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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트립 레시피

톨레도-리스본

by 쥬링

여행자라면 장기여행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지배적인지 알 것이다. 유료 환율이 1430원대인 현시점에서 살펴본 지출 내역 중 일부를 가져왔다.


주유소 편의점 500ml 1+1 물 5500원

커피 한 잔 7800원

파이브가이즈 1인 세트 23,700원

레스토랑 한 끼 식사 31,000원

와인을 곁들인 타파스바 40,000원


로드 트립은 도로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심심한 입을 달래주어야 한다. 그게 수다가 되든, 잠이 되든, 간식이 되든 간에. 우리는 편의점이나 휴게소의 어처구니없는 물가 경쟁을 피하기 위해 이동 전 마트를 들려 미리 간식거리를 사는 정성을 들여야 한다. 특히 숙소 근처에 한인마트가 있다면 라면을 쟁여두는 것은 필수이다. 캐리어를 열 때마다 심신의 안정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라면 봉지니까. 마트에 도착하면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쓱 둘러본 뒤에 본격적인 쇼핑을 시작한다. 요긴한 간식거리가 될 젤리(나는 평소에 주전부리를 잘 먹지 않는 편인데, 이 시기에 살면서 하리보 젤리를 가장 많이 먹은 것 같다), 과자, 껌, 에너지 음료 등을 고르고 먹기 좋게 손질된 과일도 카트에 담는다. 도시락처럼 포장된 샐러드도 좋다.


하루는 3호차에서 간식 대용으로 산 아몬드를 꺼내 먹으면서 뒷좌석 아이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다. 아이들은 아몬드가 뭐가 맛있냐며 몇 알 먹지 않다가 유진이 수줍게 말을 꺼냈다.

“주디쌤 저 아몬드 더 먹어도 돼요?”

빨간 프링글스 감자칩 한 통을 늘 한 손에 안고 야무지게 과자를 먹던 유진이 아몬드의 고소한 맛을 알게 된 순간이다.

마트에서 2L가량 되는 물과 음료수를 대용량으로 사서 작은 물통에 옮겨 담는다. 편하게 나눠 마시기 좋다. 비닐봉지는 차에서 쓰레기봉지로 쓰기 완벽하다! 장거리 운전 뒤에는 차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닥에는 언제 떨어트렸는지 몰라 이미 짓밟혀 으깨진 과자 부스러기와 젤리, 다 먹은 초콜릿 껍질 등이 널브러져 있다. 어느새 나는 차 시트로 낙하한 쓰레기를 치우며 멋쩍은 웃음과 얕은 한숨을 내뱉는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으면서도 먼저 나서서 정리하고 치우게 된다. 아이들은 나의 게으름을 치료해 준다.


로드 트립에서 유용한 물건 리스트

-가방에 쏙 들어가는 작은 물통

-휴대용 전기 포트 혹은 가스버너

-햇반, 컵밥, 큐브로 된 간편 국

-수저세트


휴대용 전기 포트는 휴대하기 불편한 만큼 엄청난 강점이 있다. 어디서나 콘센트만 있으면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다는 것. 가스레인지가 없던 게스트하우스에서도 휴대용 전기 포트를 이용해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다. 가스버너는 야외에서 쓰기 좋다. 마테오는 휴게소에서 구석진 주차장에 자리 잡고 가스버너로 혼자 몰래 라면을 먹고 오곤 했다(같이 좀 먹지…). 큰 휴게소에는 푸드코트 옆으로 전자레인지가 있는데, 이때 컵밥을 따뜻하게 데워 차에 돌아와 먹으면 적어도 13유로를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용돈 파우지를 관리하는 일은 아주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소비 습관을 엿볼 수 있었고, 그 속에서 나름 재미와 유익함을 얻었다. 나는 때를 정해 아이들이 돈을 받아갈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들었지만 사실상 주기적으로 밤이 되면 돈이 더 필요한지 아이들에게 먼저 묻곤 했다.

내가 “돈 더 안 받아가도 돼?” 혹은 “아직 용돈 남아 있어?”라고 물어보면 보통 아이들은 “아 맞다, 20유로 더 주세요.”라던지 “오늘은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특히 유진은 용돈이 넉넉하게 있는 편이기도 했고, 돈을 조금 헤프게 써도 괜찮았을 텐데(부모님이 준 용돈이니 말이다), 아직 돈이 남아서 괜찮다는 말을 며칠 내내 한 적이 있다. 그녀의 소비는 프링글스 감자칩과 젤리가 주를 이뤘고 정말 사고 싶은 게 아니면 사지 않고 잘 참았다. 큰 지출이라면 런던의 해리포터 샵에서 산 도비 인형(그것도 한참을 고민하고 내게 사는 게 괜찮을지 몇 번을 물은 뒤에 결정했다)과 바르셀로나 어느 길거리에서 산 하얀 토끼 인형 가방이었다. 유진은 똑 부러지고 똘똘했다. 아이들의 씀씀이는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돈을 절약을 잘하지만 그만큼 한 번에 크게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합리적인 소비와 절약에 성공했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 우리의 소비를 부추기는 수많은 광고와 마케팅에 흔들리기 않기 위해서라도 심지를 굳힐 필요가 있다. 진정한 소비의 기쁨을 느끼게 될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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