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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늑한 서재 Dec 02. 2021

04. 벌써 내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 두 번째 에세이 과제 '어릴 때 내게 일어난 가장 중대한 일은?'  

에세이 수업 두 번째 시간, 과제글 낭독은 작가님께 이메일을 보낸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마감시간을 넘겼으므로 꽤 뒤쪽 순서였다.


가만히 앉아 듣는 입장에서도 글자 하나를 허투루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글을 눈으로 혼자 읽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더 생생하고 떨렸으며(듣기만 해도) 전해지는 감정이 다채로웠다. 그 글을 수강생분이 어떤 마음으로 쓰셨는지 더 잘 알 수 있었다. 목소리가 전하는 메시지가 있었다.


돌아보면 내 글을 여러 사람 앞에서 소리 내어 읽는 것은 에세이 수업에서 꼭 필요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에세이는 살아가는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이다. 그러나 수강생들 대부분 '보여주는 글'이라는 부분에 미숙하다. 완전히 나를(글을) 내놓아보는 연습, 낭독은 그런 관점에서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글의 주제가 명료한지, 문장에서 개선할 점은 없는지 다양한 면에서 성장을 돕기도 하고... 또 끝나고 이어지는 작가님의 코멘트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러나 나는 '사과 지우기'를 낭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 강의실 사정 때문에 나를 포함 몇 분은 낭독을 하지 못했다. (이 날만) 수업 전날부터 떨렸는데 허탈했다. 한편 안심도 되었다. 동시에 다음 주에 읽어야 할 아직 시작도 못한 내 글에 관심이 쏠렸다. 그리고 이런 비겁한 생각도 들었다.


'과제만 내고 결석할까... 어떻게 읽냐... 그걸....'

 

벌써 내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불과 수업 두 번 만에 말이다.




다른 분들의 글을 읽고, 들어보니 내가 왜 에세이 수업을 신청했는지 더 명료해졌다. 나는 오랜 기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걸 잘 풀어내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확히 유년 시절의 이야기다. 그런데 무겁다. 마음이 무겁고, 표현하지 못해 쌓아 올린 감정의 돌들이 무겁다.


그걸 어떻게든 풀어내고 싶었다. 글을 통해 마음을 내놓고 어떠한 코멘트라도 받고 싶었다.


결혼하고 5년 정도 이런저런 개인 상담을 받았었다. 우울증, 공황장애가 찾아와서 그걸 이겨내느라 힘들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고, 마음을 다스릴 줄 알게 되었다. 아이들과 남편의 도움이 컸다. 신앙과 친구의 역할도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그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고 보니 겪었던 일들을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결혼생활도 10년이 넘어가고 아이들도 제법 자라서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오래 산 집 정리하듯, 내 마음과 생각을 차곡차곡 정리해보고 싶었다.


세 번째 시간 주제는 '어릴 때 일어난 가장 중대한 일'이었다. 


그날 밤의 일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토요일 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노트에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쓸 수 있을까? 오래 단단히 뭉쳐놓았던 생각과 마음을 풀어낼 수 있을까? 염려되는 마음은 한 구석에 밀어 두고 무작정 쓰기 시작했다.  @



-  <한겨레 문화센터 - '일상에서 에세이 쓰기' > 강의를 들으며 느낀 점들을 정리해보고 있어요. 썼던 에세이들도 올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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