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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Mar 24. 2020

아내가 타 준 차에 감동받은 이유

따스한 차 한 잔 마시면서 자본주의와 인간관계까지 생각이 뻗어나가다

코로나 시대를 극복해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저마다 고군분투하고 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은 안전을 위해 아이들을 어린이집으로 보내지 않았을 테니, 그런 부모는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어른보다 아이들의 체력이 훨씬 좋은 것은 기정사실이니, 각 집의 사정이야 안 봐도 비디오, 마찬가지로 우리 부부도 체력이 거의 방전 수준이다. 한 밤 자고 일어나도 워낙 충전율이 형편없어 다음 날 아이들과 또 하루를 보내다 보면 금세 축적된 에너지가 바닥난다. 하루 이틀이면 그나마 괜찮은데 한 주가 되고 두 주가 되니 지금 내가 껄떡 고개를 넘고 있구나 싶다. 


아내는 오른쪽 어깨가 결려 파스를 며칠째 붙이고 있다. 육체노동이 쉽지 않아 요새는 역할을 조금 바꿨다. 보통은 내가 아이들이랑 놀면 그때 아내가 집안일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내가 설거지하고 쓰레기를 버리면 그때 아내가 아이들을 마크한다. 그럼에도 근육을 많이 안 쓸 뿐이지 아이들이랑 노는 것도 엄청난 체력, 특별히 정신력을 요하니, 늘 놀고 나면 아내는 널브러진다. 오늘도 아내가 아이들과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선생님 놀이의 3종 놀이 코스를 체험한 뒤, 아이들의 체력을 더는 감당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TV를 틀어줬다. 진이 빠진 아내는 아이들이 앉아 있는 소파 옆의 바닥에 쪼그려 앉아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다. 

외모는 다르지만 분위기는 딱 이랬다

아내의 짠한 모습에 눈시울까지 붉힐 뻔했다가 가까스로 참은 나는 설거지에 다시 집중했다. 열심히 그릇을 훔치던 내 옆으로 아내가 다가왔다. 갈증 났던지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나도 아내에게 마실 것을 달라고 했다. 뭐 줄까 해서, 물은 안 당기고, 커피는 두 잔이나 마셨으니, 이번에는 차를 마시고 싶었다. 피곤해 보이는 아내가 주섬주섬 티백을 꺼내 컵에 넣고 따뜻한 물을 부어 탁자 위에 올려놓고 갔다. 따뜻할 때 마시라는 말과 함께.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는 카모마일 차였다. 설거지를 다 마치고 아내가 타 준 차를 보는데 괜스레 울컥했다. 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아내가 본인도 힘든데 남편을 위해 손수 차를 준비해 줬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감동이었다. 아내와 내가 어떤 의미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사람은 혼자 나서 혼자 죽고, 혼자 가고 혼자 운다.
- 무량수경

나는 이 명언에 동의하지 않는다. 위 명언과 유사하게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라고. 태어날 때도 혼자 세상에 나와 결국 죽을 때도 혼자 가지 않느냐고. 그러니 인간은 본래 고독한 존재이므로 고독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니, 타인에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운명도 타고난 것임을 강조한다. 극단적인 사람들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류의 명언이나 인간끼리 긴밀한 관계를 맺는 삶을 강조하는 철학은 기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도그마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과연 그럴까?


