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전쟁터, 한국>

by 해일

*아래의 글은 2023년 기준 작성되었습니다*

노희근. (2023년01월27일). 뇌병변 딸 38년간 돌보다 살해하고 선처받은 엄마…검찰 이례적 항소 포기. 디지털타임스. https://naver.me/FaSsE8n1
정우용. (2023년02월27일). 분유값 벌러 성매매 간 사이 영아 숨지게 한 미혼모 '집행유예'. 뉴스1. https://naver.me/FHu1nPib


*위의 두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오래된 글이기에 부족한 점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현시점에 어울리는 글인 것 같아 공개합니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는 2021년 12월 3일부터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현재까지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언론은 해당 시위에 대해 “출근 방해“로 일축하였다. 마치 사회적 약자가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는 행위가 일반 시민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행위인 것처럼 비춘 것이다. 이는 시민과 장애인 집단 사이의 대립구도를 만든다. 그러나 사실 이 두 집단은 결국 사회관계 속에서 을일 뿐인 이들이다. 결국, 언론은 강자가 배제된 아래에서 약자들끼리의 싸움을 유도하고 있다.

생후 8개월의 영아를 방치로 숨지게 한 미혼모와 뇌 병변 딸을 존속살해한 어머니도 전국장애인철폐연대에 속한 장애인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보도한 언론과 재판부의 판결은 이전의 장애인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와 비교하여 매우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아와 장애인, 미혼모 모두 결국 사회적 약자임에도 정반대의 태도가 드러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적 약자란 계급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열세이며 힘의 우위에서 불평등한 조건에 놓여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 모두를 일컫는다. 대표적으로 여성, 장애인, 성 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약자가 사회가 약자성을 부여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약자가 된 것이 아닌지에 대하여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약자는 태어날 때부터 약자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약자성은 사회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람을 제도로 구분 지은 것에서 온다. 사회가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행위는 사실 그들에게서 빼앗았던 권리를 되찾아주는 행위이다. 원래부터 그들이 가질 수 없었던 것을 사회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에는 냉담했던 시선과 달리 생후 8개월의 영아를 방치로 숨지게 한 미혼모와 뇌병변 딸을 존속살해한 어머니에게는 사회가 온정적이었던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미혼모와 딸을 존속살해한 어머니가 가해한 피해자는 결국 사회적 약자인 영아와 장애인이다. 사회적 약자를 가해한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인 가해자들을 피해자로 만들어 일반시민이 이에 대해 동정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가의 몫인 사회적 책임을 가해자의 죄를 불쌍히 여겨 덜어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더 이상의 권익 요구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에는 사회가 냉담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해당 시위는 사회가 주는 척했던 그 이상의 권리라 생각되는 것을 사회적 약자가 직접 요구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사회가 그들을 동정하기만 하고 그 이상의 요구에는 외면하는지에 대한 답을 사회에 요구해야 한다. 을이 서로를 동정하고 동시에 경계하게 되는, 을만의 전쟁터 속에서 ‘갑’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한국 사회는 강자들에 의해서만 재구성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을이 절대로 위를 볼 수 없도록 다른 을을 경계하는 것에 정신을 쏟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