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 Gogh The Great Passion
즉흥적인 하루다. 서초에서 일정이 끝난 뒤 예술의전당으로 향했다. 반고흐의 생애를 탐방하러.
작품을 빤히 들여다본다. 그림 너머로 밀려오는 들판의 바람결을 느끼고 온 하늘을 채운 노란 태양빛을 쬔다. 떠오르는 잔상들을 메모장에 뱉어낸다.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27살부터 생을 마감한 37살까지. 10년 사이에 네덜란드-벨기에-파리로 거처를 옮기며 예술 활동을 이어나간 그의 발자취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그가 파리로 향하지 않았다면, 그의 그림은 초창기 인물화에 멈춰있었을까?' 라던지 '파리에서 다른 화가들을 만나지 않았어도 그의 화풍이 오늘날과 같을 수 있었을까?'. 불현듯 해외로 떠나고 싶은 나의 선택을 지지하게 된다.
카페에 가서 다이어리에 기록하고, 공부하고,
마트에 가서 간단히 장을 본다.
겨울치고 꽤 견딜만한 날씨라고 생각했지만 종량제 봉투를 든 손끝에 감각이 없어져 간다.
찬 바람을 피하기 위한 꼼수로 모르는 무리 뒤에 살짝 붙어 걷는다.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을 따라 생각이 피어오른다.
예술가, 즉 예술 활동을 직업으로 가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예술가의 "특성"을 가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것과 예술가라는 직업적 특성과 예술 자체를 하는 행위적 특성은 또 다른 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예술가의 특성을 가진 사람을 동경했다. 예를 들면 사소한 것에서도 영감을 찾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과 같은 것들 말이다. 2016년 1월, 학교 도서관에 묵직하게 꼽혀 있던 동화책을 꺼내든 적이 있다. 꼬불꼬불한 길과 발자국, 지도 드로잉이 돋보이는 예술 서적이 퍽 마음에 들었다. 나는 어느 페이지에서 "인생의 목적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글귀를 마주했다. 그날부로 이 문구는 나의 모티브가 되었다. 어린 나는 그 특성을 좇기 위해 가수, 배우라는 직업을 향해 나아갔다. 특성이 곧 예술가의 명예이자 권위라고 느낀 것 같다. 그 길에서 나는 만남과 이별을 자주 해야만 했고, 무너졌고, 실패해도 나아갔다. 어느 순간 나는 돈을 벌게 되었다. 가난하긴 싫었고, 살아야 했다. 그렇게 멀어졌다. 현대사회에서 예술을 하는 건 무모하고도 희박한 꿈이라는 결론을 지었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이륙을 보면 더없이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어두운 길을 걸어왔을지 아주 조금이나마 느껴봤기에.)
예술 업계에 종사하지 않고도 고유한 색채를 만들고 삶에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비로소 오늘에서야. 반 고흐의 삶을 읽다가 나의 하루를 보내다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게 스며들었다.
누군가에게 맛으로 행복을 주는 일도, '맛있다'는 기준을 찾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경험하는 행위도, 어느 작가의 작품으로 공간을 배치하는 것도, 이 세상을 배우는 것도 모두 예술의 일환이 될 수 있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반 고흐로 인한 현상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기에 깨닫게 되어 기쁘다. 붓과 물감으로 표현한 그의 세계를 짧게나마 느꼈으니, 나의 세계를 어떤 색으로, 어떤 선의 굵기로, 어떤 계절로 표현할지 고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