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생각으로 보는 성경이야기
짧은 애굽생활을 마치고 다시 가나안땅으로 돌아온 아브람과 조카 롯에게는 재산이 많이 늘어났다. 그들은 양과 소를 비롯한 가축들을 키웠으며 가축들을 돌보는 목자들도 두고 있었다. 성경은 아브람만 부각해서 보여주는데 창세기 14장 14절에 나와 있듯이 아브람의 집에는 318명의 장정들이 있었다. 그 장정들에게 딸린 식구들까지 생각한다면 아브람에게는 1천 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조카 롯도 나름대로 꽤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계속 같이 살아가기에는 그들에게 주어진 땅이 좁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땅이 비좁으니 서로 부딪히는 일들도 많았고 다툼도 생겼다. 성경은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었음을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그 땅에는 가나안사람과 브리스사람도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창세기 13:7).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아브람은 롯을 독립시키기로 했다.
창세기 13장 9절에서 아브람은 조카 롯에게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는 말을 하였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이 말을 하기까지 아브람은 굉장히 많은 시간 동안 고민했을 것이다.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던 날, 하란에서 머물렀던 날들, 가나안땅에 도착해서 감격했던 순간들,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내려갔던 날들, 애굽 왕 바로에게 사래를 빼앗기고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던 때, 사래를 돌려받고 다시 가나안땅으로 돌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것이다. 롯은 조카였지만 때로는 아들처럼, 때로는 형제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아브람과 함께 동고동락한 사이였다. 그런 롯을 떠나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붙잡고 있을 수도 없었다. 지금은 내 곁에 있지만 언젠가는 놔주고 떠나보내야 하는 게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아브람이 롯에게 먼저 선택하라고 했다. 어느 쪽으로 가겠냐고 물었다. 아마 인지상정이 작용했다면 롯이 아브람에게 “삼촌이 먼저 정하세요.”라고 했을 것이다. 그건 중요치 않다. 어쨌든 롯이 먼저 선택을 하게 되었다. 어떤 땅을 택해야 할까? 부동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고민을 많이 할 것이다. 4천년 전에 살았던 롯도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 물이 많이 있는 쪽을 택하였다. 물이 있으면 풀이 잘 자랄 테고 농사도 가능하고 먹고살기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땅을 보니까 요단 지역이 눈에 확 들어왔다. 온 땅에 물이 넉넉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다고 했다(창 13:11). 여호와의 동산, 즉 에덴동산처럼 풍요로운 땅이었다. 애굽땅처럼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옥한 땅이었다. 그렇게 풍요로운 땅이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던 땅이었다.
롯은 분명히 좋은 땅을 택했다. 그러나 롯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 있었다. 내 눈에 좋은 땅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좋은 땅이다. 좋은 땅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그리고 서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 한다. 싸움이 나고 전쟁이 난다. 좋은 땅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페르시아제국, 알렉산더제국, 로마제국, 칭기즈 칸 군대, 오스만튀르크, 대영제국들은 모두 좋은 땅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렀다. 남극이나 북극 같은 땅에서 싸운 적은 없다. 그 땅은 좋은 땅이 아니었으니까. 롯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고서 가장 아쉬움이 많이 묻어나는 때를 꼽으라고 하면 바로 이 순간을 꼽을 것이다. 좋은 땅으로 간 것. 눈에 보기 좋은 땅이 반드시 좋은 땅인 것은 아니다. 남들이 보지 않는 땅, 가지 않는 땅, 찾지 않는 땅이 좋은 땅이 되기도 한다. 그런 곳이 블루오션이 된다. 그때에는 롯이 그 사실을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롯이 요단 쪽으로 갔더니 그곳에는 도시가 잘 형성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나그네 생활, 유목생활을 해왔던 롯에게 도시는 달콤한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도시에 한 번 들어오면 도시 밖으로 나가서 살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더 큰 도시로 옮겨가기가 쉽다. 롯도 그랬다. 창세기 13장 11절을 보면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물렀다. 한 도시가 아니라 몇 도시를 돌아다닌 것이다. 그러다가 소돔이라는 도시까지 가게 되었다. 롯이 도시 사람이 된 것에 반해 아브람은 그냥 촌부로, 나그네로 지냈다. 조카를 떠나보낸 후 의기소침했을 수도 있다. 그 시절 아브람의 삶에 즐거움이 있었을까? 재산증식은 잘했다. 남들로부터 부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아브람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한 것 같다. 롯을 떠나보낸 후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을 보면 아브람은 심히 외롭고 우울했던 것 같다.
그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그리고 엄청난 말씀을 해 주셨다.
“(창세기 13: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눈을 들어서 사방을 바라보라고 하셨다. 이때만 하더라도 아브람의 마음은 크게 달아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다음 말씀이 엄청났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아브람은 땅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부가 평생 먹고살기에 충분했다. 남들은 다 아브람을 부자로 여겼다. 그런데 아브람은 자기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아브람은 갖고 있지 못했다. 그것만 생각하면 아브람은 가난해졌다. 아브람을 가난하게 만든 그것은 바로 ‘자손’이었다. 아브람에게는 자손이 없었다. 아들도 딸도 손주도.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이 혼자 고민하고 있었던 그 문제를 콕 집어서 말씀하셨다.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줄 것이다.” 이 말속에는 “너에게 자손이 생길 것이다.”라는 말이 선행되어 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말라고 하셨다. 일어나라고 말씀하셨다.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보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는 땅이 어떤 땅인지 보라고 하셨다. 아브람에게만 주시겠다는 땅이 아니라 아브람의 자손에게도 주시겠다고 하는 땅이다. 그럼 당연히 아브람이 일어나서 그 땅을 보러 가야 한다. 자식에게 주시겠다는 땅인데, 손주들에게 주시겠다는 땅인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 땅 보러 가야 한다. 결국 아브람은 헤브론에 이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롯은 자기 눈에 좋은 땅을 보았고 아브람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땅을 보았다. 그 순간에는 롯이 본 땅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땅은 심판의 땅이 되었다. 반면에 아브람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땅을 보았다. 당장은 황량한 땅처럼 보였겠지만 먼 훗날 그 땅은 아브람의 후손들이 살게 될 땅이 되었다. 눈을 들어 땅을 바라보자. 지금 좋아 보이는 땅만 보지 말고 멀리 내다보자.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는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동서남북 더 멀리 더 넓게 보자. 보이는 땅이 언젠가 내 후손의 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