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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한 MZ, 3일 만에 퇴사하다.

by 쥬링

여러 회사 다녀봤지만 3일 만에 회사를 관둔 적은 처음이다.


패션 매거진 M에 면접을 보러 갔을 당시에는 에디터로 갔지만, 막상 일에 투입되니 연예인과 인플루언서 공구 진행을 도맡아주는 마케팅 팀원이자 디자이너자 촬영 기사로 일했다. 월간 잡지는 이미 올해 초에 돈이 안 된다며 정지했고, 나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패션과 관련된 미디어 기사를 써볼 기회조차 없었다.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하던 L을 도왔을 때와 업무는 동일했다. 에디터라는 이름을 걸고 잡코리아에 올린 공고는 허위 사실이었음을 직접 확인한 셈이다. 그는 물건을 판매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지, 잡지를 만들고 있지 않다고는 얘기하지 않았다. 나는 패션 매거진에 입사한다는 부푼 꿈에 겨워 며칠간 옷과 가방을 고민하며 쇼핑을 고대했는데, 모든 게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대표 K는 첫날 나의 면전에 대고 답답하다면서 소리를 질렀고 둘째 날은 촬영 일정이 있어 서울에서 송도까지 갔지만 집에 돌아가는 건 나의 몫이었다. 마지막 날은 연예인 앞에서 잠시 핸드폰을 봤다고 싸가지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외 사람을 깎아내리는 잡소리를 참 다양하게도 들었다. 아무도 나에게 인수인계라는 것을 해준 사람도 없고, 여러 계정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알려준 게 전부였다. 어느 회사에서나 일 잘한다고 칭찬만 듣던 내가 대표라는 사람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왜 이런 인격모독을 당해야 하나?


나의 상황을 들은 친구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 정도면 취업 사기 아니야..?"

"야.. 첫날부터 야근을 시켜? 전형적인 구멍가게다."

"잘못 걸린 거냐고.... 있을 필요가 없다"

"네가 너무 아깝다."


매일 들은 욕을 집에서 공유하니 가족들이 더욱 난리였다.

"미친년이 왜 저런대. 그냥 지금 집으로 가. 짐 싸서."

"당당하게 관둬. 내일 고용노동부 가서 부당내용 신고해."

마지막에 나는 당당히 말했다.

면접 때 말한 것과 지금 업무가 달라서 일할 수 없다. 오늘까지만 일하겠다.

그는 나의 대답을 원했다는 듯이 받아들이면서 너는 오늘 일을 많이 하지도 않았으니 마저 영상 편집 업무를 마무리해서 보내라고 한다.

나는 그렇게는 안 되겠다고 말한다.

약간 당황한 듯이 웃으며 그는 알겠다고, 고생했다는 인사로 끝을 맺는다.

나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고 당당히 관둔 것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는 합당한 MZ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끝인사를 나눴는데, 이들도 나의 고생을 안타까워하고,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얘기해 준다. 퇴사를 선언하고 집에 오는 길에 화가 나서 비트를 실컷 쪼개는 노래를 듣다가 집에 와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운동을 가려고 옷을 갈아입고 운동 가기 전 밥도 거르고 글을 쓰다가 이 상황이 싫어서 울고 있다.


여러 환경에서 일을 해보면서 느낀 점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어떤 회사나 직업이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일을 하는 동료가 정말 중요하단 것. 그 일의 사회적 위치가 어떠하든 스스로 비전이 있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 한다면 그걸로 된다는 것. 나는 방황하는 남자친구가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누구나 존중받는 사회가 오면 좋겠다. 나는 좋은 어른이 꼭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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