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내 이야기를 써야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살 배기 아이를 키우면서 일기를 쓰는 건 은근 쉽지 않다. 처음에는 노트북으로 써 보려 했다. 그런데 리니가 비집고 들어와 키보드의 키들을 눌러버린다. 그래, 그럼 공책에 펜으로 적어보자. 교육적으로. 잡고 있던 펜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종이가 갈기갈기 찢긴다. 공책은 아기의 스케치북이 되어버린다. 리니는 가져간 펜으로 마구 낙서를 한다. 웃는다. 좋아한다.
아이를 키우며, 뭐라도, 잠시 스쳐가는 생각이라도, 적어보려는 엄마가 겪는 어려움은 이런 것이구나. 결국 일기를 숨어서 몰래몰래 쓴다. 아니면 아기가 잘 때 정신없이 적는다. 지금처럼. 그래도 이렇게 일기를 쓰면 마음속 혼란스러웠던 것들이 풀린다. 쾌변을 하는 느낌과도 비슷하다. 배출되어야 하는 것들이 나가고 해결되어야 하는 것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그래서 오늘도 일기를 쓴다. 어떻게든, 열심히, 뭐라도 적어낸다.
이번에 책을 쓰며 조금 더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자는 다짐을 했다. 어차피 매일 쓰는 일기인데 엘에이에 사는 한국인의 일상을 소개할 순 없을까. 물론 별 건 없고 그냥 사는 이야기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하고 일하고 아이를 돌보고 청소하고 산책하고 운전하고 뭐 이런. 미국도 사람 사는 건 똑같다. 하지만 평행 우주처럼 한국과 비슷한 듯 다른 부분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지점들은 은근히 많은 생각거리를 남긴다. 가끔은 띠용, 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기도 하다. 신선하다.
물론 남편은 이런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일기는 일기장에 써야지. 그는 자기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는 사람이다. 너(라고 하면 나를 뜻한다)만 알아주면 충분하다고. 인스타그램을 검색창처럼 쓰는 사람. 자기만의 세상 속에서 외롭지 않은 사람. 그는 잘 모른다. 내가 만드는(쓰는) 것들에 나를 투영하고 거기서 기쁨을 얻는 나라는 사람의 어쩔 수 없음을.
일기처럼 솔직한 글은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게 한다. 나는 일기를 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남의 일기장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 에세이 외에도 인스타그램 일기, 블로그 포스트들도 즐겨 읽는다. 이렇게 쉽게 글과 사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있어 감사하다. 덕분에 내 일상을 살면서 타인과 연결된 채로 살아간다. 한 걸음 뒤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그들에 대해 생각한다.
의뢰받아 쓰는 글에는 컨셉이 있다. 교육적인 글은 깔끔하고 신뢰롭게. 무게감 있는 글은 진중하게. 세일즈 카피는 소비자들이 기분 좋게, 친근하게 써낸다. 아무도 내게 이 글을 의뢰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서 쓰는 글. 그냥 편하게 적어낸다. 컨셉이 없는 게 컨셉이라면 컨셉이다. 생활 밀착형 일기. 조금은 공개적으로 적어보는 일기. 한번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남편, 나, 리니, 강아지 루디까지 네 가족의 모험을 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