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그런 날이 절실할 때가 있다. 하던 일을 팽개치고 한없이 넋을 놓고 싶은, 이유도 없이 마냥 빈둥거리고 싶어 지는, 그런 날이 가끔 있다. 그럴 때는 그저 하루를 쉬며 무작정 지금 하는 일에 손을 놓아야 한다.
바라던 오늘 같은 날. 출렁이는 초록 풍경을 멍하니 흐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생각대로 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목마르게 그리워했던 것에 빠져드는 순간이다. 바스러질 것처럼 까칠해져 있던 나를 녹녹히 적셔주니 이 시간이 행복하다.
모처럼 얻은 휴일이지만 이런 날은 온갖 집안일이며 내게 매인 개인사는 처음부터 잊어버려야 한다. 특별히 바깥나들이도 말고 이리저리 뒹굴며 게으른 여자로 하루를 채운다 해도 탓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태에 빠져 있다 보면 한편 무료할 듯 하지만 한 없이 편안하다.
그런 날. 어느 때는 시끌시끌한 마음에서 벗어나 먹는 것도 거르고 드물지만 낮잠에 빠져 보기도 한다. 거실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볼거리 사이에 아무렇게나 누워 잠이 들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간혹 잠결에 들려오는 음률이 요람처럼 흔들어 평화로움을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가끔 버려두었던 구석진 책장 정리를 생각 없이 한다. 책장 속 책들을 와르르 쏟아놓고 나면 어느새 먼지 속에 배를 깐 채 쓸데없이 이곳저곳을 넘기면서 들여다보는 재미에 취해 있게 마련이다. 한참을 그러다 보면 밑줄 친 곳을 찾아 웃기도 하고 뜻밖의 메모에 새로운 것을 얻기도 하여 즐겁다.
다시 해야 할 내일 일거리며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마음 한구석 켕기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어쩌다 잊어 보는 것도 괜찮다고 그것도 마음이 일러준다
적잖은 세월을 보냈는 데도 여전히 편협하고 미련하여, 필요 없이 날카로울 때가 자주 있었다. 그러다 또 군자나 덕인이나 된 듯 세상을 다 포용하여 갈등과 반목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이해하지 못할 것도 용서하지 못할 것도 없게 만드는 것이 그놈의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
간혹 멍한 상태에서 깊은 상념에 다시 빠지는 모순을 겪을 때가 있다. 무심히 지나쳐 가버린 것들에 대한 고마움과 반성, 후회가 '멍'함 속에 존재할 때다.
호구로 받은 약간의 보수와 수일 전 사소한 것으로 얼굴을 붉혔던 일, 가족이 안녕하다는 것, 내보일 수 없었던 아픔들. 이렇게 소소히 하나, 둘 깨닫다 보면 고마움과 함께 ‘그래 나 때문이지’ 라며 뒤틀린 마음을 풀고 비로소 아픔에 입도 맞춘다.
어느 날은 푹신한 의자에 몸을 묻고 나면 온갖 잡동사니 생각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무거운 생각이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온다. 그러다 곧 간사한 듯 달관의 경지에 들어간다. 굳이 운명을 생각해 보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산다는 것이 참 아슬아슬하다는 것을 알아서다. 그러니 나보다 나은 삶도, 너보다 못한 삶도 없다.
어떤 이가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놀랍도록 올바른 비유를 하여 경이로웠던 적이 있다. 인생의 ‘생(生)’이란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牛)가 외줄(一)을 타는 꼴’이라고 했다. 네 발 달린 미련한 놈이 가느다란 외줄을 탈 때를 상상해 보라. 줄을 타고 있는 녀석이나 보아야 하는 우리는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불안할까.
어디 불안만 하겠는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가엾고 애처로워 도와주고 싶기도 할 테다. 눈 뜨고 볼 수 없어 차라리 그냥 땅바닥으로 떨어져 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인생(人生)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끊임없이 힘든 장애를 주어 조심하고 또다시 주의하여 건너라고 이른다. ‘대전 2km'라는 이정표를 보고도 빠져나올 수 없는 엉뚱한 길로 들어설 때가 있는 것이 인생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아슬아슬한 길을 나는 어떻게 가고 있을까 돌이켜 볼 때가 멍하니 게을러져 있는 날이다.
단지 한나절이었는데 어쩌다 그런 날이 나를 이렇게 반듯하게 만들어 준다. 잊고 있던 마음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