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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20. 2024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거대한 놀이터이다


유치원생인 듯한 꼬마 아이가 자기 또래의 아이를 향해서 저쪽에 가서 놀자고 한다.

그 말에 그 친구도 좋다고 하며 둘이 신나게 뛰어간다.

아이들이 달려가는 쪽을 바라보니 자그마한 동네 공원이었다.

아이들이 놀만한 시설은 그네와 미끄럼틀뿐인데 아이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가 보다.

아니 그네와 미끄럼틀이 없어도 아이들은 그곳에서 즐겁게 놀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는 놀거리를 만들어 내는 신통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모래바닥이면 모래를 파고 쌓으면서 놀고 흙바닥이면 흙에다 선을 그어놓고 논다.

골목이면 골목을 뛰어다니면서 놀고 방구석에 있으면 옷장 안에, 식탁 아래 숨어 들어가면서 논다.

숲에서는 수풀을 뒤지며 놀고 물가에서는 물장구를 치면서 논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놀고 비를 피하면서 논다.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면서 논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온통 놀이터이다.




장난감이 마땅치 않았던 내 아잇적에는 땅바닥에서 길바닥에서 놀거리를 찾았다.

마당에 선을 그어놓고 오징어게임을 했고, 전봇대에 머리를 숙이고 술래잡기를 했다.

돌멩이를 가지고 사방치기를 했고, 나뭇가지를 다듬어서 자치기를 했다.

달력을 접어서 딱지를 만들었고 신문지에 대나무살을 붙여서 연을 만들었다.

마징가제트 장난감을 가진 아이는 마징가제트 놀이가 제일이라고 했겠지만 그 아이가 우리와 함께 놀려면 우리의 놀이를 배워야 했다.

구슬치기를 할 때는 마징가제트 장난감이 필요 없다.

구술치기 놀이 세상에서는 구슬을 잘 맞추는 아이가 제일이고 숨바꼭질에서는 술래의 눈을 피해 잘 숨는 아이가 최고이다.

달리기를 잘 못해도 고무줄을 잘 뛰는 아이가 있고 말주변이 약해도 공기놀이를 잘하는 아이가 있다.

모든 놀이에 완벽한 아이는 없다.

누구나 자기가 잘하는 놀이가 있다.

그 놀이에서는 그가 챔피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의 입에서 놀자는 말이 사라진다.

대신에 공부하자는 말이나 일하자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 시간에 놀면 어떡하냐 공부해야지.

놀면 뭐 하냐 일해야지.

이런 말들은 생소하지 않다.

우리가 늘 듣는 말이기도 하고 우리 입에서 종종 내뱉는 말이기도 하다.

참 아이러니하다.

노는 것은 낭비하는 일, 허드렛일 하는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아이였을 때는 하루 종일 놀아도 그게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놀면서 많은 것들들을 배웠다.

놀이의 방법을 배웠고 놀이에서 이기는 지식을 익혔으며 놀이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지혜를 알았다.

아이들에게 마음껏 놀라고 하면 몇 시간이든지 논다.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기 전까지는 놀이를 쉬지 않는다.

아이들의 놀이가 끝이 없는 것은 놀면서 새로운 놀이를 계속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노는 게 공부이고 노는 게 일이다.




애초에 공부한다는 말이나 일한다는 말을 논다는 말로 불렀으면 어땠을까?

논다고 한다면 공부도 신나는 놀이고 일도 즐거운 놀이가 되지 않을까?

놀이는 좋다여도 좋고 여럿이어도 좋다.

좋은 점수를 따도 즐겁고 점수가 낮아도 즐겁다.

이겨도 괜찮고 져도 괜찮다.

놀이 한 번 졌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놀다가 놀다가 지치면 바통터치해서 다른 사람을 대신 내 보내도 된다.

내가 노는 것도 기쁘고 다른 사람이 노는 것을 보는 것도 기쁘다.

내가 좋아하는 LG트윈스가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놀이에서 졌다.

한국시리즈에 올라가지 못하게 됐다.

괜찮다.

놀이 한 번 졌을 뿐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놀이이다.

다음에 잘 하면 된다.

못 해도 괜찮다.

잘 놀아서 높은 곳에 올라간 친구도 있고 놀다 보니까 낮은 곳까지 내려온 친구도 있다.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 서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거대한 놀이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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