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부르
까만 밤이 되어서야 캠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오기 전 독일 쾰른에 들러 점심을 먹고 잠시 시내를 구경했기 때문이다. 610km가량을 달려온 것이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강원도에서 서울로 오는 길에 춘천에 들러 닭갈비를 먹고 온 기분과 흡사했다. 국경을 넘었지만 여권에 찍힌 도장도, 입국심사도 없었기에 내가 애써 기억하지 않는 이상 몇몇 국가를 거쳐 왔다고 말하기 모호했다. 국경에 다다랐을 때 내비게이션 지도를 보면 줄 하나가 찍 그어진 채 두 나라의 이름이 보이는 정도의 차이였다.
분명 캠핑장 상호명을 찾아왔는데 굳게 닫힌 철장 문이 눈앞에 등장한다. 우리는 후문 앞에 차를 잠시 세워두고 또다시 시간이 지체된다. 기다림 끝에 캠핑장 직원에 의해 문이 열린다. 어두컴컴한 길목 사이로 한참을 들어와 숙소 앞으로 간다. 이렇게 큰 캠핑장은 처음이다. 트렁크를 열어 뒤죽박죽 섞인 짐들을 힘 좋은 친구들이 내려주면 아이들이 짐을 찾아간다. 각자 배정된 숙소로 몸을 옮긴다. 고요한 밤하늘과 오두막과 숙소 뒤로 들려오는 시냇물 소리. 우리의 설렘은 밤의 적막과 함께 잠든다.
이슬을 머금은 아침이 촉촉한 인사를 건넨다. 겨울 공기는 차갑지만 캠핑장이 가진 아늑함이 우리를 포근하게 안아준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인원 체크를 한다. 오늘은 스트라스부르 시내를 구경하고 숙소에 돌아와 자유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나와 다른 숙소에 있던 모아나가 몸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는 그녀를 걱정하는 마음을 가진 채 우선 아이들과 차에 탄다. 우리는 스트라스부르 대성당(Cathedrale Notre Dame de Strasbourg) 앞에 도착한다. 나는 검붉은 빛을 띠는 건축의 자태에 압도당하고 조각 하나하나에 시선을 떼지 못한다. 성당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 나의 여행 메이트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점심을 먹을만한 식당을 찾기 위해 골목길을 헤매다가 몇몇 친구들을 길에서 마주쳐 결국 함께 식당을 고르기로 한다. 우리는 한 프랑스 식당에 들어간다. 처음 보는 메뉴판에 번역기만 한참을 보다가 직원의 추천으로 이것저것 다양하게 메뉴를 고른다. 예쁜 그릇과 와인잔이 준비된다. 과연 프랑스답다.
우리는 짧은 시내 구경을 마치고 다시 숙소에 온다. 그 사이 마테오는 캠핑장 근처에 있는 축구장을 발견한다. 그는 남자아이들을 모조리 데리고 축구장으로 떠난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중학생 무렵부터 그는 나이키와 축구와 여행을 좋아했다. 축구에 흥미가 없는 몇몇 친구들도 있었지만 팀을 이뤄야하는 경기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함께 간다. 우솔과 수현은 간만에 찾아온 평화로운 휴식을 선택한다. 나는 같이 숙소를 쓰는 나머지 세 아이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남자 친구들이 있는 축구장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무엇보다 규빈과 유진은 케빈의 자칭 팬클럽 회원이었기에, 그가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거듭 말해서 함께 가 줄 수밖에 없었다. 30여 분을 걸어 축구장에 도착한다. 이 차가운 날씨에 얇은 티셔츠 하나만 입고 뛰는 저 열정. 수줍음을 많이 타던 아이도, 평소 쫑알쫑알 말이 많던 아이도 누구 하나 빠짐없이 활짝 웃으며 공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엄마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인솔하는 아이들을 신경 쓰느라 남자아이들과 많이 가까워지지 못했던 것 같다. 케빈을 향한 아이들의 사랑 어린 눈빛과 응원도 옆에서 듣는다. 중학생 때 처음으로 지긋이 좋아하던 선배가 문득 생각난다. 그가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던 기억이 있다. 그의 고백이 다른 이로 향하는 것을 보고 나의 마음에 자잘한 유리 파편들이 흩뿌려졌지만, 아팠던 만큼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니 꽤 괜찮은 추억이었던 것 같다.
실컷 운동을 즐긴 아이들을 숙소에 내려주고 마테오와 인솔자를 포함한 몇몇 성인 친구들은 장을 보러 마트로 향한다. 허기진 배를 토닥이며 고기와 쌈채소, 버섯 등을 고른다. 마트 코너를 구경하다가 고구마를 찾았는데, 보자마자 오두막에 있는 벽난로가 떠오른다. '겨울은 군고구마의 계절이지.' 나는 마음으로 이미 고구마를 포일에 감싸는 상상을 하며 자연스레 고구마를 담는다. 밤 고구마와 호박 고구마를 분간하기 어려워 이름이 다른 두 고구마를 골고루 비닐봉지에 담아 간다.
9시가 다 되어서야 숙소에 돌아올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캠핑장에서 터진다. 오늘 저녁으로 바비큐를 선택한 이유는 물론 캠핑장이란 환경때문도 있지만, 모두의 단합을 위함도 있었다. 문제는 아이들의 태도였다. 함께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닌, 왜 빨리 준비가 안되었냐는 뉘앙스와 눈빛으로 투덜댔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이 그러지 않았지만, 몇몇 아이들의 태도는 모든 아이들에게 번지기 마련이다. 손이 한참 모자란 인솔자들을 여러 친구들이 도왔다. 마테오는 안에서 고구마를 뒤적거리다 사라졌다. 화력이 한참 딸리는 작은 불판에 20인분 고기를 굽는데, 겨울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손발이 동상이 걸릴 듯이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각자 숙소에서 쉬고 있던 아이들을 두 차례 불러와 저녁을 대접하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우리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맥주 캔 하나씩 들고 서로의 불만을 보듬어주며 남은 고기를 주섬주섬 먹고 시간이 더 늦어질까 봐 자리를 정리했다.
이 날 아침, 모아나가 아프다는 것은 핑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사건은 침묵 속에 묻힌다. 그저 그녀와 우솔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것과 그녀가 감당하기 힘들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것밖에 알 수 없었다. 나에게 우솔은 사랑이 넘치는 귀엽고 발랄한 아이인데, 그 둘은 어느 부분에서 어긋난 걸까. 남자 인솔자 하빈도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말 안 듣는 삼총사 때문에 그도 결국 다음날 아침에 분노가 폭발했다. 우리는 여자 총괄 인솔자 뚜비가 스페인 여정부터 함께한다는 희망 하나를 가지고 서로에게 의지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