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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희 May 23. 2024

Ⅰ부-4. 저널테라피를 어떻게 하는 건데? 1)

1) 저널 쓰기의 원칙

저널 쓰기는 자유로운 글쓰기이다. 문장력, 맞춤법, 글씨체 등에 구애 받지 말고 쓰면 된다. 애덤스는 저널 쓰기의 신성한 규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어떤 규칙도 없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하며 자연스럽게 쓰기를 권유한다. 자연스러운 글쓰기란 서퍼가 파도가 밀어주는 힘에 몸을 맡기고 파도를 타는 것과 유사한다.  저널 쓰기는 그 누구의 비판이나 검열 없이 나답게 나를 마주하는 작업이다. 청소년 저널테라피에 관한 워크숍을 할 때면, 참가자들이 이래도 되나요? 저래도 되나요? 하는 질문들을 많이 하신다. 대부분 ‘예! 됩니다. 괜찮습니다.’라고 답하지만, 다음 몇 가지 규칙은 두고 있다.


첫째, 날짜를 적는다. 일기를 쓸 때처럼 제일 먼저 날짜를 적는다. 날짜는 자신이 현존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나중에는 역사가 된다. 날짜를 적어 두어야 저널이 시간적 맥락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둘째, 준비물은 간단하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된다. 교사나 상담자 입장에서는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쓰라고 해야할지 몰라서 막막하다. 청소년 입장에서는 글쓰기라고 하면 부담스럽고 두렵다. 이런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청소년 저널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A4 한 페이지에 쓸 수 있도록 만든 이 저널지와 펜만 있으면 된다. 간혹 그림을 활용할 때에는 색칠도구가 필요하다.      


셋째, 손글씨를 권유한다. 컴퓨터나 휴대폰보다 손으로 글을 쓸 때, 글자에서도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손가락의 힘에 마음이 따라 간다. 우울하고 무력감이 느껴질 때와 기쁘고 생동감이 느껴질 때의 글씨가 다르다. 생각이 복잡할 때와 정돈되어 있을 때의 글씨가 다르다. 자기 모습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종이에 펜을 대었을 때, 생각과 감정이 손가락을 따라오며 글과 함께 간다. 아이들은 새로운 창조자가 되고 자신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된다.        


넷째, 3분~10분의 시간 제한을 둔다. 타이머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 구조화된 집단상담이나 글쓰기에 대해 저항이 강한 청소년들과 저널테라피를 할 때에 시간 제한이 특히 도움이 된다. 제한된 시간을 제시하는 것이 저널 쓰기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만약 5분만 쓰고 멈춰야 된다고 했을 때, 아이들은 망설임을 줄이고 바로 종이에 펜을 갖다댈 수 있다. 5분 정도를 못 쓰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에 대한 마음을 가볍게 한다. 글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자신의 능력보다는 제한된 5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짧은 시간이 글쓰기를 자유롭게 해준다. 이렇게 일단 쓰다 보면 뜻밖의 생각들이 언어로 표현된다. 이렇게 쓰다 보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개인 상담이거나 집단 전체가 시간을 더 필요로 하면 시간 제한을 풀어 주면 된다. 시간을 충분히 주고 기다리면 된다.


다섯째, 저널을 쓴 후에는 느낌을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 저널은 표현적 성찰적 글쓰기이다. 글을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하고 성찰하게 된다. 느낌을 씀으로써 더욱 표현적 성찰적 글쓰기를 할 수 있다. 글을 쓰면서 올라오는 느낌들은 그 순간에는 영롱한 비누방울 같다. 모양도 색깔도 분명히 있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저널을 쓰자마자 그 느낌들을 붙잡아야 한다. 저널을 쓰면서 올라왔던 많은 느낌들이 써두지 않으면 바람처럼 사라지고 만다. 그 순간의 느낌을 붙잡아서 글로 써두면 저널 쓰기의 경험이 더욱 생생한 나의 것으로 남을 수 있다. 맑은 물 속에 보이던 물고기 떼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언어로 낚아 올리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다. 나중에 그 저널을 읽을 때 자신의 느낌과 함께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왜 그런 글을 썼는지 그 글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금방 잊어버릴 수 있다. 처음에는 이 느낌과 생각을 쓰는 것을 귀찮아 하고 어려워 한다. 이때도 세 문장 이상 쓰라고 제안하면, 최소 세 문장은 만들어 낸다. 느낌을 쓰다 보면 습관이 되어서 일상에서도 자신의 느낌을 알아차리는 예민한 감각을 지닐 수 있다.        

 

여섯째, 반드시 비밀이 유지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읽을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글쓰기의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자신의 글이 그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는다는 비밀 유지의 원칙을 안내해 주어야 한다. 글쓰기는 생각과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수단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그 어떤 평가의 눈도 신경 쓰지 않는 자유로운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저널테라피의 치유적 힘은 진솔함에서 드러난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쓴다면 자기를 속이는 헛고생을 하는 셈이다. 누군가가 본다는 가정에서 저널을 쓰게 되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억압하게 된다. 거짓, 위선, 무미건조, 과장 등이 담긴 글을 쓰게 된다. 자신의 억압된 감정을 솔직하게 노출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면 아찔한 일이다. 그래서 아래 아이처럼 자꾸 멈칫거리게 된다.     


“처음에는 바로 옆자리에 있는 친구가 내 글을 훔쳐보는 것 같아서 자꾸 멈칫거렸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각자의 글을 쓰기 위해 집중했다. 글씨를 써가는 사각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나도 차츰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저널을 공개함으로써 더욱 치유의 효과가 큰 경우가 있다. 저널을 공유함으로써 누군가의 공감, 지지를 받고 싶거나 자기 스스로에게 확신을 심어 주고 싶은 경우이다. 이 경우에도 어느 정도 공개할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렇게 비공개의 원칙에 따라 쓴 아이들의 수많은 저널들을 앞으로 공개하려고 한다.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공개에 동의해 준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 글을 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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