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하는 견식가
추사 김정희가 “제 글씨는 아직 부족하지만 칠십 평생 벼루 10개를 밑창내고, 붓 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습니다.” 유홍준의 ‘안목’에 나온 구절입니다. 다섯 살부터 글을 썼다고 하면 일 년에 벼루 하나와 16자루 정도의 붓을 썼다는 말인데, 엄청난 수입니다. 그 정도 돼야 안목이 생기고, 볼 것과 이해하는 것, 사랑하는 것과 모으고 싶은 것을 분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추사 선생은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뛰어난 견문과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일상의 대화에서부터 숨 막히는 긴장된 대화까지 대화에는 공감을 필요로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 미루어 짐작해야 되는 말, 나에게는 근거가 없는 어색한 웃음을 짓게 하는 농담들,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말, 비속어를 섞어하는 말들은 대화의 폭을 넘어가는 공감이 없습니다. 그래도 대화를 이어가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조건에서도 대화의 내용을 듣고 분별하는 뛰어난 대화자가 될 수 있을까요? 많은 통찰은 대화 속에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대화가 매력적이지 않다면 통찰도 사라지곤 하죠.
배려있는 개방성
매력적인 대화에 참여하고, 위대한 대화를 이끌어 가려면 준비할 것이 있습니다. 처음은 열린 마음의 개방성을 가져야 됩니다. 상황을 파괴하려는 말에 대한 포용력입니다.
대화를 할 때도 “나의 세상은 강력해서 들어 올 틈이 없을 거야.”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화도 자신의 마음속 세상으로 말하고 듣습니다. “진짜는 나고, 가짜는 당신이야.”라는 설정으로는 혼자 있는 게 났습니다.
개방성은 배려입니다. ‘그런 것들이 있었군요. 계속 부탁드려 볼까요.’ ‘제 생각보다는 훨씬 큰 이야기들이네요.’ ‘정말인가요. 좀 더 정리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매력 있는 대화자의 응대법이다. 당신의 신발을 신고, 당신의 눈으로 보겠다는 것이 대화 중 경청의 자세입니다.
생태문화적 관심
둘째는 자연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정리해서 대화에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사회문화적인 것들이 좋습니다. “꿀벌의 뇌 무게는 1밀리그램 정도이다. 몸 전체가 엄지손톱만 한 크기다. 만 마리의 일벌과 여왕벌이 한 무리를 이룬다. 그 제국의 언어는 치밀하고 체계적이다. 유명한 8자 춤이 그 예이다. 탐색벌이 선발대로 나가 꿀을 찾는다. 탐색벌은 벌집의 벽 쪽에서 8자 춤을 춘다. 밀원蜜源의 장소를 춤의 궤적으로 표현한다. 밀원까지의 거리를 춤의 횟수와 속도로 표현한다. 꿀의 질은 춤의 활기찬 정도로 표현한다. 다른 일벌들은 춤을 해석한 뒤 밀원으로 날아가 꿀을 딴다. 유럽꿀벌은 최대 11킬로미터 떨어진 거리도 정확하게 알려준다고 한다.
그들은 삶의 공간이 부족할 때 전체무리의 3분의 2가 떠난다. 분봉하는 벌은 30미터 이동한 후 턱수염 모양의 덩어리를 이룬 후 몇 시간, 며칠 동안 함께 붙어 다닌다. 정찰대 수 백 마리가 70제곱킬로 미터(울릉도면적은 73㎢)를 뒤져 10개의 후보지를 정한다. 후보지들은 공동이익과 상호존중에 기초한다.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 모색, 논쟁으로 집단지식을 종합, 응집력, 정확도, 속도에 대한 정족수 활용인데 단연 인상적인 것은 집단사고에서 지도자의 영향을 최소화시킨다. 여왕벌은 그 주변의 작은 우리 안에 갇혀 있다. 지도자가 없어도 집단적인 힘이 다양한 해결책을 찾아낸다.” 꿀벌의 민주주의를 쓴 토마스 D. 실리의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의 소재는 대화를 이끄는 힘으로는 탁월합니다.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대화를 주도하는 힘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1밀리그램의 뇌에서 상상할 수 있는 나만의 메타포가 나옵니다.
인문학적 성찰
마지막은 인간존재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는 인문학적 성찰입니다. 장자 이야기입니다. “북쪽 검푸른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어느 날 그것이 변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이 붕새의 등 넓이 또한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온몸의 힘을 다해 날면 그 활짝 편 날개는 하늘 한쪽에 가득히 드리운 구름과 같다. 붕은 바다 기운이 움직여 대풍大風이 불 때 그것을 타고 남쪽 바다로 날아가려 한다. 남쪽 바다란 곧 천지를 말한다.”
붕이 되어 천지를 노니는 마음.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말입니다. 바람에 따라 나부끼는 깃발의 끈과 같이 얽매이는 바 없이 자유롭게 노니는 것을 말하는 소요유입니다.
소요유를 들을 때마다 에덴동산이 생각이 납니다. 최초의 죄를 짓기 전,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정신은 피조물로서는 인간 최고의 경지이며, 모든 구속과 차별, 가치를 넘어선 절대 자유의 정신이었습니다. 사람다움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정도의 경지에 있어야 인생을 깨닫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청정한 기운이 가득합니다. 좋은 대화는 말과 관계, 그리고 마음으로 시작되는 깨달음의 시작입니다.
“심히 좋았더라” 절대자가 천지를 만든 후에 혼자 대뇌인 말입니다. 아니 모든 피조물과 나눈 대화입니다.
“모든 것들이 다 잘 어울려서 너무 좋아. 그대는 괜찮으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