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다.
고3은 고민과 고민과 고민, 3가지를 끌어안고 사는 시간일 것이다.
첫째 고민은 당연히 대학교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어느 학교에 갈까 혹은 어느 학교에 갈 수 있을까의 고민일 것이다.
가고 싶은 학교는 많지만 본인의 성적이 발목을 잡는다.
둘째 고민은 진로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어떤 쪽으로 공부를 할까 혹은 어떤 직업군을 택할까의 고민일 것이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진학하면 그 학과가 지향하는 방면의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은 그렇게 연결되지만은 않지만 고3 시절에는 자신이 공부하는 쪽으로 직업이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고민은 어떻게 살까의 고민일 것이다.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는 이런 고민을 할 겨를이 거의 없었다.
때가 되면 유초중고 생활로 연결되었다.
그런데 이제 고3이 지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자기가 직접 정해야 한다.
아들은 한창 꿈을 꿀 시기에 코로나 직격탄을 받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Zoom을 통한 온라인 수업, 마스크 착용하고 학교 가기 등 불안한 시절을 보냈다.
이제 모든 것이 안정되나 싶었는데 내년부터 대학 입시 제도가 싹 바뀐다.
더군다나 현재 대입 재수생들은 2007년 황금돼지띠의 해에 태어난 이들이다.
운수대통한다고 황금돼지띠의 해인 2007년에 엄청나게 많은 아기가 태어났다.
그중에서 상당수가 대입 재수생이고 내 아들은 그 재수생들과도 경쟁을 해야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 고3 수험생의 진로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하기에 나는 최대한 무관심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아빠인 내가 나서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다.
괜히 뭐 좀 도와준답시고 “나 때는 말이야...” 하면 아이의 기분만 상할 게 뻔하다.
그래서 가급적 집안의 평화와 아들의 안정을 위해서 모른척하고 있다.
대학 입시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모른다고 해서 아들에게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많은 조언을 하더라도 아들의 점수가 쓱쓱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아들이 힘들어하는 국어나 수학 과목은 내가 대신 시험을 치르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점수가 잘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아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게 괜히 안쓰러워서 그렇다.
실질적으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새벽에 교회에 가서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가끔 용돈을 더 얹어 주는 것, 아들이 먹고 싶어 하는 것 사주는 것 정도다.
오늘도 마트에서 판매하는 안동찜닭 2인분을 사 와서 조리해 줬더니 맛있게 먹어줬다.
자식의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게 부모의 기쁨이라는데 오늘 그 기쁨을 맛보았다.
내가 고3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이런 것뿐이다.
삼강오륜의 한 토막, 오륜의 첫 항목인 부자유친(父子有親)이 생각났다.
아버지와 아들(자식)은 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친하다는 게 뭘까? 한문을 보니 친할 친(親) 자인데 사랑하다, 가까이 지낸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한문이 이해 안 될 때는 글자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파자(破字) 놀음이다.
심심풀이로 친할 친(親) 자를 파자해 봤더니 놀라운 내용을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친해야 하는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떻게 대하는 게 친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일까? 한자 친(親)이 알려주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무(木) 위에 서서(立) 멀리 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모습(見)을 합친 게 친할 친(親) 자였다.
갑자기 가슴이 울컥했다.
나는 내 아들이 잘되었으면 좋겠다.
새벽기도회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이다.
그런데 내가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나무 위에 올라서서 멀리 바라보며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