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5일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날이다. 2026년의 부활절이다. 부활절은 춘분 후 첫 보름달을 본 다음 일요일이다. 이 계산에 따르면 2026년의 춘분은 3월 20일이었고, 춘분 후 첫 보름달은 4월 2일에 떠서 4월 3일에 졌다. 그리고 보름달 이후에 오는 주일이 4월 5일이다. 이날이 2026년의 부활절이다. 흔히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 성탄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잘못된 지식이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날은 부활절이다. 성경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힘써 전한 내용이 두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지녔던 핵심 사상은 십자가와 부활이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내용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만 살짝 다룰 뿐이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였다.
부활이 왜 중요하냐면 모든 사람이 죽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죽는다. 죽기 싫은데도 죽는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이고 한계이다. 그런데 왜 인간이 죽는 존재여야 하는지 살펴보니까 인간에게 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죄 때문에 인간에게 한계라는 게 생겼고, 죄 때문에 죄에 대한 심판과 형벌이 주어지는데 그게 바로 죽음이라는 것이다. 죄를 지으면 죽어야만 그 죄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나는 살고 싶은데 내 죄 때문에 내가 죽어야만 한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 실존의 모습이다. 그런데 나 대신 누군가 죽어줄 수도 있다. 처음에는 나를 가장 많이 닮은 내 아들을 나 대신 죽였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인신공양의 모습이다. 그러다가 아들이 아까우니까 아들 대신 짐승을 바친다. 그리고 짐승도 아까우니까 짐승 대신 돈을 바친다. 이것이 흔히 인문학자들이 말하는 종교의 발전 과정이다.
기독교에서는 이 모든 죽음의 과정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점을 제시한다. 그건 바로 심판자이신 신(神)께서 대신 죽으시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까 세상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신께서 대신 죽으시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렇게 신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의 문제, 형벌의 문제를 감당하시고 죽으셨다. 그런데 죽음으로 끝나버린다면 죽은 신을 우리가 의지할 수가 없다. 죽은 신은 우리를 도와줄 수가 없다. 신도 죽음과 싸워 패배한다면 그 신은 우리가 믿거나 의지할 신이 될 수 없다. 신이라면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하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죽음과 싸워 이겼다는 말이 된다. 우리 모든 인간은 죄와 죽음이라는 한계를 지닌 존재인데 예수님이 이 한계를 극복하신 것이다.
성경 복음서들의 마지막 부분은 모두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부활이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만큼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은 게 아니라 십자가 처형이 너무 혹독해서 잠시 기절한 것이었는데 무덤에 안치된 후에 정신이 깨어서 무덤 밖으로 도망쳐 나간 것 아니냐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간 후에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 아니냐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은 상태였는데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 같은 집단 환상을 본 것 아니냐고 한다. 이런 주장들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하는 그날 이후의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이전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전에는 겁쟁이 같았으나 이후에는 매우 용감한 사람처럼 보인다.
예수님이 기절했다가 무덤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주장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다.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죄수에 대해서는 목숨이 붙어 있는지 분명한 확인 절차가 있었다.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물과 피가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은 숨이 끊어졌다는 증거이다. 예수님은 죽으신 게 맞다. 기절했다가 깨어나서 무덤의 돌문을 열고 군인들을 피해서 도망쳤다는 주장이 더 놀라운 가설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자신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쳤다면 그 사실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단 환상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느낀 것이라면 그 환상에서 깨어난 후에는 대대적인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부활이 사실인지 아닌지 그들 자신부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담대하게 부활을 전하였다.
부활을 믿는다면 우리의 인생이 달라진다. 우리 인간은 모두 죽는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다면 죽음은 끝이 아니다. 우리는 부활, 즉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사별의 아픔을 겪는다 하더라도 다시 만날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부활을 믿는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견딜 힘이 생긴다. 모든 아픔과 슬픔과 고통의 끝은 죽음이다. 그런데 부활을 믿는다면 “기껏 해봐야 죽음이네! 까짓것 다시 살아나면 되지!”라며 관조적인 마음을 지닐 수 있다. 2026년의 봄은 무척 매섭다. 멀리서 일어난 전쟁이지만 바로 내 옆에 미사일이 떨어지는 것 같다. 앞날을 예측하는 말이 온통 잿빛이다. 쓰레기봉투라도 한 묶음 더 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든다. 올여름은 엄청 더울 텐데 에어컨을 틀어야 하나, 휘발유값이 계속 오르는데 자동차를 타야 하나, 온갖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죽을 것 같다.
부활이 없다면 그냥 여기서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다면 견딜 수 있다. 버틸 수 있다.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어둠이 걷히면 빛이 나오고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온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죽음, 그것은 끝이 아니다. 그 너머에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있다. 이 거대한 세상 한복판에서 돈도 없고 힘도 없고 능력도 없고 지혜도 없는 내가 그래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건 바로 부활을 믿기 때문이다. 부활이 우리에게 힘이 된다. 능력이 된다. 지혜가 된다. 부활을 믿는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오케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