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로서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은 바로 글쓴이의 진실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이도 아닐뿐더러 글을 그다지 잘 쓴다고 생각지도 않지만, 가끔씩 블로그나 일기장에 글을 쓸 때마다 이 '진실성'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누구에게나 글쓰기의 역사는 존재할 것이다. 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매일 일기를 써야 했으며, 그것을 담임 선생님께 제출해서 검사를 맡는 과정을 거쳤었다. 선생님은 늘 '참 잘했어요'같은 도장을 일기장 맨 아래쪽에 찍어 주셨으니, 생각해보면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바로 독자가 존재하는 최초의 글쓰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나 개인의 일기장이었지만,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공개된다는 숙명을 알고 있었기에 일기장에 쓰는 글임에도 100% 진실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선생님의 눈치를 보고 적었다는 말이겠지. 물론 아주 저학년이었을 때는 그러한 감조차 없었겠지만,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진 다음에는 무의식적으로라도 자체 검열을 하면서 일기를 썼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모든 글쓰기가 그러했던 것 같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가 존재하는 인터넷 상의 글쓰기는 말할 것도 없으며, 심지어 나는 나 혼자만 보는 종이 일기장에조차 최후의 최후까진 진실하지 못했다. 그것은 혹시라도 내 일기장을 훔쳐볼지도 모르는 타인에 대한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었다고 할까. 왜냐하면 나도 가끔씩 남의 일기장을 훔쳐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훔쳐본 몇 사람의 일기장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H라는 인물의 일기장이었다. H는 나보다 형이었고 수학이라든지 다른 암기 위주의 학습에는 강점을 보였지만, 국어와 같은 언어영역에 있어서는 영 젬병이었다. 4살 아래인 내가 보기에도 틀린 맞춤법들이 수두룩했으니, 글짓기 같은 것에는 재능이 있었을 리 없었다. 일기의 내용도 그저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가계부 적듯이 나열하는 방식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기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밌었는데, 그것은 그의 일기가 단 한 꺼풀의 검열도 거치지 않았을 만큼 날것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누군가가 훔쳐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은 듯했고-그의 평소 성격을 보아하면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그의 일기에는 무언가 원초적인 재미가 있었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가끔 H의 일기를 떠올린다. 단 한 문장에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내는 촌철살인도, 촘촘하게 쌓아 올리는 스토리텔링도 나로서는 역부족이다. 그러한 경지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기에, 나는 나의 글이 H의 일기장 만큼이라도 재미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100%까지 솔직해지는 것은 나에게 무리일 것 같다. 나는 옛날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겁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무지가 부끄럽고,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남들이 아는게 두렵고 수치스럽다. 그렇기에, 스무살이 넘어서 방귀를 뀌다 설사를 지리고, 황급히 가게로 가서 팬티를 사고 몰래 갈아입었다는 이야기 따위는 절대 못 쓸 것 같다. 그게 설령 나만 보는 일기장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