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많이 읽는다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by 박은석


최근에 어떤 책을 읽다가 중간에 그만두었다.

사실 나로서도 도전이었다.

내 관심 영역도 아니었고 나의 생활이나 생각이나 가치관이나 신앙과는 동떨어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이런 책도 읽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세상 어떤 책이든 그 책에서 건질만한 것이 한 가지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늘 지녀왔었다.

그래서 그 책에서도 건질 것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의 이야기였고, 내가 알지 못하는 지식에 대한 이야기였고, 내가 겪어보지 못한 신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속에서 거친 거부감이 생겨났다.

그래서 절반쯤 읽다가 포기했다.

그동안 그 책을 읽으면서 보낸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전에 그 책을 쓴 작가의 또 다른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은 적이 있다.

그때의 기분을 살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번 책은 아니었다.




책읽기 운동을 벌이면서 중간에 책을 내려놓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일단 1년에 200권이라는 독서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빨리 책걸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래서 재미가 없더라도,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책장은 넘겼다.

책 제목이라도 건지면 된다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았다.

여러 사람이 나에게 좋은 책을 가려서 읽어야 한다는 조언을 해줬었다.

그런데 이 책이 좋은 책인지 나쁜 책인지, 읽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책이라고 나에게도 좋은 책은 아니다.

남들이 별로 내키지 않는 책이라고 해도 나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는 책일 수 있다.

수학이나 물리라는 단어가 나오면 머리가 아파오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런 사람에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나 천체물리학에 대한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것은 가혹행위일 것이다.

좋은 책, 나쁜 책의 기준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쨌거나 나는 세상 모든 책을 다 좋게 보려고 하는 편이다.

나름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내가 힌두교 신앙인인 타고르의 기도문 <기탄잘리>를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었다.

공자의 <논어>는 여러 권의 해설서를 읽으면서 교훈을 삼았다.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면서 환경을 생각하고 가장 자연스럽게 사는 게 어떤 것인지 고민을 하기도 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는 그야말로 그리스 로마의 신화인데 꼭 읽어야 하는 숙제처럼 탐독했었다.

수메르인의 신화인 <길가메시>도, 라마 불교의 신앙을 담은 <티벳 사자의 서(書)>도 흥미롭게 읽었다.

신앙을 떠나서 각 종교의 경전은 인류 보편의 도덕률을 가르친다.

그래서 여러 종교의 경전들을 신앙의 관점이 아니라 지식과 교훈의 관점에서 편안하게 읽어보려고 한다.

그런 시도들 덕분에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사람 대 사람으로서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14년 동안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읽어 왔기에 나 자신이 포용력이 넓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그 어떤 책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무리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한다고 하더라도 거북한 책이 있다.

읽다 보면 기분이 상하는 책이 있다.

제목만 봐도 당장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은 책이 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포용력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비판의식이 강해져서 더욱 옹색한 고집쟁이가 될 수도 있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책을 다양하게 읽는다고 해서 세상을 더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책읽기가 조금의 도움은 될 수는 있지만 그 사람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책을 읽는 본인이 스스로 변해야 한다.

책은 단지 이제 변화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나팔소리와 같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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