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엔 놓인 돼지 두루치기는 붉었다. 돼지의 피를 한 바가지 쏟았나 싶었다. 은은한 열기가 모락모락 올라왔다. 향은 돼지 누린내 없이 식욕만 돋게 했다. 핏빛 양념을 뒤집어쓴 도톰한 돼지고기와 그보다 더 새빨간 김치는 몹시 탐스러웠다. 묘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음식을 두고, 침이 고였다.
얼마 만에 먹는 두루치기인지 모르겠다. 아내는 매운 것이 취향은 아니라 밥상에는 붉은 것이 잘 올라오지 않았다. 덕분에 단출한 양념으로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하고 소박한 밥상을 받아왔다. 건강식이지만 가끔 입이 심심하긴 했다. 매운맛이 그리우면 불닭 볶음면이나 아주 매운 떡볶이를 사다가 따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색다른 맛을 오랜만에 맛보게 되어 조금은 들떴던 것 같기도 했다. 최근에 두루치기를 먹었던 기억이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한 지라 많이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김치 한 조각과 돼지고기 한 점을 숟가락에 차곡차곡 쌓았다. 앙 벌린 입에 숟가락을 가져갔다. 택배가 도착한 것처럼 기쁨의 꿀맛이었다. 입 안에서 두루치기의 맵고 쫄깃한 맛이 내 온몸을 물들여가다 마음까지 건드렸다. 문득 이 맛을 무척 즐겼던 이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돼지 두루치기를 무척 좋아하셨다.(일단 우리 아버지는 멀쩡히 살아 계시니 눈물 쏙 빼는 그런 글이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나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루치기의 열광적인 팬이셨다. 심심하면 저녁 먹으러 집에 오실 때 돼지고기를 사 갖고 오셔서 어머니에게 두루치기 해달라고 조르셨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당시 아버지와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다. 온갖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때라 우리 집이 좁은 것도, 나랑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이 차를 끌고 다니지만 나는 뚜벅이 신세인 것도, 내가 아직까지 사회에 자리를 잡지 못한 것도 다 남 탓, 특히 아버지의 부족한 수입과 가난한 집이 내가 떠안은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다. 그러니 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다 고까웠다. 아버지가 그렇게 보여서 그런지 돼지 두루치기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 중 하나일 뿐이었다.
20대 중반의 나는 무기력감에 빠져 하릴없이 집에 있었던 적이 많았다. 어머니는 학교로 일하러 나가시면 집에는 나 홀로 좁은 방구석에 처박혀 컴퓨터를 하거나 잠을 잤다. 아버지는 오전에 택시 운행 후 점심 식사하시러 잠깐 들어오시는데, 종종 돼지고기를 사 갖고 오셔서 직접 두루치기를 해주셨다. 방에 누워 있다가 아들, 밥 먹자 하는 아버지의 부름에 문을 열고 나갔다. 그때는 먹어야 사니까 별맛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먹었다. 먹으면서 맛있다거나 감사하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부모가 자식을 챙기는 당연함이라고 여기며 먹었을 뿐이었다. 아버지를 쳐다보지도 않고 눈앞에 있는 하얀 쌀밥에 두루치기를 조금 얹어서 해치우는 데 집중했다. 아버지가 식사하시면서 나를 흘깃흘깃 살펴보는 시선이 느껴지면 괜히 짜증이 났다. 그러면 후다닥 식사를 급하게 끝낸 뒤, 숟가락을 내려놓고 방에 들어가 버렸다. 문 닫고 다시 방에 틀어박혀 있다 보면, 얼마 뒤에 방 밖에서 딱 딱 하는, 반찬통의 뚜껑 닫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덜그럭 덜그럭 설거지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 모든 소리를 나는 그저 외면할 뿐이었다. 양쪽 귀에 헤드폰을 한 채로 조용히 숨죽이고 있으면 그 소리도 역할을 다 하고 사라졌다. 옆방에서 아버지가 TV를 트는 소리가 들릴 때에야 맘 편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 방문을 닫고 들어갔을 때 식탁에 홀로 남겨진 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짓고 계셨을까. 아련한 기억 속의 아버지가 궁금해졌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 버렸고 그렇게 아버지의 마음에 나는 못을 하나 이상 박아 넣었다.
식사를 다 마치고 식당 밖에 나와 스마트폰을 꺼냈다. 열한 자리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초록색의 전화기 모양의 버튼은 여전히 나를 반겨줄, 변함없이 푸른 아버지의 미소와 닿아 있었다. 누를까 말까 고민했다. 누르기만 하면 어, 아들 하며 언제나처럼 내 목소리에 반색해 줄 아버지에게, 정작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나는 계속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침이 고여 갔다. 입 안에 말이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