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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가 나의 삶이 되기까지

by 박은석


1년에 200권 독서운동을 벌인 지 13년째가 되었다.

처음에는 호기로 시작하였는데 어느덧 내 일상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책 읽기 고수들에게야 1년에 200권을 읽는 것이 별것도 아닌 일일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나의 책 읽기가 도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책 읽기 과정들을 정리해서 나눠보려고 한다.




첫째로, 책 읽기의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몇 년 안 되었던 해외 생활 중에 한국어 표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끼면서 위기감이 들었다.

마치 외국어 번역 수준의 단순한 표현만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때는 말도 그랬고 문장도 그랬다.

오랜 타국 생활에 익숙해진 교민들과 그들에게 얽혀 살아가는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말을 하니까 당연히 쉬운 표현만 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우리말의 깊고 넓은 표현력을 익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배워야 했다.

배우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책 읽기이다.

그래서 책 읽기를 시작했다.




둘째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책 읽기를 시작한다고 떠들고 다녔다.

우선 가족들에게 1년에 200권 책 읽기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선포를 하면 사람들에게 배려를 받을 수 있다.

하루 스물네 시간 중에서 책 읽을 시간을 얻으려면 반드시 주변 사람들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

책 읽기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또 말에는 구속하는 힘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한 말을 지키려는 본능이 있다.

말은 상대방과의 약속이며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200권이라고 말을 했기에 그 200권이 나를 구속했다.




셋째로, 쉬운 책들을 먼저 읽었다.

책 읽기의 동기부여 중 가장 좋은 것은 책걸이 시간이다.

한 권 한 권 완독하는 기쁨을 맛보면 책 읽기가 즐거워진다.

그런 기쁨을 많이 맛보려면 쉬운 책부터 읽는 게 좋다.

나의 경우는 책 읽기 관련 서적과 자기계발 서적들부터 읽었다.

책 읽기 관련 서적들은 끊임없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공해주었고, 자기계발 서적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북돋워주었다.

그와 병행해서 수필집들과 말랑말랑한 감정을 일으키는 시집들도 많이 읽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

책이 얇아서 빨리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넷째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의 독서 3원칙 중에서 다독에 초점을 맞췄다.

일단은 많이 읽어야 그다음에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할 수 있다고 믿었다.

책 읽기를 한다면 주변에서 한 권의 책이라도 깊이 있게 보는 게 낫지 않느냐는 말을 듣게 된다.

꼭 그런 사람이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깊이 있게 보겠다고 하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처음부터 진한 물감으로 채색할 필요는 없다.

엷은 색이지만 계속 덧칠하다 보면 어느새 색이 진해지고 더 풍부해진다.

그것을 노렸다.

책 한 권에서 한 줄이라도 건지면 책 한 권 값을 치른 것이다.




다섯째로, 책 읽기를 삶의 목표가 아니라 일상생활로 받아들였다.

1년에 200권을 읽겠다고 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로부터 언제까지 계속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퍼뜩 일단은 천권까지 읽겠다고 대답했다.

그게 족쇄였다.

목표를 천권으로 잡으니까 천권을 독파하고 나서는 2~3년 동안 목표를 잃어버렸다.

다시 책 읽기를 시작할 때까지 긴 방황의 시간을 겪었다.

이제 책 읽기는 목표가 아니라 삶이라 여긴다.

나의 책 읽기는 더 이상 200권을 채워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내가 즐기는 시간이고 노는 시간이고 배우는 시간이다.




이제 나의 책 읽기는 200권에 맞춰 있지 않다.

어느 특정한 분야에 집중하지도 않는다.

마음이 동하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이다.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책 읽기는 나의 삶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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