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이다, 이곳의 날씨에 익숙해져버려서

엘에이만큼 아름다운 날씨를 알지 못한다

by 퍼시픽워드샵


엘에이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지인과 밥을 먹고 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엘에이의 여름은 최악이라고. 같이 있었던 한국인 세명(나, 남편, 그리고 그의 한국인 와이프) 모두 눈이 땡그래졌다. 여기 여름이 최악이라고? 놀란 우리를 보고 그가 웃으며 덧붙였다. 아 물론, 한국보다는 엘에이가 낫지.


나은 수준이 아니다. 엘에이의 여름은 쾌적하다. 태양은 뜨겁지만 건조한 사막기후의 영향으로 땀 한 방울 나지 않는다. 대략 5월부터 10월까지 아침 저녁은 15도, 낮에는 25도 정도의 날씨가 이어진다. 7월과 8월에는 30도를 넘기도 하지만 태양만 피하면 시원하니 집 안에서는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 동부에서 살았던 내게 이곳의 날씨는 그저 아름답다. 엘에이 여름이 최악이라니. 그대는 꿉꿉하고 덥고 비가 세차게 내리는 한국의 여름을 경험하지 못했다.


IMG_2504.JPG
IMG_6475.JPG
엘에이의 여름/가을 모습들



영국 사람들이 즐겨 하는 대화 주제가 날씨라고 들었다. 날씨가 변덕스러운 영국은 날씨가 꽤나 다이내믹한 주제인가보다. 엘에이 사람들도 날씨 얘기를 많이 한다. 여긴 대부분 오늘도 날씨가 좋다는 이야기다. Have a good one. Enjoy the weather. 엘레베이터 안, 길거리에서 이런 말들을 건네며 좋은 날씨 속 행복하라는 가벼운 축복을 빈다.


한국의 겨울엔 추운데 따뜻하게 지내라고 했다. 환절기에는 감기 조심하라고, 여름엔 시원하게 보내라고 해 왔다. 엘에이의 날씨는 크게 부족한 부분이 없다보니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 말고는 할 얘기가 없다. 불평하는게 아니다. 날씨처럼 공평하게 그 지역 모두에게 적용되는 사건도 없다. 비가 오면 모두가 비를 맞고, 날이 좋으면 다 함께 누린다.


엘에이에서 길을 걷다보면 햇살이 꼭 껴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에게 안긴 채로 화를 내긴 어렵다. 그래서일까. 엘에이 사람들에게는 여유가 묻어있다. 천천히 걷는다. 눈길이 닿으면 미소짓는다. 나만 해도 요즘은 다음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준다.


IMG_3968.JPG 12월이 되면 엘에이에도 단풍이 진다. 집 앞 단풍길.


크리스마스를 앞둔 요즘 엘에이는 28도까지 올라가는 독특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어제는 짚 앞 공원에 나갔는데 리니가 뚜벅뚜벅 혼자 잔디밭에 걸어가더니 털썩 앉는다. 그리고는 가만히 해를 즐긴다. 일광욕을 하는 고양이처럼. 혼자 해를 즐기는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웃었다.


엘에이를 떠나면 뭐가 제일 그리울 것 같은지 종종 이야기한다. 나는 날씨일 것 같다. 이런 날씨. 가만히 앉아서 멍 때려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 모기를 발견하면 어떻게 모기가 있을수가! 하고 놀랄 수 있는 날씨(습하지 않아서 모기가 없다). 꼭 좋은 걸 보내고 나서 아쉬워하지만 난 아직 여기에 있다. 이 날씨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 수 있다. 나중에 느낄 그리움은 멈출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의 따스한 햇살 속을 걸으며 감사할 수는 있다.


IMG_4001.JPG 광합성 중인 아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