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로펌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타벅 Jan 26. 2023

[로펌 일상] 4. 호칭에 대해

어떤 신문 칼럼에서 남경아는 "유독 호칭에 민감한 우리 사회. 비단 직장에서의 문제만이 아니다. 생활 속의 다양한 호칭 문화까지 들어가면 더 복잡하다. 그래서 가끔은 호칭 인플레이션에 갇혀 사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썼다(경향신문 2023. 1. 17.). 문화적 차이이겠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호칭이 많고 호칭에 신경을 쓴다. 내가 일하는 법조도 둘째 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군법무관 3년 동안 줄곧 군검찰관으로 일했는데 같이 일하는 법무부 식구들은 나를 '부장님'이라고 불렀다. 계급은 중위이고 직책은 군검찰관이니 '중위님'이나 '검찰관님'이라고 불러야 맞을 듯 한데, 전부터 그렇게 불러 왔다고 했다. 듣기로는 일선 부대에서 '중위'는 너무 낮은 계급이라 부르기가 좀 그렇고 '검찰관님'은 너무 길거나 어색한데 군검찰 규정에는 정식 명칭이 'OO사단 군검찰부'라고 되어 있으니 '부장님'이 맞다는 논리였다. 내가 '부장님'이 되니 자연스럽게(?) 부사관 중 상급자를 '과장님', 하급자를 '계장님'이라고 불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과장님', '계장님' 호칭을 쓰려고 나를 '부장님'으로 불렀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여간 3년 동안 줄곧 '부장님' 소리를 듣고 다녔다. 


검사들 사이에서 '검사님'은 존칭이 아니다. 너도 검사도 나도 검사인데 '검사님'이 어떻게 존칭이 되냐는 논리인데 그래서 대개 나보다 선배인 검사는 남녀 불문하고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부부장이 되면서부터는 직책을 불렀는데 부부장도 대개 그냥 '부장님'으로 불렀다. '부부장'은 발음도 어렵고 '부장'으로 불러 주면 듣는 사람도 기분 좋을 것 아닌가. 법무부에서는 대개 고참 부장검사인 분들이 '과장' 직책을 맡는데 호칭은 그냥 '과장님'이었다. '부장검사'이면서 '과장'인 셈이다. 그래서 일선 검찰청 사람들과 어울려 회식이라도 하게 되면 '과장님'들이 '부장님'에게 반말을 하는 밖에서 보면 약간 황당한 상황이 펼쳐졌다. 


청와대 비서실 근무할 때는 행정관들을 다 '국장님'으로 불렀다. 중앙부처는 대개 3급 이상이 되어야 국장급이라 할 수 있는데 행정관들 중에는 아직 '국장급'이 될 수 없는 4~5급도 많았지만 비서실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 공무원들도 '행정관님'이 아니라 '국장님'으로 불렀다. 중앙부처에서 '과장급'은 아직 실무자 느낌이 있다보니 그 보다 높은 '국장님'이라고 해야 공무원들과 통화할 때 영이 선다는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그런 논리였다. 




로펌에 들어오니 이제 '변호사님'으로 불린다. 물론 검사 시절 습관이 남아 검찰 출신 변호사들끼리는 지금도 '선배님'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로펌 입사 후에도 꽤 오랫동안 주니어 변호사들이 나를 '변호사님'이라고 부르면 왠지 반말 듣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습관이 그렇게 무섭다. 그런데 로펌이라고 다 '변호사님'은 아니다. 법원이나 검찰에서 부장 이상 직책을 가졌던 분들은 대개 그 마지막 직책으로 부른다. 부장판사를 하다 나오신 분은 로펌 안에서도 '부장님'으로 부르고, 차장검사를 하다 나오신 분은 '차장님'으로 부른다. 나는 부장검사를 해 보지 못하고 입사했으므로 그냥 '변호사님'인 것이다. 


이것도 문화라면 문화라서 가능하면 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때로 쉽지 않다. 저 변호사님의 마지막 보직이 '부장' 인지 '지청장' 인지 헷갈리고, 가끔 '단장님'이나 '부원장님'도 등장하므로 미리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또 본의 아니게 문제 상황(?)도 생기는데, 대검찰청 차장검사도 '차장님'으로 부르니 '차장님'이 '검사장님'에게 반말하는 상황도 생기고, 로펌 안에서는 '승진' 개념이 없어 '한 번 '부장님'은 계속 '부장님'이라 로펌 생활 오래 하신 '부장님'이 갓 입사한 '검사장님'보다 한참 선배인 경우도 많다. 몇 분 모여 회의라도 할라치면 '부장님', '고검장님', '차장님', '청장님'이 뒤섞여 호칭만으로는 서열이 도통 파악이 안 된다. 세월이 흘러 이제 새로 입사하는 후배 '부장님'들이 있는데 그들은 나를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나는 그들을 '부장님'으로 부른다. 이렇게 복잡하다보니 이메일 서두에 "검사장님/차장님/청장님/부장님.."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다. 다 '변호사님'으로 통일하면 편하지 않을까 싶은데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을 분위기다. 


'호칭'은 당연히 부르는 사람과 불리는 사람이 있어야 존재한다. 불리는 사람이 원하지 않는 호칭을 애써 사용할 사람이 있을까. 밖에서 보면 이상하고 어색한 상황이지만 그런 호칭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 불리는 사람도 그렇게 불러 주기를 원하는 것일 테다. 그런데 '변호사님'이 아니라 '부장님'으로 불리면 무엇인가 더 특별해 보일까? 나는 '부장님'이 될 수 없어 그런지 사실 잘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로펌 일상] 3. 의뢰인의 아픔은 곧 나의 아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