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은 약 30~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적혈구 등 일부 무핵세포를 제외하고 모든 세포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완벽한 유전자 코드를 세포핵 속에 구겨 넣어 보관하고 있다. 각각의 세포가 모여 기관을 이루어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고, 그 기관들의 총합이 하나의 인간 개체를 구성한다. 수없이 많은 세포가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중 약 80g에 해당하는 3,300억 개의 세포가 매일 폐기되고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결국 인간의 몸은 끊임없이 교체되는 세포들이 셀 수 없이 다양한 역할을 분담하여 일을 하는 매우 복잡한 협업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우리의 의식과 자아는 세포 하나하나를 인식할 수 없지만 인간은 수많은 세포 개체의 협력을 통해 기능하는 거대한 생존 기계이다.
인간의 두뇌도 마찬가지다. 두뇌는 약 1,000억 개의 뉴런과 100조 개의 시냅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시스템이다. 인간은 전두엽에 있는 시냅스 간 연결을 통해 기억하고 사고한다. 이렇게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인간 두뇌의 기억 용량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물론 이론적인 용량일 뿐 어제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 개인의 사례로 비춰보건대 데이터의 입력효율은 매우 낮은 것이 틀림없다. 아마도 그건 보편적이 아닌 인간 개체로서의 나 자신의 특질인가 보다.
이렇게 에너지를 활용하여 개별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시스템을 구성하고 네트워크에 기반한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인간의 몸과 두뇌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나 기업도 마찬가지다. 인구 약 2천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뉴욕은 매년 약 761 조 Btu(‘21년 기준)의 에너지를 소비하며, 약 2조 달러의 GDP를 생산해 내는 거대 도시다. 한 해 배출하는 쓰레기는 약 3,300만 톤에 이르며 매년 1.56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처럼 도시 역시 인간 개개인의 네트워크와 상호작용을 통한 협업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기능하는 거대한 유기체다.
에너지 소비를 통해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남은 부산물을 배출하는 메커니즘을 가진 생명체와 도시, 국가, 기업 등의 거대 시스템은 더 작은 요소들의 집합적인 협업과 상호의존적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하나의 거시적 개체 단위로서 기능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의 공통점은 이를 구성하는 작은 요소들의 동기와 목적이 전체 시스템의 목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포는 인간 개체의 생존과 행위에 아무 관심이 없다. 그저 평균적으로 주어진 120일간의 수명을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며 소모될 뿐이다. 도시나 기업의 구성원 역시 개인의 이익과 사적인 동기를 위해 움직인다. 물론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원을 소모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행위가 시스템을 구성하는 필수 기능이 될 수는 없다. 선의를 동인으로 움직이는 기능은 지속가능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언제든 멈출 개연성이 있다.
결국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의 하나의 개체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기업의 피고용인으로서 기능하는 것은 공공선의 대의가 아닌 주어진 역할 수행을 통한 사적 이익 추구를 동인으로 삼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길었던 연휴를 끝내고 내일 출근하는 이유는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다. 그러니 우울해하지 말자. 보편적인 경제적 동기가 ‘나’라는 개인을 추동함으로써 출근이라는 연역적 결론이 도출된 것뿐이다. 여기에 의욕저하와 감정적 기복으로 인한 인지적, 신체적 증상의 발현이 일상기능의 저하로 이어질 소지는 전혀 없다.
나는 우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