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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Mar 20. 2020

뛰어넘다

탈라리아를 신고 여기에서 저기로

꿈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눈앞에서 어른거리더니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갑자기 나에게 물총을 쐈다. 생경한 차가움에 소스라치며 물총에 맞은 부위를 살폈다. 이럴 수가, 손과 발이 모두 짧아져 있었다. 의아했지만 바로 앞에 물총을 쏜 녀석이 있으니 복수가 먼저였다. 푸른 반바지에 물에 젖은 하얀 티를 입고 있었던 나는 반격에 나섰다. 그 녀석은 벌써 저 멀리 도망가고 있었다. 잡아야지. 눈에 보이는 푸른 바람을 타고 달리던 내 발에는 어느새 헤르메스의 탈라리아(날개 달린 샌들)가 신겨져 있었다. 물에 젖은 티는 금세 바람에 말랐고, 하늘을 향해 아우성치는 깃발처럼 펄럭거렸다.

날개 달린 샌들, 탈라리아를 신고 자유롭게 오고 가는 헤르메스

달리면서도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있었다. 여기는 우중충한 회색빛의 3층 연립 아파트가 대여섯 개 모여 있는 곳, 뚫어지게 쳐다보니 동네의 윤곽이 분명해졌고 마침내 알아차렸다. 이곳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살던 개나리 아파트가 있던 동네라는 것을. 다만 아파트 이름과는 다르게, 그 어린 시절 뛰어놀던 동네와는 다르게 연 노란 개나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상하게 다른 꽃도, 나무도, 그 어떤 생명력 있는 것도 동네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삭막하고 황량한 느낌을 자아내는 아파트만 드문드문 서있었고 동네의 가장자리는 온통 금속 빛의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쓸쓸해 보이는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물총 쏠 친구들을 찾아다녔다. 아까 나에게 물총을 쏜 친구를 비롯해 함께 놀고 있다고 생각한 다른 친구들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담벼락 안에서는 도저히 나랑 놀아줄 사람을 찾지 못했다. 누군가를 찾는데 실패한 난, 탈라리아를 신었음에도 조금씩 탈진되었다. 결국 기진맥진해 널브러졌다. 


누워 있으니 하늘이 보였다. 하늘은 막힌 곳 하나 없이 푸르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이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마치 세계의 전부인양 안주하려 했던 내가 이상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을 한정지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회색빛의 대지에서 헤매기만 하는 것은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깔깔 웃으며 즐거움을 함께 할 사람도 없다. 지쳐 쓰러졌을 때 나를 위로해줄 사람도 없다. 삶을 삶으로 느낄 수 있게 따스한 온기를 나눌 사람도 없다. 이곳에 있는 것은 오직, 비인간뿐이었다. 그러니 생명력 있는 존재들과 마주하려면 아파트들을 둘러싼 저 담벼락을 넘어가야겠다고, 저 장벽을 넘어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야겠다고,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었다. 헤르메스의 탈라리아를 신은 내가 아닌가. 나는 분명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남아있는 힘을 쥐어짜 다시 일어났다. 부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내 발에 의지를 싣고, 내 결단에 벅차게 반응했다. 탈라리아를 신은 발로 땅을 힘차게 밀었다. 마지막 아파트를 지나 높디높은 담벼락을 훌쩍 넘은 해방감을 만끽하며 황폐한 동네를 떠났고, 얼마 되지 않아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수많은 흰 산봉우리들이었다. 나란히 펼쳐져 있는 산봉우리들은 장엄했다. 장엄하다 못해 햇빛에 반사된 흰색은 찬란하기까지 했다. 멀리 보이는 수십 개의 산봉우리에서 가까운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열 발자국 앞은 낭떠러지였다. 상하좌우로는 바위로 된 섬들이 공중에 떠있었는데, 평평한 땅 위로는 높게 솟은 흰 산봉우리에서 맑고 푸른 물이 흘러내려 아름다운 호수를 이루었고 호수 주변에는 여러 꽃과 나무가 알록달록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땅 아래로는 바위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었고 아래로 갈수록 점차 역삼각형 형태로 바위 수가 줄어들었다. 그 밑으로는 얼마나 내려가야 닿을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져 있는 지상의 모습이 화사한 파스텔로 색칠한 이미지가 뭉개진 것처럼 흐릿하게 보였다. 이런 바위섬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저 멀리까지 온 사방에 퍼져 있었다. 하나하나에는 꽃의 여신인 클로리스(=플로라)가 머무는 것처럼 갖가지 색깔의 꽃과 나무들로 가득했다. 이곳은 색채의 세계, 생명력이 넘치는 세계였다.

비록 납치당했지만 스러지지 않은 클로리스 (Morgan, Evelyn De, Flora, 1894)


내가 디딘 곳을 바라봤다. 숨 막히는 회색빛의 대지, 그 마지막 끝단에 서있었다. 이육사 시인이 <절정>에서 묘사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서 고민했다. 내가 과연 이 허공을 뛰어넘어 저 바위섬으로 갈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이 단절을 극복하고 저 따스함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이 허무의 간격을 초월하여 저 생명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낭떠러지의 아래로 순간 눈이 갔다. 떨어지면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공허의 세계가 눈에 가득 찼다.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면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될 법해서 그저 주저앉고 싶었다. 눈앞의 허공으로 한 걸음 뛰어들려고 할 때,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그 끝이 어디인지 갈피도 잡을 수 없는 밑바닥의 실체인가. 아니면 마음이 연약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나의 마음인가.


이러니 다시 눈 감고 생각해 볼 수밖에……. 아까 고쳐먹었던 생각을 다시 불러왔다. 담벼락을 뛰어넘었던 그때의 의지를, 그때의 결단을 내 심장에서부터 손가락과 발가락 끝까지 흘려보냈다. 그거면 충분했다. 나를 강하게 하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내면의 강함을 붙들고 내 온몸과 마음을 다시 고양시켰다. 나지막하게, 굳건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내 발에 신겨진 탈라리아를 믿는다. 

아니, 나는 내 발에 신겨진 탈라리아를 믿고 있는 나를 믿는다. 

아니, 나는 탈라리아를 신고 절망의 담벼락을 뛰어넘은 나의 용기와 의지와 결단을 믿는다. 


저 꽃들이 피어 있는 세계로, 겨울은 가고 봄이 온 세계 속으로, 허무를 넘어 존재로 가득 찬 세계를 꿈꾸며, 단절과 비인간의 세상에서 따스한 인간미 넘치는 세상을 향해, 나는, 탈라리아를 신고 뛰었다. 


탈라리아를 신은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새 내 옆에서

함께

허공을

뛰어넘고 있었다. 




<절정>, 이육사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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