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
모태 신앙이 뭐 별거인가. 당시 나를 밴 엄마가 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태어나 보니 나무로 지어진 꽤나 아늑한 예배당에 자주 다녔고, 그곳의 음악을 완성시키는 다양한 악기와 노랫소리를 좋아했을 뿐이다. 외가와 친가에는 천주교 신자와 기독교인과 무교를 가진 사람이 골고루 있었기에 나는 저마다의 신을 존중하는 법을 알게 모르게 배우며 자라온 것 같다. 커가다 보니 몇몇 종교 집단에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사업적인 행태 혹은 불법적인 행태를 전해 듣게 되었다. 그 모든 실망이 종교라는 것에 묶여 나의 종교를 숨기다가 끝내 무교를 선언하게 되었다. 사실 세상을 향한 실망이었을 텐데. 바람을 쐬기 위해 절에 가면 불교에, 가끔 생각나는 명동성당에 가면 천주교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어느 곳이든 그 길의 끝에 인간의 야욕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던 얕은 생각을 가진 때가 있었다.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멀어지는 건 너무나도 간단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여러 국가의 성당을 거쳐왔다. 도시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나 관광지로 지정된 곳들이 많다 보니 일정이 그렇게 짜인 것 같다. 아이들의 발화점은 많이 달랐다. 그게 그거 같은 성당을 왜 자꾸 들리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성당 외부 사진을 몇 장 찍고는 주변 식당과 기념품 가게에 더 관심을 가지고는 했다.
톨레도 대성당은 넓은 공간에 비해 작게 빛나는 샹들리에와 벽마다 걸려 있는 촛불 등과 아름다운 색채를 뽐내는 스테인드 글라스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고루 어우러지는 곳이다. 이상하게도 어둠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고 할까나. 저마다의 발소리와 작은 속삭임과 영어로 설정된 오디오 가이드 소리가 장엄함 속을 유영한다. 나는 적당한 어둠과 고요가 주는 묵직한 에너지를 소리 없이 즐기다가 투명한 빛이 내리쬐는 천장 앞에 멈춰 선다. 성당 뒷 켠에 자리한 제단화(El Transparente)다. 매일의 찬란한 빛을 허락하는 유일한 공간이자 벽화와 조각이 어우러져 입체감이 배가된 장소. 나는 어둠과 빛의 공존을, 그 안에 새겨진 무수한 것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이쯤 되니 신의 존재 유무를 판단하던 나의 생각이 곧 오만이었다고 여겨진다. 이 또한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것들이 있었음을 이해하는 과정이겠지. 몇 달 전 외할아버지의 유언대로 세례를 받은 엄마가 이곳에 함께 했으면 나보다 더 벅차하셨을 텐데. 자질구레한 잡념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고유의 역사를 간직한 신성한 공간에 발을 들인다는 것이 어쩌면 축복과 같을 거라고 상상하는 나와는 사뭇 다르다. 예술가는 하나의 업적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았을까. 작품이 세상으로 나왔을 때, 온몸을 덮치는 환희, 그리고 이후에 밀려오는 끝없는 공허를 어떻게 매번 감당했을까. 까마득한 미래에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을 거라고 감히 상상이나 해봤을까. 우리는 누군가 평생을 바쳐 지은 예배당을, 목디스크로 앓아누울 만큼 천장만 보며 벽화를 그리고, 조각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여 탄생한 예술 프로젝트를 티켓 한 장의 값만으로 볼 수 있는 세상. 사진이 주는 힘을 좋아하지만 실제가 선사하는 감각을 온전히 받아들였을 때 얻는 무한한 감정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이 값지다.
우리는 하나에 몰입하기 어려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며 여러 능력을 요구받고 스스로를 압박하며 틈을 주지 않는다. 사계절 중 하나가 돌고 돌아 나타난다. 우리는 계절이 주는 기쁨을 자연에서 얻지 않는다. 그저 자라에서 산 신상 옷과 이번달 네일 디자인에서 얻을 뿐이다. 우리는 취미가 많음을 자랑한다. 이 말은 전념하고 싶은 단 하나의 것이 아직까지 없음을 내포한다. 넷플릭스에서 미니멀리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집을 뒤집듯이 청소하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집중하려고 해도 집중하지 못하는 세상, 억압과 지탄으로 가라앉는 세상. 우리는 꿈을 꾸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모두가 자유롭게 삶을 누리길 바라며 과거에 살던 얼굴 없는 예술가를 떠올린다. 그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해가 어둑하게 떨어질 즈음, 마테오와 몇몇 아이들과 나는 톨레도 대성당과 마을을 바라볼 수 있는 강 건너편으로 향했다. 마테오가 톨레도에 올 때면 꼭 들리는 뷰 포인트라고 하며 잠시 눈을 감고 있으라고 얘기한다. 나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을 기다리던 어린 마음처럼 눈을 꼬옥 감았다.
“눈 떠봐.”
동화에서 볼 법한 풍경과 내가 마주 본다. 반지 상자처럼 작고 각진 건물 사이로 자동차의 움직임이 불빛으로 보이고 길마다 심어진 가로등은 반딧불이처럼 예쁘게 반짝인다. 마을 밑으로 흐르는 강물은 마을의 빛을 투명하게 담고 유유히 흐르고 있다. 밤하늘이 까맣게 물들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소경(小景). 오르골을 돌리면 움직이는 목각 인형처럼 일정한 움직임이 이어지는 마을. 대성당에서 본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연주를 시작한다. 마을의 고요한 움직임과 오르간 연주가 시간을 묶어둔다. 쉴 새 없이 달려 나가는 세상 틈에 존재하는, 과거에 깃든 있는 마을. 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행복을 쥘 권리는 스스로에게 있음을 떠올린다. 대성당의 아리아가 마음속에 엄숙히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