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된 구원
나는 원래 기독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었다. 고3 때 앞길이 막막할 때는 공부하기 전에 성경책을 읽기도 하였다. 막연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면 잘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인생의 압박감을 신앙으로 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학교에서 학과친구의 선배라는 사람을 만났다.
몇 번 우연히 만나더니 나에게 성경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안 그래도 성경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고 읽던 나는 성경을 가르쳐준다는 말에 배우기로 하였다.
내용은 결국 그 교주를 믿으면 휴거 된다는 내용이었다.
‘휴거’
예수님이 다시 오면 믿는 자들은 예수님이 계신 천국으로 함께 올라가서 기쁘게 산다는 것이다.
공부와 인생의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에게는 너무나 꿀같이 달콤한 내용이었다. 그 예수님을 만났다는 착각 속에 공부도 인생도 모두 내려놓고 휴거만 꿈꾸며 살게 되었다.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때 공부를 내려놓지 않았어야 했다. 인생의 무게라는 것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고, 그 무게감이 있어야 인생이 성숙해지는 것인데, 나는 그 이후 나에게 더 이상 세상의 어떤 책임도 지우지 않았다. 모든 것을 풀어버리고, 내 멋대로 살기 시작했다. 학생으로서 감당해야 할 것들을 눈감아 버린 채 말이다.
동기들과 수업을 들을 때면, 나는 괴리감을 느끼곤 했다. 나는 학생이 걸어가야 할 길에서 벗어나 있었다.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걸어가고 있는 동기들의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의 성장은 멈춰있었고 성장하려 하지도 않았기에 그들의 모습이 내 모습이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되려 외면하였다.
그 후폭풍은 10년이 지나 나에게 불어왔고. 세월은 나를 봐주지 않았다.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던,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무작정 직업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내 나이는 32살이었다.
사실 그때는 좋아하는 여자도 있었고, 앞으로의 미래를 보았을 때,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고 직업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나이는 많고, 직업분야에 대해 아는 건 없고, 32살에 이미 5년 전에 겪었어야 할 것들을 지금에서야 겪고 있었다. 사회생활과 사회인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과 직업에 대한 지식. 당연히 사회생활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에이스로 촉망받지 못했고, 나이만 많고 실력은 뒤떨어진 뜨내기 취급을 받으며 하루하루 다녔다.
나이 어린 친구들이 실력이 더 좋아 나를 무시하기도 하였다. 그 정도야 괜찮을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더라. 적은 봉급, 불합리한 대우들을 깡으로 견딜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정도 깜냥은 안되었다. 그래도 계속 넘어지면서도 도전하고 있다.
이단종교에서 목회를 포기하고 돈을 벌기로 결심했을 때, 5년이면 그때의 위치정도에는 오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벌써 일한 지 만으로 3년 정도 되었지만 2년 더 한다고 해서 뭔가가 많이 바뀔까 싶어 보이긴 한다. 하지만, 내가 그곳에서 겪고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발전하지 않는 것 같아도 계속 도전하고 또 버티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위치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첫회사에서는 연봉에 대한 불합리함에 박차고 나왔고, 두 번째 회사는 나랑 생활패턴이나 가치관과 생활 패턴이 맞지 않아서 나왔고, 지금이 세 번째 회사다. 연봉도 이전보다 많이 올랐고, 가치관과 생활 패턴도 맞는다, 소장님한테 인정만 받으면 그래도 오래 다녀도 괜찮을 것 같은 회사다.
그 교주를 믿는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는 못했다. 구원이라는 것은 본인이 시키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만큼 노력하고 애썼냐에 따라 그 인생이 구원받는 것이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내 인생을 차근차근 구원해 나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