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마음은 안녕하신가?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by 고시하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교수는 『고통의 곁에 우리가 있다면』에서 알아주지 않는 고통은 트라우마가 된다고 말합니다. 세월호사고의 유가족들은 공포와 두려움 대신 ‘울분’이라는 정서를 보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선 유가족들에게 국가는 위로는커녕,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했죠. 우울함과 비탄 속에서 유가족들은 울분에 빠졌습니다. 이태원 참사 추모제에선 세월호 유가족들이 위로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들만이 고통을 알아보는 것 같았습니다. 서울시는 분향소가 있을 곳은 광장이 아니라, 지하 깊은 곳이라고도 했습니다.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을 알아주는 것이 왜 그리 어려울까요? 제발 신경 쓰지 말고 내버려 두기만 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마음은 오늘도 안녕하지 못합니다.




2015년 11월 13일, 파리 바타클랑 극장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으로 아내를 잃은 남편의 편지입니다. 『당신들에게 분노하지 않겠다. vous n'aurez pasme haine』라는 글입니다.


“지난 금요일 밤, 당신들은 특별한 생명을, 내 일생의 사랑을, 내 아들의 엄마를 앗아갔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에게 분노하지 않겠다. 나는 당신들이 누군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당신들은 죽은 영혼일 뿐이다. 당신들은 신을 위해서라고 하며 맹목적으로 사람들을 살해했지만, 그 신이 우리를 그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면 내 아내의 몸에 박힌 총알 하나하나는 신의 심장의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들에게 분노하지 않겠다. 당신들에게 분노하고 증오하는 것은 당신들과 똑같이 무지에 굴복하는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고, 같은 나라의 국민들을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안전을 위해 자유를 희생하기를 바라겠지만, 당신들은 실패했다. 물론 나는 애통함으로 산산조각 났다. 이 작은 승리는 당신들에게 양보하겠다. 하지만 그 승리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나의 아내가 매일 우리와 함께할 것이며, 당신들은 결코 갈 수 없을 자유로운 영혼들이 있는 천국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들과 나, 우리는 두 사람뿐이지만 이 세상의 어떤 군대보다도 강하다. 더 이상 당신들에게 쏟을 시간이 없다. 낮잠에서 깨어난 아들 멜빌에게 가봐야 한다. 멜빌은 이제 막 17개월이 됐고, 평소처럼 밥을 먹을 것이다. 우리는 평소처럼 함께 놀 것이다. 그리고 이 어린아이는 평생 동안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 당신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이 아이의 분노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앙투안 레리스 Antoine Leiris의 글입니다.

삶을 가장 많이 신뢰해야 할 때는 삶이 위협당할 때입니다. 두려움의 공포 속에서도 신뢰는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두려움은 인간의 삶에는 매뉴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삶이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불확실함을 좋아합니다. 무지의 아들이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어떤 대상을 무서워해서 마음이 불안한 상태를 의미하는데 그러면 두려움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감동입니다. 감동은 마음이 들떠서 두근거리는 상태를 뜻하죠. 두려움이 보통 어둡고 부정적이고, 감동은 밝고 긍정적입니다. 두려움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에서 시작되고,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으로 커집니다. 반면 감동을 받은 이후에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싹트고,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랍니다. 두려움은 불안, 초조, 걱정이라는 어두운 친구들을 좋아하는데, 이들의 특징은 행동하기를 싫어합니다.

이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면 내 안의 두려움이 어느새 ‘포기’를 선택합니다. 반면 감동은 재미, 즐거움, 행복이라는 밝은 친구들을 좋아합니다. 이들의 특징은 자꾸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합니다. 이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면 내 안의 감동이 어느새 ‘도전’을 선택하게 됩니다. 결국 두려움은 포기를 부르고, 감동은 도전을 부릅니다. 두려움은 포기를 선택하면서 악순환을 반복하지만, 감동은 도전을 선택해서 선순환을 반복합니다.

포기하면 성장과 발전도 멈추지만, 도전하면 비록 실패하더라도 소중한 체험적 교훈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마련됩니다. 두려움과 감동 사이에는 '용기'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용기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뭔가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을 때 비로소 나타납니다.

