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챙겨보기 시작한 지 3년도 안 된 초보자로서 '야알못'의 심정을 잘 안다. 처음 야구를 보는 사람에겐 야구가 거대한 물음표 같다.
당장 지금 열리고 있는 프리미어12 경기 장면만 봐도 그렇다. 야알못 시절 저 왼쪽 하단 박스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말이라곤 '나승엽', '롯데 자이언츠' 뿐이었을 거다. 포지션은 지명타자(DH)고 이번 대회 타율(AVG)은 2할 5푼, 타점(RBI)은 1타점, 홈런(HR)은 1개, 출루율(OBP)은 4할이란 뜻은 용어를 모르면 절대 알 수 없다.
롯데시네마에서 보고 왔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앞으로 영화관 관람은 굳이 안 할 것 같다. 이유는 나중에 써야지.
그러니까 야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위치에서 경기를 보고 있자면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 안 되는 것투성이다. 문턱을 높이는 건 역시 용어다. 당장 라인업만 봐도 이름 세 글자 옆에 P, C, 1B, SS, LF, DH 같은 알파벳들이 붙는데 대체 뭔가 싶다. 기사엔 ERA, OPS, WHIP 같은 말들이 떠다닌다.
대체 뭘 자책하셨나요
모르면 모르는 채로 볼 수도 있는데, 성격상 그게 안 된다. 당장 검색해야 직성이 풀린다. 야구 보기 시작한 초반엔 경기 중계를 볼 때마다 검색하느라 바빴다. 물론 검색한다고 다 머리에 들어오는 건 아니다. 대충 어떤 성적을 보여주는 지표인지만 간단히 확인하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ERA(평균자책점)도 저 다섯 음절만으론 뭔 뜻인지 야알못이 알기 어렵다. '자책골은 알겠는데 야구에선 대체 뭘 해야 자책이야?' 같은 물음이 두둥실 떠다닌다.
그렇게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 용어와 지표들을 앞으로 하나씩 얘기해보려 한다. 나는 아직도 야구 초보인지라 설명이 충분하지 않을 거다. 누군가에게 전문적인 정보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아닌, 나처럼 야구 볼 때 두둥실 자꾸 뭐가 떠다니는 초보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턱 낮은' 글을 써보려 한다.
처음으론 통계지표 WAR에 대한 얘기다. 이유는 없다. 그냥 제일 먼저 생각났다.
'대체선수'가 대체 누구죠
야구에 이제 막 흥미를 붙이던 때, 각종 기사에서 자꾸 WAR이라는 말이 보였다.
기사에서 자주 보이는 WAR
검색해 보곤 좌절했다.
WAR(Wins Above Replacement) : 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저게 대체 무슨 말인가. 대충 승리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보여주는 지표이고, 높을수록 좋은 거겠거니 넘어가려 해도 저놈의 '대체선수'는 뭔지 답답했다. 정말 검색 많이 했는데, 쉬운 설명을 찾기 어려웠다.
처음엔 막연히 같은 팀 내 같은 포지션의 다른 선수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LG트윈스 유격수 오지환의 WAR이 3.00이라면, 이건 팀 내 2군 비주전 유격수들보다 3승 더 올릴 수 있다는 뜻인 줄 알았다. 아, 역시 프로의 세계는 잔인하구나 했다. 회사로 치면 '야원 대리는 같은 팀 옆자리 홍 대리보다 회사 기여도가 이 점수입니다'라는 딱지를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는 상황이 아닌가.
아니었다. WAR의 대체 선수는 '가상의 선수'다. 메이저리그에선 '리그에서 가장 못하는, 최소 연봉을 받는, 프로 야구로서 최소의 실력을 지닌' 선수를 의미한다. 추상적이다. 이 가상의 선수 WAR은 0으로 설정된다.
그렇다면 KBO에선 이 '대체선수' 개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KBO 공식 블로그에서 대체선수의 개념을 가져와봤다.
1) 평균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는 선수
2) 트레이드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선수
3) 많이 뛰면 뛸수록 팀 성적에 악영향을 끼치는 선수
그러니까 리그 수준을 감안해 편의상 가상의 선수를 만들어 그의 승리기여도를 0으로 설정하고, 이것 대비 실제 선수들이 얼마나 승리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WAR이다.
