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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Jun 26. 2022

Love is blue

    

 습관적으로 눈이 떠지는 시간이다. 그러데 오늘은 웬일인지 한없이 꾸물대고 싶어 진다. 그런데다 눈까지 설어 주변이 온통 어설프기만 하다. 창가로 슬그머니 가보니 저만치부터 명주실 같은 가랑비가 가랑가랑 풀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날더러 어디론가 가라는데 특별히 갈 데가 없다.


 휴대폰을 찾아 열어보니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 친구에게 메신저가 와 있다. 프랑스 여배우 같은 친구다. 한국에 도착해 코로나로 자가격리 중인데 마치면 꼭 보자는 내용이다.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해안을 끼고 발달된, 그래서 버스노선이 유난히 동에서 서로 길었던 남쪽 항구 도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크게 가깝지는 않았지만 서로 주시하는 관계여서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 그녀는 미술학부에 파다한 소문을 업고 연애 중이었다. 


 팔등신에 발레를 한 몸매답게 옷맵시도 훌륭했다. 어쩌면 은근히 부러워했던 것도 이런 부분이었을지 모른다. 마르기만 했지 멋 부리고 싶은 나이에 체형에 대한 불만으로 옷맵시엔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화려했고 깔끔한 멋쟁이였다. 그녀의 각지고 높은 코 때문이었을까.


 결혼하고 한참 지난 후 처음 만났을 때 안부 차 옛 남자 안부를 뜸을 들여가며 물은 적이 있다. 당연한 결과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얼마 후에 헤어졌다는 놀라운 대답을 해준다.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이 무서웠다고 했지만 지금으로 보면 스토킹 수준이었나 보다. 


 좋은 가문에 보장된 학력에 중후했던 외모. 불현듯 보고 싶어서 왔다며 슬리퍼 차림을 한 채 밤차로 불쑥 내려와 당당하게 그녀를 학교까지 배웅하고 휑하니 올라가던 그 남자의 사랑. 두 사람은 아주 잘 어울렸다. 풍문은 졸업 후에도 이어졌지만, 서서히 그들 일은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가끔 동문을 만나면 입에 오르내리기는 했다. 그만큼 그들은 유명한 커플이었다. 


 다소 쓸쓸히 이율배반적인 그녀의 해명은 맹목적인 남자의 사랑이 남자를 망가뜨릴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니 남자를 위해서라는 뜻이다. 사랑이 떠나서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왜 그 남자의 사랑에 내가 가슴이 아렸을까. 지금쯤은 나 때는 말이야, 하며 객기를 부리고 사랑 이야기를 할지 모르지만 죽음 같은 실연이었을 것이다. 추억하기는 할까. 


 이제와 생각하면 젊은 날 사랑에, 죽음을 통하여 삶이 완성되듯이 사랑의 가치도 실연을 통하여 완성된다는 생각은 다소 건방진 위로였다. 가소롭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해결책이었다.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는 안정되어 보였고 여전히 보기 좋은 체형이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는 딸아이를 위해 세계 곳곳을 다니며 상상을 뛰어넘는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엄마이기도 하다. 


 마지막 만남이 홍대 근처였는데 오랫동안 학창 시절 이야기와 에피소드 이야기에 빠져 맛집과 몇 군데의 카페를 돌아야 했다. 대부분 동문들을 만나면 그때로 돌아가 그 나이가 되고 만다. 초등학교 동창은 그 수준으로 돌아가게 하니 우리를 순수하게 만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약속이 되면 몇몇 친구까지 상경한다고 한다. 나이를 잊고 그 나이로 돌아가 호호대며 옛이야기를 할 테지. 양념처럼 들어가는 옛사랑 이야기까지. 그러고 보니 20대 사랑은 평생의 밑그림 일지 모른다. 어떠한 색깔로든지. 

 그녀들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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