마치 밀물과 썰물에 따라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섬과 같습니다. 용기는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는 순간 자취를 감춰버리고,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순간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소망으로 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삶에는 두려움과 감동이 함께 공존합니다. 심지어는 하나의 대상을 두고도 나타납니다. 국민 참사는 두려움으로 끝을 내면 안 됩니다. 돈 몇 푼이 아닌 감동이 있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감동의 조건들이 있습니다. 인생은 풍요롭고 건강해야 합니다. 마음을 안다는 것은 또 다른 깨짐이고,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은 감동의 길로 인도합니다. 한 차원 높은 감동을 체험하게 해 줍니다.


-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듣는다.

-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KV622 2악장,

깊은 밤의 뱃 고둥 소리를 듣는 일은 흔치 않은 경험입니다. 클라리넷의 첫 음은, 두려움과 불안이란 어두움의 소리를 쫓아 보내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지중해 연안의 따스한 오후의 테라스로 데리고 갑니다. 신비할 정도의 평안함은, 이 곡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곡이란 부제와도 어울립니다. 모차르트가 죽기 직전에 쓴 곡이라, 그리움과 깊은 애잔함은 2악장 전체의 평안ㄷ을 지속시켜 줍니다. 불안하고 두려움이 가득할 때, 그 모든 감정을 어른스러운 낭만으로 이끌어 갑니다. 오늘처럼 아침 기상이 흐리고 비 오는 날씨나 인위적인 조명이 필요할 때는 꼭 한 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여행을 떠난다.

-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베트남의 사파입니다. 동양의 알프스라 이름 붙은 이곳은 신비한 절경과 안개로 유명합니다. 베트남 북부 해발 1650미터, 전 세계 트레킹 족에게 사랑받는 유명 여행지입니다. 베트남은 관광으로 오염될 곳이지만 몇 남지 않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생수 준비는 잘하고 떠나야 하는 곳이죠. 마음을 라임 색으로 그릴 수 있는 곳입니다.


- 마음을 흔드는 세미나에 참가한다.

- 김훈 작가의 북 콘서트나 장사익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곳에는 가보고 싶습니다.


- 반복해 읽고 싶은 책을 찾는다.

- 개인적인 책으로는 ‘요한복음’입니다. 또 하나는 김훈의 책들입니다. 사고 전개가 깊고, 가보지 못한 세밀한 감동의 세계가 있습니다.


- 갖고 있기만 해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만년필을 구입한다.

- 쓰는 도구에 아직 욕심이 있습니다. “쓰면 되는 거지, 그게 뭐라고.” 아닙니다. 어떤 펜은 집을 팔아서도 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내가 듣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영화를 영화관에 가서 본다.

- 좋아하는 이들과 가장 좋은 좌석에서의 영화 관람은 신선하고 따듯한 감동이다.


- 지는 노을을 바라본다.

- 오후 7시부터 아파트 8층에서는 신세계가 펼쳐집니다. 30분은 거든하게 보내는 향연입니다. 일몰을 보며 바라봅니다. 말년의 감동이 일몰 같기를 말이죠.


- 아침 해의 힘을 온몸으로 받는다.

- 일출의 태양은 신비하고 극적입니다. 맑간 햇살에서 시작해서 군대의 발자국소리처럼 무서운 기세를 뽐내다, 처연하게 하루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 심금을 울리는 감각이 뛰어난 사람을 찾아 행동을 함께한다.

- 보면 뭐라도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미안하거나 빚진 사이도 아닌데, 뭐라도 주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번 목요일엔 그와 같이 양평 고바우 설렁탕집에 가서 설렁탕이라도 같이 먹고 싶습니다. 시간이 되려나 모르겠지만 많이 웃어 주는 그와 함께 가고 싶습니다.


- 혼자만의 시간을 위한 장소를 가진다.

- 골방은 답답해서 싫은데, 골방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오후 2시의 샤워를 마치고, 골방에 들어가면 어둡고 꽉 낀 옷을 입은 것 같지만, 좋은 생각들이 만나줍니다. 오늘은 청소해 놨는지 모르겠습니다. 청소하러 가야겠습니다.


단순히 아는 것, 인지하는 것을 넘어 정말로 감동하고 신뢰하기 시작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한 지식이나 깨달은 사실은 우리를 깨우고 움직이게 합니다. 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깨달았다면, 그 순간 이후로 당신은 결코 이전에 살아왔던 방식대로 살지 못합니다. 신뢰가 생기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