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6월에 개봉한 ‘에움길’은 일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여정을 다룬 휴먼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년 넘게 ‘나눔의 집’에서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희로애락을 담았습니다. 할머니들의 굴곡진 인생이 바로 에움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좁고 호젓한 오솔길, 휘어진 후밋길, 낮은 산비탈 기슭에 난 자드락길, 돌이 많이 깔린 돌너덜길, 사람의 자취가 거의 없는 자욱길, 강가나 바닷가 벼랑의 험한 벼룻길. ‘길’이란 단어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참 문학적이고 철학적이고 사유적입니다. 산책이 사유와 통찰의 지름길이라고 하는데 에움길이 지름길입니다.
위로받고 칭찬받으며 배려받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세계일 것입니다. 영향력을 발휘하는 삶, 그렇다면 권위를 위임받는 삶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나의 세계라면 아직은 편협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나의 세계는 받는 게 아니라, 마음껏 줄 수 있는 세상이 올 때야 나에게 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커피의 기원은 B.C 75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에티오피아의 목동이자 시인이었던 칼디는 염소가 커피나무의 잎과 열매를 보고 뒷발로 춤을 추는 것을 봤습니다. 칼디는 자신이 직접 커피 잎과 열매를 씹어보는데, 시와 노래가 넘쳐 나왔고, 영원히 지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후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영감insight과 창의적 사고를 얻기 위해 커피에 의존했습니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점심시간까지 사람 구실을 하도록 도와주고, 오후에 마시는 커피 또한 해가 질 때까지 정신 차리고 있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집 앞 카페의 상호는 ‘피보다 커피’입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인 찰스 B. 리드Charles B. Reed 박사는 ‘커피가 천재성을 개발해 주는 물질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철학자, 예술가, 문인들을 보면 일리가 있는 듯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하루에 커피를 60잔씩 마셨고, 소설가 발자크도 50잔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는 12시간 동안 쉬지 않고 글을 썼는데, 이 12시간 동안 창작 에너지를 지켜준 것이 바로 커피였습니다. 그는 글쓰기 작업을 전쟁에 비유했는데, “커피를 마시는 순간 추억들이 전속력으로 달려 도착하고, 비유의 기병대, 논리의 포병대가 끼어들고 재치 있는 착상들이 화살처럼 날아오르고 종이가 잉크로 뒤덮인다. 전쟁이 검은색 화약으로 시작하고 끝나지만 글쓰기는 검은색 액체의 격류로 시작하고 끝난다.” 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찰스 디킨스도 상상력의 원천이 될 영감을 커피에서 얻었다고 회고하곤 했습니다.
“우주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인간이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입니다. 아인슈타인이 가장 놀라워한 우주의 신비는 인간의 통찰력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까지 뭐든지 물어보면, 답해 주는 컴퓨터를 하나씩 들고 다니고 있으니 말이죠. 기적과도 같은 인류 문명의 토대는 철학 위에서 구축되었습니다. 철학적 사고에서 수학이 나왔고, 수학적 논리에서 과학이 나왔으며, 과학의 초석 위에 현대문명이 세워졌습니다.
철학은 곧 사색思索입니다. 많은 지식을 저장하고 있다고 지성인이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사색할 수 있어야 지성인이 됩니다. 사색은 곰곰이 생각하여 이치를 따지는 것이고, 이치를 따진다는 것은 ‘그렇구나.’ 하는 생각인 아하~의 유레카의 시간입니다. 이치 안에서 모순을 발견하고 모순을 정리하는 것이 통찰insight 입니다. 유레카의 순간은 모순의 결합에서 나타납니다. 사색은 이치고, 통찰은 모순의 이치인 셈이죠.
모순矛盾은 창矛에 비유되는 강력한 관통력을 지닌 기술과 방패盾에 비유되는 강력한 방어력을 지닌 기술이 만난 것을 일컫는 단어들입니다. 모순에도 사색이 들어가야 통찰이 됩니다. 꿰뚫어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 단어 자체가 모순인 셈이죠. 모순들을 엮어 이치로 꿰면, 통찰의 힘이 나오는데, 사색과 통찰은 2인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