적어도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리다. 고독감을 즐기고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는 것은 균형 잡힌 인생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쉴러가 “강한 사람이란 가장 훌륭하게 고독을 견디어 낸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괴테가 “영감은 오직 고독에서만 얻을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한 차원 높은 경지의 삶을 살기 위해서 고독을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은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이 애초에 고독한 존재이며 혼자 태어나 혼자 죽어가는 존재라고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나는 독립적인 과정과 판단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뱃속에 내가 잉태되지 않았다면 나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출생부터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었다. 신체적으로 직접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DNA와 같은 간접적인 면에서 아버지와도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 혼자 유별나게 태어나지는 않았기 때문에 아마 지구 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사람도 나랑 비슷하게 태어났으리라 생각한다. 그들도 누군가와는 이미 출생부터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니 인간은 혼자 왔다가 가버리는 존재, 태생부터 고독한 존재라는 관점을 맹신하면 타인과의 연결은 끊어지게 된다. 그런 관점으로 남을 대하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할 가능성이 높다. 나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때만 관계 맺고 그 이후에는 내팽개친다. 필요에 의해 관계를 맺다 보니 겉으로 보기에는 다방면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 관계들은 하나같이 모두 빈곤하다. 빈곤한 관계 속에서 진정한 연결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오로지 믿을 건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을. 이런 인식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입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는 타인과의 관계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자신만을 위해 소비하도록 유도한다. 자기 자신만이 잘 되는 것에만 돈을 펑펑 쓰도록 한다. 세련된 옷, 고급스러운 자동차, 안락한 집, 많은 사람이 선망할 정도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기대하는 모든 것에 물 쓰듯이 돈을 지불한다. 이러한 소비는 인간다움을 서서히 말라죽이고 사람을 물건과 동일시하게 하며 자본주의 시스템의 공고한 권력이 유지되도록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가 강조하는 것은 돈이 아닌 개인의 자유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재 역전되었으니 서글플 뿐이다

반대로 타인을 위해 지출하는 돈은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이기적 경제인으로서 극대화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돈보다 인간에 더욱 초점이 가면 돈에게 굴복하거나 무의식 속에 지배받으며 살던 대중들이 점차 각성하면서 결국 권력의 관계가 역전되는 결과까지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니 돈을 남을 위해서 쓰게 만들면 자본주의는 큰일 난다. 그러한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인간을 타인과 연결되지 않은 독립적 존재로만 여기게 하는 데 힘쓴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분리주의적 사고방식을 강화시킨다. 모든 것이 사회의 여러 영역 속에 내포된 자본주의의 흔적들을 통해 자연스럽고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되면 어느덧 사람들 속에 있는 타인과의 연결 단자는 점차 사라진다. 사용하지 않는 귀걸이의 귓구멍이 막히듯이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버린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관계에 대해 신영복 선생님은 <강의>의 ‘맹자’ 편에서 종횡으로 단절되어 있다고 평가하셨다.


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절망적인 것이 바로 인간관계의 황폐화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라는 것은 그 뼈대가 인간관계입니다. 그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가 바로 사회의 본질이지요. 지속성이 있어야 만남이 있고, 만남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일 때 부끄러움(恥)이라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지속적 관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서로 양보하게 되고 스스로 삼가게 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남에게 모질게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없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가치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신영복, <강의> 中


서로 연결되지 않은 인간관계의 끝이야말로 개인의 황폐화를 넘어서 사회를 황량하게 만들 수 있다는 내 생각과 일치하는 말씀이니 자본주의가 얼마나 무서운 공작을 펼치고 있는지 알 만 하다.




아내가 타 준 차를 마시면서 생각이 굉장히 멀리까지 갔다 왔다. 마지막 한 모금, 그 따스한 여운을 느끼면서 이 차를 준비해 준 아내를 생각한다. 내가 아내의 차를 받고 나서 감동받은 이유, 다름 아닌 나와 아내가 상황과 상관없이 굳건히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은 덕분이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절대적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생은 살만 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감동을 흘려보내 인생은 살 만하다고 느끼게끔 도울 수도 있지 않을까. 가까이는 아내와 나의 세 아이들부터, 멀리는 곳곳에서 활약하는 코로나 용사들까지. 특별히 코로나를 예방하고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밤낮 구분 없이 애쓰는 의사, 간호사, 자원 봉사자, 기타 많은 관계자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자발적으로 자신과 서로를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에 이 사태가 반드시 진정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의 수고와 헌신에 고마움을 느끼고 마음껏 격려하고 싶은 이유는, 역시 그들과 내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보이지 않게끔 자본주의 시스템이 막아서고 있을 뿐.




우리는 혼자인 것 같으면서도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다만 지금은 밤이라서 안 보일 수는 있겠다. 그렇다고 의심하지 말자. 두려워하지도 말자. 이 긴 밤을 서로 다독이며 함께 이겨내자. 그 날이 오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기다리자. 반드시 그 날이 올 것이다.


나는 당신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고 당신은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함께라면 우리는 멋진 일들을 할 수 있다.
- 마더 테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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