 난 플레에 가고 싶다고 말했지

실버를 넘어 골드를 지나 판테온으로 플레를 갈 거야
판테온으로 운영을 잘해서 언젠가 플레에 갈 거야

판테온 오온 미드로 가보자 스노볼을 굴려보자
라인을 밀고서 용타임 바텀에 궁으로 로밍을 갈 거야
판테온

난 아직도 실버 3,4에 살고 있어
모두 다 골드도 어려울 거라 말했지

그래도 나는 라인을 밀고서 밀리는 탑으로 로밍을 갔어
그리고 3분 뒤 더블 킬을 먹은 탑에서 솔킬을 당하네

판테온 오온 미드로 가보자 스노 볼을 굴려보자
라인을 밀고서 용타임 바텀에 궁으로 로밍을 갈 거야

판테온 왜 한 건지 로밍을 가는 이유가 뭔지
차라리 가렌 레넥톤 내 라인에 집중할 걸~ 판테온~

가렌 할 거야 정글을 하면 마이를 하고
채팅을 꺼버릴 거야
성장형으로 실버를 넘어
언젠가 플레에 갈 거야

판테온 오온 미드로 가보자 스노 볼을 굴려보자
라인을 밀고서 용타임 바텀에 궁으로 로밍을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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