2024년 시즌 LG 외야수 홍창기의 WAR은 5.06이다. 이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수준의 선수'가 그 자리에 나왔을 때보다 팀에 5.06승을 더 안겨줄 수 있단 뜻이다. WAR이 4만 넘어도 뛰어난 수치다. 현재 KBO 압도적 1위는 KIA 김도영 선수로 WAR 8.32다.
대체선수를 설정하는 하나의 기준은 없고, 통계업체마다 또 다르다고 한다. 모든 선수들의 세부적인 기록을 정리해 공개하는 KBO 홈페이지에도 WAR은 보이지 않는다.
출처: STATIZ
볼 수 있는 건 다 본다
그럼 WAR은 어떻게 산출할까. 미국야구에서 시작된 개념이기 때문에 주로 메이저리그에 기반한 설명이 많다. 일단 메이저리그 통계 사이트 FanGraphs(팬그래프)에선 공식을 이렇게 설명한다. 타자 기준이다.
FanGraphs
Batting Runs : 타격 점수(타율, 출루율, 장타율 등)
Base Running Runs : 주루 점수(도루 등)
Fielding Runs : 수비 점수
Positional Adjustment : 포지션 조정
League Adjustment : 리그 조정
Replacement Runs : 대체선수 대비 기여도
/ Runs Per Win : 승리당 득점
결론은, 웬만한 볼 수 있는 건 다 본다.
통합 지표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안타, 타점 등 눈에 보이는 숫자뿐만 아니라 수비 기여도 같은 전체 공헌도를 계산한다. 포수의 경우 공격보다 수비 능력이 중요해 수비 가중치가 높은 식이다.
투수의 WAR 산출 공식은 FanGraphs 기준 이건데, 공식을 보면 마음의 거리가 확 멀어진다. 저게 대체 무슨 말인지 아찔해진다. 이러나저러나 9이닝당 실점 및 기대승률 등 결국 이것도 '볼 수 있는 건 다 본다'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투수의 WAR과 관련해 도움이 되는 영상이 하나 있다. KBS N Sports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건데, 박용택 해설위원이 당시 뷰캐넌과 고영표 선수를 비교한 설명이 재밌다. 당시 승수와 이닝 수, 삼진 수 모두 뷰캐넌 선수가 훨씬 수치가 좋았지만 WAR은 고영표 선수가 높았는데 그 요인이 바로 FIP와 WHIP였다.
FIP : 수비 무관 평균자책점 (투수의 책임으로 인한 평균자책점)
WHIP : 투구 이닝당 출루 허용률 (안타, 볼넷)
출처: 유튜브 채널 'KBS N Sports'
네이버 지식백과 설명에 따르면 WAR은 '한 선수가 기록한 전 종목의 성적을 바탕으로 계산되며, 선수의 포지션에 따라, 그리고 해당 연도의 상황까지도 포함'한다고 한다. 다양한 상황, 구장의 특징, 여러 변수까지 반영해 보정을 거친다. 이 '보정치'는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환경적 차이에 의한 보정값을 적용한다는 의미 정도로 받아들이고 넘어갔다.
사이트마다 WAR을 평가할 때 어떤 요소에 더 가중치를 내는지도 다르다. 이렇게 복잡하고 섬세하기 때문에 WAR은 현시점에서 고차원 지표로서 활발하게 활용된다. 투수와 타자처럼 서로 포지션이 달라도 이 WAR 세계에선 비교가 가능하다. 요즘 같은 FA영입 시즌에는 더 부각되는 듯하다. 여러 지표를 반영하는 데다 소수점 단위로 '줄 세우기'가 쉬우니 말이다.
물론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 WAR은 통계자마다 나타내는 수치가 다르고, 각종 보정치가 불완전하니 과도한 의존을 피하자는 의견도 꽤 있는 모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표는 더 섬세해질 테고 내가 공부할 것도 많아지겠지. 분명한 건 지표를 하나씩 알면 알수록 야구가 더 재밌어진다.
+
이 짧은 글 하나 쓰는데 꼬박 2주가 걸렸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자료 찾고 문장 쓰고 했는데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든다. 갑자기 좀 걱정인데 일단 다음주에도.. 써보긴 하겠다. 주제는 앞에 잠시 언급했던 '평균자책점'으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