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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딩 Jun 10. 2024

선생님

"교수님, 다른 분야를 해보는 것이 맞겠죠?"

조형과 제자와 재형이가 물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너가 원하는 길로 가라고 말했다.

12월, 종강과 영하를 웃도는 날씨가 같이 찾아오는 시기. 미대 조형과 교수로 사계절의 반복을 두번 겪었다. 자대 출신 아닌 미대 교수는 흔하지 않다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타대 디자인과 출신으로 서울 연남동 작은 공실에 딱 한 번, 8점의 내 작품들로 소박한 전시회를 한 번 열어본 작가였지만, 나도 정직하게 월마다 찍히는 수입의 안정성이 탐이났다. 그렇게 살게 된 교수의 삶. 학생들은 가장 열망하는 것을 꿈꿔야한다. 교수는 가장 열망하는 꿈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재형이는 재능 있었다. 피카소만큼 과감한 추상기법은 아니었지만 기하학 도형에서 느껴지는 재형이의 작품만의 세련되게 투박한 멋이 있었다. 주간 피드백 시간, 재형이는 어디로 갔는지 자리에 없었다. 재형이 담배피러 나간 것 같은데요, 친구들이 말했다. 그리고 끝끝내 시간 안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이 길로 밀고 나가서 밥벌이는 되려나, 먼저 졸업한 선배들도 현실과 타협해 기업 에셋 디자이너, 로고 브랜드 디자인 팀 등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지레 조형 미술과는 거리를 두려는 심산인 것이 분명했다. 미대 건물 1층 후문 공터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재형이를 찾아서 데려다가 화실에 앉혔다. 너, 이렇게 좋은 재능, 좋아하는 재능 썩히는 것도 사회적 낭비라고. 잘하고 있는 걸 잘 하면 되는 거라고. '그렇겠죠 교수님?' 하며 올려다보는 재형이다. 이런 답답이! 젯소질도 시작하지 않은 캔버스에 내가 직접 새 젯소 캔을 따서 붓질을 하기 시작했다. 젯소를 말리겠다며 손풍기로 바람을 쐬주는 재형. 그래, 이렇게 하면 얼마나 좋아. 붓을 재형이의 손에 쥐어줬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삼일 뒤에 있을 교수 피드백 시간 전까지, 강의 사이 쉬는 시간에 얼마나 진척이 되었나 이젤들로 빼곡한 작업 스튜디오 내를 몰래 살펴보곤 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떠오르는 회색과 검은색 물감의 조화들로 20호 특대 사이즈 캔버스의 반이 채워져 있었다. 피드백 시간에 어떻냐고 묻는 재형에, 잘하고 있다고, 아주 잘하고 있다고 말해줬다. 여백이 고민이라며 어떻게 채울지를 묻자, 자연스럽게 손이 재형의 붓으로 향했다. 아차차, 교수는 원하는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지, 입시 미술 학원처럼 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얼른 움직이는 손을 떼고, 원하는 그림을 그리라고 말해줬다.


그렇게 재형이는 학기의 작품을 완성했다. 나는 그의 재능과 결실에 A+로 화답했다. 졸업전시 준비에 돌입하기 전 종강 날, 내 연구실에서 마지막 상담을 하고 졸업전시 담당 교수 자리를 부탁했다. 이제는 뒤돌지 않고 순수미술로 성공해보겠다는 재형의 눈이 빛났다. 빛나는 눈을 바라보면서 되려 목에 갈린 가시마냥 뱉어지지 않는 수락의 한마디. 결국 '조금 생각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재형이를 돌려보냈다. 그렇게 일주가 흐르고, 이주가 흐르고, 세달이 흘러 개강일이 왔다. 교수가 개강총회에 가는 일은 없다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오늘 관두시는 교수님이 계셔서 미안하지만 얼굴이라도 보고 보내려고.."

학과장님이 강단 앞에 마이크를 들고 말한다. 결국 가슴 속에 품고 살던 사직서를 꺼내든 나를 위한 자리였다.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꿈을 펼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마음은 유효합니다. 저도 그래볼까 합니다." 아쉬운 듯 세모꼴로 주름 진 미간으로 나를 보는 재형이의 눈을 애써 외면했다.


학생들에게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라 말한 내가, 이들보다, 재형보다 먼저 학교를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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