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의 따뜻한 크리스마스

짧은 숏팬츠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털 부츠를 신는 그런 연말

by 퍼시픽워드샵


엘에이는 크리스마스 시즌인 12월에도 낮에는 20도가 넘는 따뜻한 날씨가 이어진다. 아침에 가벼운 자켓을 걸치고 나온 사람들은 점심이 되면 하나둘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돌아다닌다. 오늘은 공원에서 늘씬한 여자가 타이트한 숏팬츠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흰 털 부츠를 신고 내 옆을 지나갔다. 휘적휘적 걷는 모습이 모델이라고 해도 놀랍지 않다. 그녀를 보며 엘에이의 크리스마스를 형상화한다면 저런 모습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니까, 신고 싶으니까, 가장 화려한 털 부츠를 신는다.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짧은 반바지와 함께.


며칠 전에는 도로변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파는 걸 봤다. 배경은? 야자수 나무. 반팔 차림으로 야자수를 배경 삼아 크리스마스 트리를 고르는 사람들이라니. 참고로 미국 사람들을 잘라낸 진짜 나무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는데, 그럼 집 안 가득 은은한 숲내음이 풍긴다고 한다.


야자수를 배경으로 팔리고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엘에이는 눈도 오지 않으니 크리스마스가 가볍게 지나갈까 했는데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크리스마스가 재미없어질까 걱정하는 사람들마냥 도시 전체가 공을 들인다. 상점들은 데코레이션과 프로모션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각종 크리스마스 부스와 촬영 이벤트들이 열린다. 쇼핑몰은 선물을 고르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홀푸드 마켓에서 크리스마스 특별 런치를 주문받기 시작한다. 할리우드와 디즈니랜드의 도시답게 셀러브레잇팅만큼은 제대로다.


어젯밤에는 리니와 그로브 몰(The Grove)에 갔다. 한쪽은 노드스트롬과 AMC 영화관, 반대편은 파머스 마켓과 연결된 아웃도어 몰인데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으로 가득 찬다. 하늘에 닿을만큼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며 리니가 바짜! 바짜!(반짝) 소리 지른다. 한쪽에서는 아트 스쿨 학생들이 크리스마스 캐롤을 합창한다. 키도 인종도 제각각인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스웨터를 입고 자유롭게 화음을 맞춘다. 옆 부스에서는 무료로 핫코코를 나눠주고있다. 모두 함박웃음인 얼굴들이다.


그로브 몰의 크리스마스


남편에겐 크리스마스가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 내게 크리스마스는 일종의 시즌이다. 설레는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홀리데이 쿠키를 먹으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어제도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로 가족들과 저녁 나들이를 했다. 내년 이맘때쯤 ’우리 작년에 리니랑 그로브 갔었잖아‘라고 이야기할만한 추억을 만들었다.


한국은 폭설이 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가 꼬맹이가 만든 눈사람이라며 사진을 보내왔다.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간 친구 아들만큼이나 커다랗다. 저 정도 눈사람을 만들려면 눈이 꽤 많이 필요한데. 폭설이긴 폭설이구나 생각했다. 한국의 눈 내리는 ’제대로‘ 크리스마스가 그립기도 하다. 따순 거실에서 간식을 먹으며 <나 홀로 집에>를 보고싶다. 창문을 열고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을 맡고싶다. 이곳의 크리스마스는 그런 운치는 없다. 따뜻한 크리스마스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느낌을 낸다. 엘에이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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