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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희 Jun 05. 2024

Ⅱ부-1.수능 직전 고3 아이들과 시작하다 1)

1) 왜 하필 수능 직전 고3 아이들과?

Ⅱ부에서는 <청소년과 함께한 저널테라피의 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왜 청소년들과 저널테라피를 하게 되었는지? 지난 15년 동안 어떻게 해왔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공부는 해야겠는데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그냥 잠만 자고 싶어요. 하루 종일 아니 계속 잠만 잤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자다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제 안에 다른 놈이 들어와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데 엄마만 보면 성질이 나요. 기대하는 것도 싫고 걱정하는 것도 싫고... 다 재수 없어요. 다 깨부셔 버리고 싶어요.”

“제 머릿속이 하얘요. 글씨가 하나도 없는 텅 빈 공책 같아요. 그동안 풀었던 문제집이 수십 권인데 공부한 게 다 어디로 갔을까요? 제가 수능을 볼 수 있을까요?”

“수능이 다가올수록 모의고사를 보는 것도 힘들어요. 심장이 터져버릴 것처럼 불안해요.”       


고3 아이들이 언어영역 문제집을 들고 질문을 하러 왔다가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평소에는 웃고 떠들고 장난치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불안하고 우울하고 화가 나있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용기있게 끄집어냈는데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겨우 한다는 말이 쓸데없이 걱정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말 정도였다. 그 최선이 뭔데 그 말밖에 할 수 없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 이런 무력감을 고3을 가르치고 상담하는 내내 겪어야 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이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설령 방법이 있다 해도 대한민국 고3을 감히 건드릴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고3 남학생들을 가르치는 내내 이 아이들의 마음을 모른 척했다.     


2009년 또 고3 국어수업을 맡았다. 3월 첫 수업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눈빛은 결의에 차있다.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될거라는 희망과 힘들어도 잘 이겨내리라는 의지를 불태운다. 하지만 매년 고3을 만나온 나는 알고 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입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갈 것인지를. 수능 앞에서 더욱 불안해 하는 아이들과 함께 뭐라도 해봐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올해에는 모른 척 넘어가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수능 직전 고3 학생의 상황

수능 직전 고3 아이들을 도와줄 방법을 찾기 시작하면서 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왜 힘들까?였다. 답이 정해진 뻔한 질문 같지만 이 답을 실제로 확인하고 싶었다. 2009년 5월 스승의 날,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제자 4명에게 물었다. 고3때 왜 그렇게 힘들었냐고?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니, ‘수능 직전 고3은 힘들다’라는 문제 상황의 맨 아래에는 ‘좋은 대학에 가야 성공한다’라는 진로 신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의 꿈보다도 학벌사회의 구조 속에서 수도권에 있는 좋은 대학에 일단 들어가야 미래가 보장된다는 신념으로 불안하고 우울하고 자신 없고 외로운 동굴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입시제도가 다양하지 않고 수능의 비중이 커서 수능 직전에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임계치를 넘어서는 것 같았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나? 공부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인상 쓰고 앉아 있는 아이들을 어떤 방법으로 도울 수 있을까? 2학기가 시작되니 고3 아이들은 수업시간조차 아까워 하는 듯 초조해 보였다. 이런 아이들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주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기나 할까? 무엇을 해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답답해 하다가 저널테라피를 만났다. 애덤스의 책을 읽은 날의 일기이다.      


오늘 애덤스의 책 두 권을 단숨에 읽었다. 자신의 훈련과 경험이 인본주의적 치료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했다. 참여자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다는 것이 아닌가? 마음에 든다. 수없이 고민하던 방법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에서 만난 애덤스가 은인 같다. 애덤스의 저널 기법이라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가능해질 것 같다.      


그 당시 아이들은 아침 7시 30분에 등교하여 0교시 보충학습부터 밤 10시 야간자율학습까지 빈틈없이 공부할 시간으로 하루를 채우고 있었다. 무슨 시간에 저널 프로그램을 할 수 있을까? 오직 점심시간밖에는 없었다. 긴 급식줄에 서있다가 후다닥 점심을 먹고 달려 온다고 해도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은 20분밖에 안 되었다. 헐레벌떡 뛰어와서 바로 글을 쓸 순 없는 노릇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글쓰기로 들어설 수 있도록 분위기를 정돈해야 한다. 그날의 주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쓰는 것인지 설명도 해주어야 한다. 저널을 쓰고 난 후에는 짧게라도 마무리를 해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작 저널을 쓸 수 있는 시간은 10분 정도이다. 

     

고3 아이들을 위한 응급처방으로 애덤스의 저널기법을 활용하여 10분짜리 저널테라피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수능을 앞두고 아이들 마음이 금방이라도 팡!하고 터져 버릴 듯 부풀어오른 풍선 같았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아이들의 마음이 그렇게 느껴졌다. 긴장 가득한 마음에서 바람을 조금 빼주면서 안심해도 된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설령 수능을 망친다 하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렇게 저널테라피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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